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좋은 이유

포르투 Porto

by 나예

히베이라 광장(Praça da Ribeira)으로 들어서니 주변에 빛바랜 건물들이 가득하다. 아마도 오랜 시간을 덧입으며 그렇게 된 것이겠지. 항간엔 포르투갈이 이런 건물들을 다시 선명하게 칠해서 쨍한 색감을 유지할 만큼 돈이 없는, 이른바 가난한 나라라서 그렇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 이 지역은 통째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니 아마 마구 덧칠할 수도 없게 되어있을 것 같다. 그리고 설령 정말 가난해서 그렇다고 해도 세월의 더께에서 오는 아련한 느낌 또한 그 자체의 매력이니 굳이 덧칠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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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골목이 풍기는 느낌이 다르고 건물들이나, 그와 어우러지는 좀 더 넓은 시야의 풍경도 멋지기 때문에 찬찬히 걸으며 구경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끔찍하게도 포르투(물론 리스본도)엔 언덕이 많다. 한국도 언덕이라면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지만 이 동네는 정말 상상 초월이다. 가파른 언덕은 차라리 절벽에 더 가깝다. 하지만 사람이 이동은 해야 하니 그 절벽 옆구리엔 늘 빽빽한 계단이 자리 잡고 있다.

DSC05894.JPG 저런 계단을 매일 오르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다행히도 언덕을 오르내리는 특수한 대중교통들이 있다. 푸니쿨라나 케이블 카 같은 것들 말이다. 일단 푸니쿨라를 타고 강변에서 절벽을 하나 오르기로 했다. 100년도 넘은 케이블 카다. 이런 게 있는 걸 보면 이 동네 사람들은 매서운 지형과 징글징글하게도 싸워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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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니쿨라에서 내리면 동 루이스 1세 다리(Ponte de Dom Luis I)를 건너 강 건너편의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a Nova de Gaia) 지역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린 넘어가기 전에 산타 클라라 성당 (Igreja de Santa Clara)에 들렀다. 외관은 회색 돌덩이를 닮은 소박한 성당이지만 그 안쪽의 탈랴 도라다가 어마어마하다고 해서 꼭 직접 보고 싶었다. 그런데 2시 반부터 문을 연다더니 2시 반이 넘었는데도 문이 굳게 닫혀있다. 쉬는 날인가? 딱히 그런 안내는 없어 보이는데? 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얼마간 엉거주춤 서있으니 성당 앞에 조그만 자동차 한 대가 나타난다. 관리인인 듯한 아저씨가 얼른 주차를 하고 “쏘리”를 외치며 그제야 성당 문을 열어준다. 아마도 점심을 먹다 조금 늦어진 모양이다. 그런데 기다리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다들 여행 중이어서 마음의 여유를 장착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본래 천성이 그런 사람들인지 알 순 없지만 대단한 사람들인 건 분명하다. 넘나 관대한 것!


성당의 규모 자체는 아담하지만 그 안쪽의 세계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천장을 포함한 내부 전체를 탈랴 도라다로 장식해뒀다. 하지만 실내에 딱히 조명이랄 게 없어서 밝은 시간대에 방문해야 할 것 같다. 이 날은 해와 구름이 오락가락했는데, 구름이 끼었을 때는 어둑어둑해 잘 안 보이고 다시 해가 나왔을 때는 잘 보이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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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5055.JPG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기도 한데 어차피 제대로 찍히지도 않을 만큼 내부 조명 상태가 별로다


성당 구경을 마치고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한국보다야 훨씬 따뜻한 포르투이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을 바깥에서 보내다 보면 역시 만만치 않다. 난 겨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겨울이 좋은 이유를 억지로 찾아보자면 그건 따뜻한 커피가 어울리기 때문이다. 난 얼음만 가득 채운 아이스커피를 싫어한다. 그 돈을 지불하고 내가 산 것이 커피인지 얼음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서 그렇다. 맛도 맹맹하고, 커피를 쭉 마시고 나면 얼음만 덜그럭거리고 남는 것도 싫다. 그래서 여름에도 더위를 참아가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일이 많다. 주변에선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해 “날도 더운데 왜 뜨거운걸 드세요?”라거나 "안 더워요?"하는 질문이 꼭 따라붙는다. 그런 부가 설명 없이 마음껏 따뜻한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는 계절이 겨울이니까, 그 점 하나는 참 마음에 든다.


말 나온 김에 커피와 관련해 하나 더 싫은 것을 꼽아보자면 많은 카페에서 묻지도 않고 대개 종이컵에 음료를 담아 준다는 것. 딱히 환경오염 문제나 환경 호르몬 등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도 그 얄팍하고 조악한 컵에 입을 대는 느낌이 몹시 별로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컵, 손잡이도 없고 두께감도 없는 이상한 물건.


가게에서 깨끗이 씻고 말리고 하는 등의 관리가 어려워서 그렇겠지만 부디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커피 잔에 커피를 담아줬으면 좋겠다. 특히 에스프레소가 커다란 아메리카노용 종이컵에 담겨 나올 때 어찌나 꼴 사납던지! 물론 포르투갈의 카페에선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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