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 노바 Costa Nova
우리를 이 곳으로 이끈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때 그 사진 속의 코스타 노바(Costa Nova)는 나란히 늘어선 총 천연색의 줄무늬 집들과 새파란 하늘이 어울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동네처럼 보였다.
사진 속의 풍경을 직접 보겠다는 일념으로 코스타 노바를 향해 길을 나섰다. 멋진 곳들이 으레 그렇듯, 쉽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포르투에서 기차를 타고 아베이루(Aveiro)로 이동을 한 후, 아베이루에서 버스를 타고서야 간신히 코스타 노바에 닿을 수 있었다. 이 날은 날씨가 흐려서 사진 속 풍경만큼 끝내주는 풍경은 아니었지만 그건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 별 수가 없다. 어차피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얼마 없고 그건 내가 여행 중일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포기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선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최대한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요령 있게 포기해야 한다. 이 것 역시 여행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 중 하나다.
16세기 불어닥쳤던 대단한 폭풍 덕에 생겨났다는 코스타 노바. 동쪽은 대서양과 맞닿아있고 서쪽은 아베이루 강과 닿아있는, 조금은 독특한 지형의 마을이다. 하지만 이 마을이 유명한 건 지형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사탕을 닮은 알록달록한 줄무늬 집들 때문이다. 줄무늬의 방향은 가로인 집도 있고 세로인 집도 있으며 그 색깔도 제법 다양하다. 하지만 이 점을 제외한다면 집들의 형태 자체는 대개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누군가 작정하고 연출한 것 마냥 집들은 모두 2층 구조에 세모꼴 지붕을 갖고 있었다. 이런 형태의 집을 팔 헤이로(palheiro)라고 부른다고 한다.
팔 헤이로는 포르투갈의 해변 지역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전통 가옥이지만 이런 줄무늬는 일반적인 장식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유별나게 코스타 노바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유독 이 동네의 집들이 이렇게 된 건 호수와 바다 사이에 마을이 끼어있어 워낙 안개가 심하다 보니 바다에서 배들이 돌아올 때 안갯속에서도 눈에 잘 띄게 하려고 선명한 색깔로 줄무늬를 그렸다는 설도 있고, 모여 있는 집의 형태가 거의 흡사하다 보니 남의 집을 본인 집으로 착각하는 일이 많아 본인의 집인 걸 쉽게 알아보려고 그랬다는 말도 있는데 둘 다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진 않았다. 왜냐하면 눈에 잘 띄게 하려면 줄무늬보다는 강렬한 단색으로 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테고, 만약 줄무늬의 방향이나 색깔이 비슷하면 아무 칠도 하지 않은 것보다 도리어 더 남의 집과 헷갈리기 때문이다.
△ 비슷비슷해 보여 더욱 헷갈리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또한 평범한 어촌 마을이던 코스타 노바가 19세기 즈음부터 여름 피서지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현지인들이 여름 한철 동안 집을 빌려주며 피서객들에게 집세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손님들은 당연히 더 예쁜 집에 머무르고 싶어 할 테니 이 과정에서 본인의 집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밝은 색깔의 페인트칠을 하게 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정확한 사실은 알 수가 없다. 어차피 왜 이런 집들이 즐비한가? 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그 누구도 확실한 까닭은 모르는 건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지금은 이 집들이 예쁘고 귀여운 것을 찾는 구경꾼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는 것이니까.
이 줄무늬 집들은 정말로 누군가 살고 있는 집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게나 식당, 누군가의 여름 별장으로 바뀌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건물 자체가 아예 리모델링이 된 경우도 있지만, 오래된 집들의 경우에도 페인트 칠만큼은 대개 새것이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과 흩날리는 모래 때문에 매년 페인트 칠을 새로 하지 않으면 유지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동네마냥 예뻤던 풍경은 알고 보니 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노력으로 유지되고 있는 거였다. 물론 몹시 예쁘다 못해 작위적인 느낌도 조금은 들고 너무 인공미가 넘친다는 핀잔도 약간은 주고 싶지만 그건 회색 아파트에 사는 나의 못된 질투심에서 비롯된 불평으로 두고 넘어가야겠다. 어차피 나는 매년 페인트 칠을 하며 정성껏 내 집을 가꿀 수 있는 위인도 못되니까.
끼니때가 이미 한참 지나 뒤늦게 배가 고파왔다. 마을 안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당 또한 줄무늬 집으로 선택했다.
포르투갈의 대표 음식 중에서도 간단한 구이를 제외한 생선 요리는 기본적으로 시간이 제법 걸리는 편이니, 버스 시간이 임박했다거나, 일정상 남은 시간이 촉박하다면 절대 시도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우린 시간이 많으니 별 문제가 없다. 그리고 여긴 바닷가 마을이니까! 하는 마음에 야심 차게 생선 요리를 골라 주문했다. 뭐가 뭔지 잘은 모르지만 대구가 주인공인 요리 중에서 어설프게 ‘Fish Stew’라고 번역되어있는 메뉴를 골랐다.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며 자기네 요리사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요리라며 ‘굿 초이스’를 두 번이나 외쳐주었다. 요리의 공식 명칭은 'Caldeirada'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냄비가 테이블로 옮겨져 왔다. 그런데 냄비에 가득 담긴 음식에선 한국에서 먹던 대구탕 맛이 났다. 물론 한국의 대구탕만큼 맵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그 맛이었다. 고추 대신 파프리카가, 무 대신 감자가 들어간 것만 뺀다면 양파와 마늘이 듬뿍 들어간 시원한 국물은 대구탕의 그것과 몹시 닮아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여행은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게 한다. 그래서 낯선 곳에서 마주하는 것들은 하나하나 기억에 깊이 남는다. 내가 사는 동네와 별 다를 것도 없는 나무와 꽃들, 콜라의 맛, 심지어 출퇴근 시간대의 교통 체증까지도 모두 새롭고 신기하다. 하지만 여행은 때로는 낯선 것에서 익숙함을 찾아내게 하기도 하는 것 같다. 비행기를 16시간이나 타고 닿은 대륙의 서쪽 끝, 거기서도 또 기차를 타고, 중간에 버스로 바꿔 타고 달려 간신히 만난, 이름도 몰랐던 요리가 내가 알던 바로 그 대구탕이라니. 왠지 모를 반가움이 불쑥 고개를 들더니, 결국은 우리를 웃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