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두스, Obidos
오늘은 파티마를 떠나 카스카이스(Cascais)와 카보 다 호카(Cabo da Roca)를 거쳐 리스본으로 복귀하는 날이지만 일치감치 ‘여왕의 도시’로 불리는 오비두스(Obidos)에 왔다. 가이드북을 들춰볼 때는 오비두스를 ‘단단한 성벽 안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들를 생각이 없었다. 오비두스는 '축제의 마을'이라고도 불리지만 딱히 지금이 축제 시즌도 아닌 데다가 본래 축제로 대표되는 곳들은 대개 축제 중이 아닐 때는 볼거리가 없어 심심하기 그지없으니까. 무엇보다 성벽 안의 작은 마을, 축제에 죽고 못 사는 마을은 유럽에 쎄고 쌨으니 사실 별 특별할 게 없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 곳 또한 현지인이 추천했던 곳이어서 마냥 모른 척 하기엔 조금 아쉬웠기에 레이리아를 방문했던 것처럼 속는 셈 치고 방문하였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안 갔으면 어쩔 뻔했어’ 싶게 마음에 쏙 드는 동네였다.
과거 무어인들이 쌓은 견고한 성벽 안쪽으로 하얀 집들이 주황빛 지붕을 얹은 채 올망졸망 모여 있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비슷한 집들이 연달아 있으면 조금 심심한 느낌이 들 때도 있는데 오비두스의 집들은 흰 바탕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중간중간 파랗고 노란 덧칠을 하기도 했고, 붉은 꽃들도 소담스럽게 피어있어 결코 단조롭지 않았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제각각의 개성을 뽐내는 집들 사이를 거닐며 무척이나 행복했다. 날씨도 화창했고 주말을 맞아 사람들도 제법 거리에 나와있어 오랜만에 다시금 여행을 온 느낌이 났다. 여행이 계속되다 보니 여행 중이란 사실을 종종 잊게 되는데 오비두스가 그 느낌을 다시 일깨워준 것이다. 사람이 너무 바글바글한 건 최악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휑하게 사람이 없는 것도 조금은 심심하고 조금은 무서운 기분이 들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이날의 오비두스는 완벽했다. (하지만 사진 속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함정^^;)
오비두스에서 꼭 해야 한다는 것은 딱 한 가지. 진쟈를 마시는 일이다. 체리로 담가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인 체리주 진쟈는 포르투갈 전역에서 만날 수 있지만 오비두스에서 만들어진 진쟈를 최고로 친다고 한다. 오비두스는 포르투갈에서 체리가 가장 잘 익는 마을이고, 가장 잘 익은 체리로 담근 술이 가장 맛있는 것은 당연지사이기 때문이다.
마을을 걷다 보면 진쟈를 잔술로 파는 노점이 많은데, 독특하게도 보통 잔이 아니라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잔에 술을 따라 준다. 그러니까 오비두스에선 진쟈를 한 잔 마시고,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컵까지 먹어 없애 입가심을 해야 비로소 진쟈를 제대로 맛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가격은 보통 1유로. 비싸다고 생각하면 비싸지만 달콤한 맛으로 잠시나마 여행의 고단함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나름 합리적인 가격이다.
진쟈를 마셔보는 것 외에는 딱히 이 곳을 꼭 가야 해, 이것을 꼭 해보아야 해 하는 것은 없는 동네라 마음 놓고 유유자적 마을을 걸었다. 넓지 않은 동네라 그렇게 걸어봐야 금방이다. 느긋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카스카이스로 향했다. 카스카이스와 카보 다 호카를 거쳐 리스본으로 복귀할 것이다.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한국인보다는 일본인을 많이 만났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오비두스에 일본인들이 무척 많았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마을엔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것들이 가득하다. 일본인들이 좋아할 만한 분위기이긴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