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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Jan 10. 2018

간장으로 기억되는 섬

쇼도시마 #3 야마로쿠

그간 다녀본 섬들 중에서 최고로 수려한 풍광을 뽐내는 섬을 꼽으라 했다면 아마 쇼도시마를 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건 쇼도시마의 풍광이 별로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어찌됐건 그럴싸한 섬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지 몇 달이 된 지금까지도, 나에게 쇼도시마가 '멋진 섬'으로 기억되는 건 바로 ‘간장’ 때문이다.

간장통에서 모티프를 딴 버스 정류장

 

쇼도시마는 콩 농사에 여러 조건이 잘 들어맞고, 깨끗한 바닷물도 쉬이 구할 수 있던 터라 예전부터 간장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 덕에 쇼도시마에는 아직도 전통 방식으로 간장을 띄우는 집이 여러 곳 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는 야마로쿠를 찾았다. 좁디 좁은 골목들 사이에 빼꼼히 위치한 야마로쿠. 이렇다할 투어 프로그램 같은 것은 없지만 간장이 발효되는 과정만큼은 구경할 수 있다.

 

커다란 삼나무통에 가득 담긴 ‘간장으로 진화중인’ 녀석들. 통 자체만 해도 무척이나 낡은 데다가 실타래 같은 것이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어있다. 직원은 그걸 두고 우리에게 “박테리아”라고 설명해줬지만 그건 짧은 영어로 표현하느라 어쩔 수 없었던 것 같고, 다른 내용들을 종합해볼 때 아마도 발효에 필수적인 균류(누룩?)인 것 같다. 40개 정도되는 커다란 삼나무통들은 몇대를 거쳐 계속 사용해온 것으로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오래된 것들이며 문제가 생겼을 때 수리해줄 수 있는 곳도 이젠 일본 전역에서 딱 한곳 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 그 세월의 무게가 실감났다.


이 집에서는 네 종류의 간장을 판매하는데 맛을 보니 모두 그 풍미가 매력적이었다. 그동안 “간장이 다 그게 그거지”라고 생각했던 건 아마 제대로 된 간장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음식의 본연의 맛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간장이자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는 간장. 우리도 신중히 맛을 보고 자주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녀석들로 골라 구매해왔다. 


간장이 우리 몸이 좋다는 것은 제대로 발효를 거친 경우에 한정된다. 공장에서 찍어낸 간장은 차라리 조미료에 더 가깝다. 하지만 요즘 ‘직접 담근 간장’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거니와 내 이후 세대들은 집에서 띄운 간장을 접한 세대 자체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야마로쿠에서의 일들이 기억에 남았다.

△ 야마로쿠에서 맛본 '간장을 곁들인 두부'와 간장 푸딩

단짠의 대명사급인 간장 아이스크림은 기념품 가게에서 :-)



야마로쿠에서 그닥 멀지 않은 곳에 전통방식 그대로 소면을 내는 집도 있는데, 이집 또한 문전성시다. 면이 맛있고 간장이 맛있으니 다른 고명이 없어도 충분하다. '5대 영양소를 고루 섭취할 수 있는 식사인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겠지만 맛있는 건 맛있는 것. 삶의 여러 날들 중 어떤 날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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