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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Jan 09. 2017

새들은 둥지로, 사람들은 집으로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15

상 도밍고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많이 봐왔던 유럽의 성당들과는 무척이나 다른 모습이다. 외관은 그럭저럭 멀쩡했기에 내부가 이런 모습일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화려하고 우아하기는커녕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다. 많은 부분이 부서졌고 시커멓게 그을렸다. 어떻게 이렇게 처참한 모습 그대로 놔둘 수가 있어?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성당이 본연의 역할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성당엔 여전히 신도들이 찾아오며 경건히 미사를 드린다.


분명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겠지만 리스본 대지진과 연이은 화재로 심하게 망가진 후, 지금까지도 복원하지 않은 것이다. 고쳐놓아도 자꾸만 큰 일이 생겨서 망가지니까 결국엔 복원을 포기한 걸지도 모른다. 절망이라는 것을 그려낼 수 있다면 이 성당은 절망 그 자체인 것만 같았다. 신이 어찌 당신의 집을 이리도 심하게 망가트린단 말인가.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여러 수난을 겪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버텨왔다는 것만으로도 상 도밍고 성당은 이미 기적을 증명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성당으로 보는게 더 옳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아주아주 화려한 성당 앞에서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다. 이토록 누군가를 수탈하고 쥐어짜내어서 신의 집을 만들어 내는 것이 과연 신의 뜻일까. 물론 그 시대의 가치관을 지금의 가치관으로 바라볼 수는 없지만, ‘천국에 갈 수 있는 티켓‘이라는 물건까지 만들어가며 사람들을 현혹해 신의 집을 호화롭게 짓는 것이 과연 옳을까. 그렇다면 아마도 그런 짓거리가 꼴보기 싫어 작정하고 본보기로 상 도밍고 성당을 홀랑 태워버린건 아닐까 싶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찡해졌다. 감탄을 자아낼 만큼 대단한 장식이나 건축 요소 같은 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볼거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폐허에 가까운 공허한 공간에 그저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었다. 다른 멀쩡한 성당들을 놔두고 굳이 이런 성당을 찾아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은 무엇을 얼마나 더 간절히 바라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드릴 기도가 없다.


성당 바로 옆엔 진쟈를 잔술로 판매하는 작은 가게가 있어 늘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집집마다 진쟈 맛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그나마 이 집의 진쟈가 조금은 덜 단 느낌이다. 이 집에서는 잔 안에 체리도 한 알씩 넣어준다. 하지만 이 체리는 사실 너무 시어서 먹을 수가 없으니 그저 잔 안에 채우는 술의 양을 줄이는 역할을 할 뿐이다. 마치 과자 봉지 안의 질소 같은 녀석이다. 


진쟈에 대한 아주 약간 더 자세한 소개는 이쪽 ▽▼▽


겨울이라 낮의 길이가 무척이나 짧다. 대부분의 유럽은 여름엔 해가 무척이나 길어 제대로 된 야경을 보려면 밤 10시~11시까지 잠을 참고 기다려야하지만 겨울엔 그러지 않아도 되어 좋다. 사실 겨울 유럽의 낮 길이가 짧다고 해봐야 서울과 비슷한 수준이니 심하게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면 별로 문제될 것도 없다. 아무튼 일몰은 꼭 강을 끼고 보고 싶었기 때문에 얼른 택시를 타고 다리를 건너 강 건너편으로 향했다. 우리가 건넌 다리는 본래 ‘살리자르 다리’로 불렸으나 지금은 ‘4.25 다리’로 불리는, 금문교를 꼭 빼닮은 다리였다. 살리자르의 독재에 반대하는 혁명의 날이 1974년 4월 25일이었으니까 다리의 이름은 완전히 반대되는 느낌으로 바뀐 셈이다. 4.25 혁명을 카네이션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래서 4.25 다리 또한 카네이션 다리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재빨리 이동한 덕분에 적절한 타이밍에 지는 해를 감상할 수 있었다. 구름이 제법 많아 깔끔한 일몰은 볼 수 없었지만 아무려면 어떠냐 싶었다. 중요한 것은 일몰 자체가 아니고 하루가 끝난다는 것이다. 이제 곧 새들은 둥지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곳엔 크리스투 헤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예수상이 있다. 워낙 높기 때문에 리스본 어디에서도 이 예수상을 볼 수 있고 포즈도 무언가를 감싸안는 듯한 포즈여서 마치 예수상이 리스본이라는 도시 전체를 끌어안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예수상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생각보다 적은 희생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말은 하는데, 사실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을 보고 샘이 나서 비슷하게 만든 거라는 말도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은 브라질이 포르투갈에서 독립한지 100주년이 된 것을 기념하려고 만든 것이니 생각해보면 참 웃긴 얘기다. 그리고 비록 그 거리는 아주 멀지만 크리스투 헤이와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한다.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매거진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이야기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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