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재료, 한 잔의 술

여행자의 노트 #3

by 나예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내 경우에 그 나라의 술을 마셔보는 재미를 여행의 재미에서 빼놓으면 섭섭하다. 게다가 포르투갈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식비가 저렴한 편인데, 술값 또한 마찬가지이니 매끼 반주를 곁들이기 참 좋은 나라이기도 하다. 덕분에 머무르는 동안 꽤 자주 술을 마신 것 같은데 다른 곳에선 보지 못했던 조금 독특한 술들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와인]

유럽의 와인이라고 하면 이탈리아나 프랑스, 스페인 정도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나라들이 독자적인 와인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포르투갈도 마찬가지이다. 2017년 기준으로 포르투갈은 전세계에서 와인 생산량 11위를 기록했으며, 계속 성장 중이다.


포트 와인(Port Wine)

포르투갈의 와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마도 포트 와인(Port Wine)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포도의 품질, 숙성 기간 등에 따라 루비(Ruby), 토니(Tawny), LBV(Late-Bottled Vintage), 빈티지(Vintage) 등으로 구분된다.

포트 와인은 발효가 완성되기 전에 브랜디를 섞어 숙성을 중단시키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접하는 보통의 와인보다 더 도수가 높고, 더 단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예전에 영국으로 와인을 운반하던 중,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와인에 브랜디를 섞었던 것이 포트 와인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보다 훨씬 더 예전부터 포르투갈의 뱃사람들이 항해를 떠날 때 와인에 브랜디를 탔었다는 설도 있다.

포트 와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포트 와인 와이너리 투어나 시음 등 관광객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으니 염두에 두자


비뉴 베르드(Vinho Verde)

포르투갈 북부(미뉴 지방)에서는 기후의 영향으로 포도가 완전히 익기 전에 미리 수확을 해야 했는데, 이렇게 덜 익은 포도로 와인을 만들다 보니 덜 달고 도수도 낮은 와인이 만들어졌다. 이 와인을 비뉴 베르드(Vinho Verde)라고 한다.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포도를 완전히 익혀 수확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뉴 베르드는 생산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영어로 번역하면 ‘Green Wine’이 되는데 덜 익어서 푸르스름한 포도를 뜻하는 것일 뿐 정말로 와인이 녹색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화이트 와인과 비슷한 색감으로 약간 연둣빛이 도는 정도이다. 가볍고 상큼한 느낌에 다른 와인보다 단맛도 덜하기 때문에 특유의 깔끔한 청량감이 특징. 도수도 낮으니 한번 시도해보기에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일반 와인(Still Wine)

포르투갈의 와인이라고 하면 포트 와인이나 비뉴 베르드가 대표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반적인 와인(Still Wine)의 품질 또한 결코 뒤지지 않는다. 다만 이런 와인은 대부분 내수용으로 생산되고 소진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홍보가 잘 안 되어 외국인들에게는 인지도가 낮은 상황이라고. 하지만 다른 유럽 와인들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수준의 와인을 비교적 저렴하게 맛볼 수 있어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존재다. 보통은 도오루(Douro) 와인을 최상급으로 치며 알렌타주(Alentejo) 와인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맥주]

포르투갈 맥주의 양대산맥은 역시 ‘수페르복(Superbock, 한국에선 보통 수퍼복이라고 한다)’과 ‘사그레스(Sagres)’일 듯하다. 한국과 다르게 조금 독특한 점은 아주 작은 미니 사이즈의 맥주가 꽤 보편적으로 팔리고 있다는 것. 소용량은 역시 부담 없이 마시기에 좋다.

식당이나 바에서 생맥주를 주문할 경우도 있다. 그런데 포르투갈은 아주 작은 나라이면서도 지역색이 분명해서 같은 생맥주를 리스본에서는 ‘임페리알(Imperial)’, 포르투에서는 ‘피누(Fino)’라고 한다. 포르투에서 임페리알을 찾거나, 리스본에서 피누를 찾으면 종업원들이 조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이건 내가 이방인이어도 예외가 아니다.

헷갈릴 것 같으면 차라리 ‘세르베자(Cerveja)’라고 외치자. 이 단어는 지역색과 관계없는 중립적인 단어다. 그리고 생맥주에 세븐업 등 탄산음료를 섞어 먹는 경우도 많아 깜빡 주문을 잘못하면 맥주답지 않은 달콤한 음료가 나오기도 한다.


[그 외]

아멩두아 아마르가(Amendoa Amarga)

아몬드로 만든, 시원하게 마시는 술로 정확히 어떻게 만드는 건진 모르겠지만 정말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달다. 과일의 단맛은 아니지만 그 맛이 너무 강해서 식사와 함께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대신 늦은 밤 바에서 안주 없이 홀짝홀짝하기에 좋았다.


아구아르덴트 벨랴(Aguardente Velha)

비뉴 베르드를 만드는 포도를 가지고서 코냑을 만들 듯이 오크통에서 숙성시켜 만드는 술이라고 한다. 브랜디여서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이런 술을 음미하며 찬찬히 마실 수 있는

날이 오긴 오려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향은 정말 좋다. 술잔에 절로 입술을 가져다 댈 향이다.


진쟈(Ginjinha / Ginja)

아마 포르투갈의 전통술 중 가장 잘 알려진 술일 텐데, 체리로 담근 술이기에 체리 특유의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워낙 달기 때문에 많은 양을 마시기는 어렵다. 이 술은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잔에 따라 먹어야 제대로 먹었다고 할 수 있다. 한 잔 쭉 마신 후 쌉싸름한 맛의 초콜릿 컵까지 우걱우걱 먹어 없애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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