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Porto
미세먼지를 논외로 한다면 본래 한국의 가을 하늘은 청명하고 예쁘지만 날씨가 점점 싸늘해지면서 하늘이 희뿌옇게 변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푸른빛이 돌지 않을 정도로 하늘이 우중충해 보일 때를 나는 “겨울이 온 시점”으로 친다. 그러니까 나에게 겨울은 영하의 기온이나 눈이 내리는지 등의 여부와는 관계없다. 물론 계절은 달력 페이지를 넘기듯 휙 넘어간다기보단 잉크가 번지듯 은근히 바뀌지만 누구나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는 기준이 분명 있고 내 경우에는 그게 “하늘의 색깔”인 셈이다. 지긋지긋한 일상을 떠나온 지 고작 3일, 포르투갈에 도착하고서 처음으로 맑은 하늘을 마주했다. 다시 가을이 되돌아온 것만 같아 무척 반가웠다.
포르투갈에 대해 어설프게나마 사전 조사를 했을 때,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포르투는 일하고 브라가는 기도하며 코임브라는 공부하고 리스본은 논다”
브라가는 기도하는 도시, 코임브라는 대학의 도시라고 불리는 곳이니까 대강 수긍이 가는데 ‘포르투는 일하고 리스본은 논다’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포르투는 포르투갈의 경제, 정확히는 공업을 담당하기 때문에 문장 속에서 ‘일’ 담당이 되었다는데 포르투에 머무르는 동안 그런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그냥 멍하니 앉아서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한가로운 동네였는데.. 공업지구라니.. 물론 외지인들이 다니는 곳은 한정되어있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리스본은 대체 얼마나 더 볼거리와 놀 거리가 많다는 건지가 문득 궁금하기도 하다.
본격 포르투 시내 탐방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상 프란시스쿠 성당(Igreja de São Francisco)이었다. 사실 성당은 어느 나라에나 있고 제법 비슷하다 싶기도 한데, 포르투갈의 성당들은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당들과는 꽤 차이가 있어서 성당 투어를 다니는 내내 놀랍고 새로웠다. 상 프란시스쿠 성당도 마찬가지. 외부 모습은 그저 그런 뻔한 성당으로 보이지만 그 진가는 내부에 있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마치 금빛 덩굴이 성당 안에 한껏 자라난 것 같다. 인공적으로 이렇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재크와 콩나무>에서는 재크가 던져버린 콩에서 순식간에 콩나무가 자라나 하룻밤만에 하늘의 거인 나라까지 닿았다고 했다. 그런 동화가 기꺼이 떠오를 만큼 성당 안의 풍경은 생경하고 신기했다. 그리고 성당 가득히, 강하게 풍기는 ‘식물’의 느낌은 예수의 가계도를 나무 형태로 표현한 <이새의 나무>에서 정점을 찍고야 만다.
사실 이 장식들은 모두 순금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나무를 조각한 후 그 위에 얇게 도금을 한 것으로 이런 장식 기법을 ‘탈랴 도라다(Talha Dourada)’라고 한다. 탈랴 도라다를 활용하면 돌을 깎는 것보다 훨씬 작업도 쉽고 빨라지며, 표면에 금박을 씌우니 화려하고 풍요로워 보이면서도 전체를 순금으로 만드는 것보단 훨씬 경제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장점이 이리 많은데 유독 포르투갈에서만 이런 장식을 많이 본 게 미스터리라면 또 미스터리다.
코 앞에서 하나하나 뜯어보면 엄청나게 화려하고 정교한데 성당 전체를 눈에 담아보았을 때는 마치 하나의 밀림을 닮아 있었다. 정확한 이유가 뭔지도 모른 채, 우리는 탈랴 도라다의 밀림에서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이 성당 옆엔 볼사 궁전(Palácio da Bolsa)이 있다. 상공회의소로 쓰였던 상업의 궁전이자 포르투 상업 협회의 본부가 있는 곳이다. 상업의 궁전이라니, ‘역시 일 담당인 포르투답다’ 싶기도 하고. 아무튼 내부에는 여러 개의 홀과 방들이 줄줄이 이어지는데 개인 입장은 불가능하고 가이드의 인솔에 따른 단체 입장만 가능하다. 그도 그런 게 이 궁전엔 그 흔한 이름표나 표지판 하나가 없다. 가이드가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여기가 대체 뭐하는 공간인지 알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포르투 내에서 가이드를 따라 ‘견학’이나 ‘관람’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은 몇 곳 없기도 하니 한 번쯤은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며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마도 궁전 내에서 가장 특징적인 공간이라면 당시 환전을 담당했던 국제 홀과 무도장으로 쓰였던 아랍 홀이겠지만 당연히 다른 공간들도 제각각의 역할이 있다. 우리도 어딘가에선 역할이 있을까? 이전에 회사에서 내가 하던 역할이 분명히 있었지만, 내가 나온 뒤에 회사가 망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나 없이도 잘 되어가고 있겠지. 누군가 내 일을 왕창 떠맡고 불만을 표하고 있을지언정 전체적으로 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그게 바로 시스템의 힘이겠지만 그렇다면 그런 시스템 안의 우리는 대체 어떤 존재인 걸까? 확실한 건 어느 날 갑자기 볼사 궁전 안의 방 한 개가 사라진다면 난리 법석이 날 테지만 우리의 경우엔 아니라는 것. 약간은 씁쓸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그럭저럭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