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끝, 포르투갈에 가게 된 사연

by 나예

남의 밑에서, 남의 돈으로 벌어먹고 사는 삶 중에 만만한 삶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는 그동안 내가 아픈 줄도 몰랐다가 어떤 사건을 겪으며 뒤늦게 깨달았다. 그 순간에는 내 속에서 뭔가가 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주위에 물어봐도 다들 비슷비슷하게 살고 있으니까 '남들도 이만큼은 참고 견디는구나. 내가 좀 예민한가 보구나' 하고 그냥 살았지만 남들과 똑같이 뺨을 맞는다고 해서 내 뺨이 안 아픈 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래도 나는 남들만큼은 되니까 최악은 아니야'하고 하루하루 버텨왔건만. '아무리 그래도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회사를 하루라도 더 늦게 관두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고 주위에서 달래주었지만 이미 승패는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되어있었다.


내가 아프다는 걸 깨닫고 난 뒤로는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팠다. 밤낮없이 울고 자고를 반복하면서 사람을 만날 수 없게 되었고, 회사에도 못 나가게 되었다. 누군가 이야기하는 소리만 들어도 속이 뒤집어졌다.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사람도, 나를 아는 사람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무인도에 가지 않는 한은 누군가의 말소리를 들어야 할 텐데 꼭 들어야 한다면 그 소리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내가 전혀 모르는 언어였으면 싶었다. 주위엔 그저 기분 전환을 위한 여행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도망이었다. 아주 아주 먼 곳으로, 나는 대륙의 서쪽 끝으로 도망을 쳤다. 그렇게 포르투갈에 닿았던 것이다.


당시에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치밀하게 조사하고 의도해 선택한 것은 아니었는데, 아래의 모든 조건에 신기하게도 포르투갈은 꼭 들어맞았다.


* 한국에서 멀고, 사람이 적은 곳

* 날씨가 매섭지 않은 곳

* 그나마 무언가를 소비하는데 부담이 적은 곳

* 내 상처에서 관심을 돌릴 만한 것들(다시 말해 신기하고 새로운 것들)이 많은 곳


직항도 없는 먼 이국 땅에 닿기 위해 비행기로 꼬박 16시간이 걸렸다. 기내식을 3번 정도 먹고 좁디좁은 의자에 구겨 넣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즈음, 드디어 포르투갈 북부의 대표 도시이자 대서양의 영원한 항구로 불리는 포르투(Porto)에 도착했다.

IMG_4248.JPG 비수기였기 때문일까, 포르투 공항엔 사람이 정말 없었다.


포르투에서 리스본(Lisbon)까지 이동을 할지, 그 역순으로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리스본이 아니라 포르투로 입국한 이유는 단순했다. 리스본이 좀 더 남쪽이고 앞으로 날씨는 점점 추워질 테니까 그나마 덜 추울 때 북부에 머물러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르투는 생각보다 추웠다.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숙소의 문제였는지, 이 동네 사람들에 비해 내가 유독 추위를 많이 느끼는 건지, 이유가 뭐였든 간에 너무 추웠다. 기온 자체가 절대적으로 낮다기보다는 축축하고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있으면 외투를 벗고 싶을 정도로 따뜻하지만, 그늘에 들어서거나 바람이 불면 으슬으슬 추운 그런 날씨. 두꺼운 외투보다는 차라리 얇은 바람막이가 좋을 것 같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겨 넣었던 조그만 전기담요가 큰 도움이 되었다.


유럽의 숙소엔 냉난방 시설이 없는 경우가 꽤 흔한 일이라고 하길래 그 부분을 유심히 신경 써서 숙소를 고른 건데도 출력이 그리 약할 줄이야. 어떤 시설의 유무 정도야 예약 과정에서 알아볼 수 있을지언정 그게 실제로 얼마나 잘 동작하는지 따위는 직접 경험해보기 전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이건 처음부터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일들은 상식 선상에서 진행이 되지만 때로는 나의 상식이 남의 상식과 다를 때도 있고, 더 가끔은 상식이라는 게 아예 통하지 않는 듯한 일들도 벌어지곤 한다. 이렇듯 세상엔 운에 맡겨야 하는 것들이 제법 많고 그건 내가 여행 중이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IMG_4249.JPG 사진으로는 그 추위를 모두 담아낼 수가 없다.


만약 내가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어서 내 밥벌이를 하면서도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었다면, 아프지 않을 수 있었다면 아마도 이번 여행은 내 인생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동안 내가 겪었던 일들이 마냥 나쁜 일만은 아니었던 걸까' 싶은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동시에 마음이 착잡해져 온다. 분명 ‘전화위복’이라는 짤막한 사자성어로는 도무지 위로되지 않는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정당화되다 못해 미화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미칠 노릇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아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것들은 모두 나쁜 일이었다.
우리는 그들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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