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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Jan 03. 2017

맛있으면 행복하다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11

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무척이나 즐기는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제법 많다는걸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숨겨진 뒷이야기를 몰라서 재미가 없는게 아닐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런 수준이 아니고 뭔가 정리해서 늘어놓은걸 쳐다보는게 지루하단다. “파리에 다녀왔다면서 루브르 박물관에 안갔다고?!” 라든가 “피렌체에서 우피치 미술관 안가고 뭐했어?!” 따위의 말을 듣기 싫어 억지로 방문을 해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재미가 없다고.


그런 사람들에게 포르투갈은 최적의 여행지가 될 것 같다. ‘포르투갈에 방문했다면 꼭 가보아야 할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건 없다. “포르투에 갔었다면서 소아레스 도스 레이스 미술관에 안 갔단 말이야?!” 따위의 질문을 할 사람은 별로 없다. 고로 편안하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둘러보기 좋은 동네다. 나도 포르투갈에 머무르는 동안엔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고 매일 술을 마시고 빵을 먹고 바깥을 실컷 걸었다. 이러면 잠자리가 바뀌어도 별 상념 없이 잘 잠들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난 미술관과 박물관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소아레스 도스 레이스 미술관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미술관 덕후가 기껏 포르투까지 왔는데, 그건 안 될 말이다. 게다가 이 미술관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관이라고 하지 않는가!


소아레스 도스 레이스 미술관은 처음엔 이런 이름이 아니었지만 포르투 출신의 조각가인 '소아레스 도스 레이스'를 기리기 위해 후에 이름이 바뀐거라고 한다. 미슬관에선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포르투갈 화가들의 작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어 사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품은 없었다. 그리고 그림뿐 아니라 포르투갈에서 만든 세라믹 제품들이나 악세사리, 금속 세공품 등도 많이 전시되어있어 보통의 미술관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지기도 했다. 굳이 따지자면 미술관보단 좀 더 박물관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그 중에서도 역시 소아레스 도스 레이스의 조각 작품들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한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깊은 미술관의 이름에까지 올라 있는 사람이니 그저 그런 사람일 리가 없겠지.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은 로댕의 작품을 닮은 듯 하면서도 그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조각 작품들을 볼 때마다 매번 느끼는거지만 돌을 깎아 이렇게 만들 수 있다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찰흙이나 비누로도 이렇게는 조각 못할 것 같은데. 꼬마 숙녀의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나 풍성한 레이스의 표현, 건강한 신체에 알맞은 적당한 근육을 구현해 둔 것 등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사실은 말랑한 촉감인거 아냐?’ 싶어 직접 만져보고 싶었지만 그런 행동은 당연히 안되는 것이므로 꾹 참았다. 반짝반짝하는 대리석 특유의 질감 덕분에 이 조각들이 진짜 돌덩어리라는걸 간신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귀여운 꼬마 숙녀, <비스콘데사>

△ 그의 작품 중 가장 대표작인 <추방자>, 그를 자살로 몰고 간 여인의 모습을 표현한  <영국 여인의 흉상>


포르투에서의 모든 여정을 마치고 리스본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인상 깊게 읽고(책) 본(영화) 탓에 야간열차를 탈까 생각도 했지만 여러 여건상 주간열차로 표를 끊었다. 대신 ‘3시간 정도 걸릴 예정이니까 도착하면 야간이 되어있겠군‘ 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덧 리스본에 도착해 지하철을 탔다. 1호선, 2호선 대신 새 라인, 꽃 라인 등으로 표현해둔게 귀여웠다. 노선도만 봐서는 아기자기하고 낭만적일 것 같지만 지하철도 지하철역도 의외로 어둡고 울적했다. 이 날은 리스본에 발을 들인 첫날이자 밤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 당시에 느끼기엔 약간 무서울 정도였다.


낯선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일종의 긴장감과 함께 하는 일이기에 꽤나 피곤하다. 이동은 기차가 다 했지만 사람도 함께 지쳐버렸다. 때문에 저녁은 근처에서 간단히 먹기로 했다.


다들 데이트라도 하는 듯,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탈리안 피자집에서 피자를 먹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눈에 띄는 이방인은 우리 뿐이다. 두 명이서 피자를 한 판만 주문하니 조금 의아해하는 듯 하더니 아예 처음부터 반 나눠서 가져다 준다. 배려가 넘치는군!


이 피자는 지금까지도 기억날 정도로 무척이나 맛있었다. 물론 포르투갈에 와서 포르투갈 음식을 안 먹는건 바보 짓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그 나라 음식만을 먹어야한다는 것도 일종의 강박이다. 한국에도 초밥 맛집이 있고 스테이크 맛집이 있지 않은가. 어떤 음식이건간에 그저 맛있으면 행복하다. 맛있는 피자 하나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임을 멀리와서야 겨우 깨달은 것 같다.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매거진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이야기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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