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노바 드 가이아 Vila Nova de Gaia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건너면, 그러니까 히베이라 광장의 강 건너편은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a Nova de Gaia)”라는 지역으로 엄밀히 따지면 포르투가 아니지만 그냥 일반적으로는 포르투라고 한다. 포르투 하면 역시나 포트와인(port wine)을 가장 알아주는데 어차피 이쪽 지역이 포트와인 스폿이기 때문에 이리저리 따져봐도 포르투라고 불리는 게 양쪽 모두에 이득이다.
“포르투에서 가장 유명한 건 포트와인이어서 포르투에선 포트와인 와이너리 투어가 인기 있어. 심지어 이름도 ‘port wine’이니까 도시 이름인 ‘porto’랑 비슷하잖아. 원래 porto라는 단어가 port라는 의미거든. 그런데 사실 포르투엔 포트와인 와이너리가 없어. 빌라 노바 드 가이아라는 지역에 가야만 구경할 수 있지. 물론 포르투에서 그다지 멀진 않은 동네야.”라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야 백번 간편한 얘기니까. 어차피 우리의 편의를 위해서, 혹은 또 다른 이유로 굳이 설명하지 않는 것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딱히 놀랍지도 않다.
동 루이스 1세 다리는 마치 철근으로 듬성듬성, 굵게 뜨개질을 해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역시나 아름답다. 운치 있고 낭만적이다. 스케치북이라도 펼치고 주저앉고 싶은 풍경이지만 바람이 몹시 불어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듯싶었다.
다리는 도우루 강을 기준으로 양쪽의 고지대들을 연결하기 때문에 다리를 건넌 뒤에 강변으로 내려가려면 역시나 절벽을 기어 내려가야 하는 수준이다. 이쪽엔 푸니쿨라 대신 케이블 카(Teleférico de Gaia)가 있다.
케이블 카에서 내리면 본격 와이너리 탐방을 시작할 수 있다. 이쪽엔 각종 와이너리들이 즐비하고 여러 회사들의 와인을 맛볼 수 있으니 일종의 와인 천국 같은 곳이다. 무료인 곳도 있고 돈을 받는 곳도 있는데 당연히 돈을 받는 곳이 더 맛도 좋고 설명도 자세히 해준다. 우린 총 3군데를 방문했는데 그중에선 1692년에 문을 연, 가장 오래된 포트와인 와이너리인 테일러 와인 하우스가 아마 가장 유명한 곳이었을 듯하다. 하지만 우리 입엔 croft가 더 맞았다. 빛깔도 어찌나 영롱하던지. 먹기 아까울 만큼 보석처럼 빛났다.
포트와인은 일반 와인과는 아예 다른 종류의 술이라고 봐야 한다. 포트와인은 발효가 완성되기 전에 브랜디를 섞어 숙성을 중단시키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접하는 보통의 와인보다 더 도수가 높고, 더 단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떫은 와인이라면 질색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딱인, 그래서 어쩌면 반주보단 디저트 와인으로 더 어울리겠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쪽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와인은 포트와인이 대부분으로 일반 와인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안주 없이(!!) 계속 와인만 먹다 보니 만만치 않았다. 물론 소소한 양이지만, 계속 술만 밀어 넣는 것은 꽤나 체력 달리는 일이다. 그렇게 홀짝홀짝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도 꽤 흘렀다. 하지만 이런 술은 후딱 털어 넣어 원샷하고 일어나는 그런 류의 술이 아니니까 급할 것 없다. 본래 난 맥주 한 잔으로 두 시간은 버틸 수 있는 사람인데 일명 ‘조직 생활’ 에선 그럴 수가 없었다. 여기서 한량처럼 앉아있다 보니 집에도 가지 못한 채 붙잡혀 강제로 폭탄주를 들이붓던 일들이, 그리고 ‘술 때문에’, ‘회사 생활 오래 하려면’이라는 말들로 무마되어 억지로 용서해야만 했던 수많은 죄악들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시간은 흐른다. 그에 꼭 비례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억도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흐른다. 하지만 때때로 강렬한 기억은 누군가의 인생 전체를 지배하며 영원히 그 사람을 끌고 다니기도 한다. 그건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다. 그러니까 시간의 물살을 버틸 만큼 강렬한 기억들은 부디 모두 좋은 기억들이었으면 좋겠다.
어느덧 날은 저물고 강변엔 낭만이 한층 더해져 있었다.
나의 고단했던 지난 날들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그렇게 낯선 곳에서의 하루가 또다시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