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노트 #1
‘빵’이란 단어는 아마도 일어 ‘パン(팡)’에서 온 것일 텐데 이 단어는 포르투갈어인 ‘pão(빵)’에서 온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시도 때도 없이 먹고 찾는 ‘빵’은 사실 포르투갈 말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현지에서도 ‘빵’이라고 하면 다 통한다.
그런데 한국의 빵과 포르투갈의 빵은 의미가 조금 다른 것 같다. 이 동네에서는 식사용 빵만을 빵이라고 한다. ‘뭐든 간에 많이 먹으면 식사가 되는 거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를테면 식빵이나 모닝빵 같은 것 말이다. 설탕이 들어가거나 크림이 있다거나 하면 그건 빵이라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크림빵’ 같은 것은 포르투갈엔 없는 단어다.
설탕이 들어가 단맛이 나는 종류는 빵이 아니라 ‘Bolo(볼루)’라고 부르는데 이건 영어로 번역하면 ‘Cake’이지만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그런 생일 케이크의 형태가 아닌 것이 대부분이라 조금은 혼란스럽다. 심지어 이 동네에선 머핀도 볼루라고 부르는데, 내가 보기에 머핀을 케이크로 구분하는 건 좀 이상하다. 나도 ‘컵케이크’이나 ‘롤케이크’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건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기 때문일 뿐, 그것들이 진짜 케이크와 동급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걸 ‘쿠키’라고 하자니 구색이 더 이상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쿠키를 통칭하는 단어는 또 따로 있다. ‘Doce(도스)’. 그리고 ‘리스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에그 타르트’는 ‘Nata(나따)’라고 한다. 즉, 밀가루를 반죽해 구운 것이라고 해서 다 똑같이 ‘빵’으로 불리지는 않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포르투갈에는 빵과 볼루, 도스, 나따 등을 모두 통칭하는 단어가 있다. ‘Pastel(파스텔)’. 그래서 이것들을 판매하는 가게(한국말로 하면 빵집)를 ‘Pastelaria(파스텔라리아)’라고 한다. 단어가 몹시 예쁘다. 파스텔이라니! 파스텔 상자를 열면 색색깔의 향연이 펼쳐지듯 파스텔라리아에서도 맛의 향연이 펼쳐질 것만 같다.
물론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에게 빵은 그저 빵일 뿐, 더 세부적으로 구분하는 일은 적으며 그렇게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니까 이제부터 이어지는 글에서는 그냥 우리 식으로 ‘빵’으로 적당히 표현하기로 하자. 언어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언어 결정론 유의 믿음도 있지만 우리의 코와 혀는 제각각의 빵들을 모두 구분할 수 있으니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포르투갈에는 대개 ‘그 동네의 빵’이라는 것이 있다. 덕분에 새로운 동네에 갈 때마다 그 동네에서 명물로 꼽히는 빵을 먹느라 바빴다. 천안의 호두과자를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막상 천안까지 갔는데 그 동네 호두과자를 건너뛴다는 것은 무척 서운한 일이 아니겠는가. 비슷한 마음으로 아베이루에서는 오부스 몰레스를, 신트라(Sintra)에서는 케이자다(Queijada)와 트라베세이루(Travesseiro)를 열심히 챙겨 먹었다.
내가 만난 포르투갈의 빵들은 세련되고 예쁘다기보단 좀 투박했다. ‘이렇게 예쁜 걸 어떻게 먹어?’ 할 만한 녀석들이나 SNS에 업로드를 다짐하게 하는 녀석들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오늘 제빵사가 휴가여서 다른 직원이 적당히 만들었나?’ 싶은 수준의 빵들도 많이 봤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맛은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을 맛이었다. 보기에 퍽퍽해 보이는 빵들도 실제론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멋 부리지 않은 빵들 모두 정겹고 소박해서 좋았다. 아침마다 빵 하나와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즐거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빵 때문에, 그저 빵 때문에라도 다시 포르투갈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