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Lisboa
결국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그토록 돌아가기 싫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갈 날이 오고 보니 또 그다지 싫지는 않다. 무거운 캐리어에서 해방된다는 것도 달갑고, 좁디 좁은 호텔방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은 홀가분한 마음도 든다. 한국에 두고 온 고양이와 강아지도 보고 싶다.
아무리 '살아보는' 여행이라고 해도 여행은 여행이고 우리는 이방인인지라, 우리는 늘 돌아갈 곳이 그립다. 나만의 베이스 캠프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아무리 바깥에서 험난한 일을 겪었어도 이 곳에서만큼은 안전해, 아무도 나에게 함부로 하지 못해 하는 안도감을 주는 곳. 우리에게 그런 곳은 결국 집이었나 보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찾은 먼 이국에서, 많은 날들을 보내며 깨달은 것이 결국 '우리는 포르투갈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야한다'는 것이라니. 하지만 그건 포르투갈이 재미 없고 싫어서가 아니라 내 집이 있는 곳이 아니기에 그런 것이다. 그 뿐이다.
곧장 공항으로 가기엔 좀 이른 시간이라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들러보기로 했다. 카르무 수도원이다. 카르무 수도원은 리스본 대지진으로 인해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다. 그런데 그 모습은 누군가 무의 윗동을 베어 없앤 듯 뚜껑만 휙 날아간 모양새다. 기둥이나 뼈대는 제법 남은 채, 천장만 폭삭 내려앉은 수도원은 무척이나 생경한 느낌을 자아냈다.
게다가 이 곳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고고학적으로 의미 있는 유물들이 발견되어 복원은 중단되었고, 과거에 예배당으로 쓰이던 건물을 아예 고고학 박물관으로 바꿔버린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장소이기도 하다.
뼈대만 남아있는데도 이 정도이니, 원래 건물은 엄청나게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냈을 것 같다. 하지만 예전의 그 모습은 알 길이 없으니 빈 공간은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 밖에 없을 터. 그래서일까, 유독 이 곳에는 주저앉아 슥슥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스케치북 속 수도원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수도원 바로 옆엔 이전에도 몇 번 이용했었던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와 전망대가 있다. 정말 마지막으로 이 곳에 다시 올라 포르투갈에서의 시간들을 마무리 해본다. 이제 리스본 공항을 거쳐 서울로 향할 것이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에 발을 들일 때는 포르투로 들어왔었으니 "포르투 인 리스본 아웃"으로 간단히 설명될 여정. 하지만 포르투와 리스본 사이에서 보낸 많은 날들은 우리의 여권을 비롯한 공식적인 무언가에는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날들은 우리만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날들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좁은 골목과 주황빛 지붕을 얹은 집들 사이사이에 우리의 그림자가 한 뼘 쯤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아봐줄 누군가가 혹시 있을까. 지구의 반대편, 그 중에서도 무려 “세상의 끝”으로 불리는 이 곳에 아주 조그만 그리움만을 남겨둔 채 이제는 정말 일상으로 되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