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ggie Oct 11. 2015

내 꿈

가수

나는 오랫동안 가수를 꿈꿔왔다. TV를 보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공부를 하다가도 자주 상상하곤 했다. 내가 무대 위에 올라 많은 사람들에게 감탄을 자아내는 노래와 공연을 하는 모습을.


솔직히 난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마라토너, 아나운서, 축구선수 등. 되돌아보면 대부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직업을 꿈꾸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 앞에서 내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은 내 미래에 방해만 됐다. 난 공부 성적이 언제나 좋았고 자연스럽게 내 목표는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것이 되었다. 멋진 사람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나는 너무 자주 다른 생각에 시간과 집중력을 뺏겼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내 머리에 지식을 주입하는 수업을 듣고, 모의고사 및 수능 시험 출제 경향을 분석하고, 내신 성적을 위해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내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뿌듯한 생각 대신, 어쩌면 내가 어릴 때부터 꿈꾸던 멋진 모습과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꾸 현재의 생활에 의구심이 들면서 점점 공부에 대한 집중력도 흐려졌던 것 같다. 내가 왜 자기 최면을 하면서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늘 마지막에는 무대에 선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곤 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모습.


물론 내가 공부를 하기로 선택했던 이유는 내가 믿던 부모님의 조언이기도 했고, 공부는 삶에 대한 주관과 생각하는 힘을 키워준다는 말이 꽤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애가 무척 강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누구보다 많았던 나는 굉장히 솔깃했다.


그런데 교육 과정이 막바지에 이르러 가면서 나는 내가 솔깃했던 것들이 사실은 학교에 없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것들은 학교의 존재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핑계에 불과하고 애초에 학교가 관심 있는 건 학생들의 시험 점수와 명문대에 들어가는 인원의 수 따위뿐이었다.


그러나 나와 모두를 속인 학교만 탓할 수는 없었다. 성적이 좋지 않거나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에 대한 평가가 두려워서, 내가 다른 길을 가도 더 나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두려움에, 처음 내 생각과 달라도 그저 남들이 가는 '정상적인' 길을 따라 걸은 나의 잘못도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미래의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하다가도, 무기력한 내 오늘을 애써 담담히 받아들이고 자신을 속이면서 공부를 계속했다. 대학에 가는 게 얼마나 중요하길래 이런 무의미한 공부를 하루하루 버텨야 하는 건지는 늘 몰랐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가수에 대한 준비는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하루 종일 학교에 있었고, 주말에도 등교할 때도 많았다. 내 생활은 소리를 내는 것 조차 불가능한 수업, 자율학습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몰래 가사 쓰기, 쉬는 시간에 창 밖에 대고 조용히 노래 부르기.


그마저도 공부에 대한 생각과 긴장에 제대로 집중하지는 못했다. 노래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공부에 대해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고, 노래를 하면서도 너무 몰입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늘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어쨌든 현재의 중심은 공부였다.


그러면서 점점 음악을 들을 때의 흥분이나 열정이 사그라들었다. 내가 항상 의식적으로 음악에 빠지면 안 된다고 긴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서 음악은 적당한 크기를 유지하고 있다. 나를 압도하지 못하는 정도로.


하지만 나는 믿는다. 내가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고 긴장을 풀면 음악은 다시 내 심장을 뛰게 하고 나를 압도할 것이다. 나는 음악적 영감이나 폭발이 여기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음악에서 얼마나 느끼는지이다. 얼마나 마음이 흔들리며, 얼마나 음악에 압도되는지이다.


내가 그나마 대학입시 준비를 버틸 수 있었던 건, 노래를 연습하고 발성을 연습하는 노력보다 음악을 얼마나 느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래는 음을 잘 표현해내는 기계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늦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가수의 꿈을 꾼다. 누군가는 지금이라도 당장 음악 학원에 등록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배우는 것보다 스스로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과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가사는 혼자만의 시간에서 나온다.


나는 많은 가수 지망생보다 연습량이 굉장히 부족하다. 하지만 나는 삶에 대한 고민과 인간에 대한 고민을 미치도록 했다. 내 또래의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가수 지망생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준비했다.


어쩌면 가수가 되겠다는 결정에 가장 중요한 건 노래 실력이 아니라 결심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아직 가수가 되겠다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좋은 가수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생각과 경험들을 계속 하고 있다. 나만의 방식대로.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