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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Jan 10. 2017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좇는 여행은 가능할까

열 다섯개의 이야기를 전하고 쓰는 번외 #3

파스칼 메르시어가 2004년에 발표했던 소설인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2013년에 영화화 되었고 그 이듬해 한국에서도 개봉했다. 당시 입소문 덕에 다양성 영화(개봉 스크린 수 100개 미만) 중 관객수 2위를 차지하는 등 제법 흥행했고 총 누적 관객수는 78,000명 정도 되었다. 몇 년 전 영화인데도 리스본을 배경으로 하는 워낙 영화가 적다보니, 아직도 리스본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찾아보곤 한다.      


영화 속에서 리스본은 정말로 멋지고 아련하게, 당장이라도 짐 가방을 챙겨 떠나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도시로 그려진다. 실제로 리스본을 여행하는 사람들 중 이 영화를 봤다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이 영화 때문에 일부러 리스본에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그려진 것들을 리스본에서는 정말로 만날 수 있는 걸까? 그래서 알아봤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실제와 허구.


※ 아래에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며, 영화를 관람하신 분들이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없다

주인공인 그레고리우스는 출근길에 다리 위에서 투신하려는 여자를 구한다. 하지만 여자는 이내 붉은 가죽 코트와 낡은 책 한 권, 그리고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남겨둔 채 사라진다. 잠시 고민하던 그레고리우스가 그 기차를 잡아타고 리스본으로 향하면서 이야기는 본격 시작된다.  

하지만 사실 그레고리우스가 살고 있던 베른에서 리스본까지 가는 직통 열차는 없다. 야간이건 주간이건 아예 없다. 만약 정말로 스위스 베른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기차를 타고 가려면 2~3번은 갈아타야하고 총 소요 시간은 24시간 정도다. 중간에 TGV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요금은 낮게 잡아도 300유로(약 40만원) 이상으로 봐야한다. 심지어 비행기로 간다고 해도 직항이 없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열차로도 비행기로도 베른에서 리스본까지 가는 일은 고행 수준이다.


그레고리우스가 열심히 독서하던 그 벤치는 진짜다

리스본에 도착한 후, 그레고리우스는 여자가 두고 간 낡은 책 <언어의 연금술사>를 읽으며 그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를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는다. 아마데우는 과거 의사이자 살리자르의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였던 인물. 그레고리우스가 열심히 이 책을 읽던 곳은 상 페드루 지 알칸타라 전망대의 벤치로 멋진 풍경 덕에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곳 중 한 곳이다.      

이 곳에서 보이는 리스본은 낮이건 밤이건 상관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아마데우는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래. 이에 그레고리우스는 책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이자 레지스탕스 동지들이었던 조지와 스테파니아를 찾아 나선다.     


언덕의 골목길들은 어디에나 있다

언덕의 골목길을 헤메던 중 자전거와의 충돌로 안경을 깨트리는 바람에 그레고리우스는 안과를 찾게 되고 여기서 안과 의사인 마리아나를 만나게 된다. 우연히 마리아나의 삼촌인 주앙이 예전에 아마데우와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동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주앙을 찾아 강 건너의 요양원으로 향한다.      

그레고리우스가 묵었던 호텔, 헤메고 다니던 언덕의 골목과 계단들, 자전거와 부딪혀 안경을 깨트렸던 곳 등은 대부분 알파마나 바이후 알투 지역으로 보였다. 영화 속에 진짜로 등장한 골목도, 등장하지 않았던 골목도 분위기는 비슷비슷하다.      

극 중에서 안경을 깨트린 장소는 이쯤 된다. 실제로도 자전거와 트램, 여기에 이젠 툭툭까지 더해져 정신이 없다. 계단도 끝없이 많다.


그리고 그리 중요한 장면은 아니지만, 여정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그레고리우스가 양복점에 들러 갈아입을 새 셔츠들을 몇 벌 사는 장면이 있는데 이 양복점 또한 진짜 있다.     

리스본의 대표적 번화가인 바이샤 지구에 이 양복점이 있다.


요양원으로 향하는 페리는 있지만, 영화 속 그 페리가 아니다

그레고리우스가 주앙을 만나기 위해 페리를 타고 강을 오가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 여러 번 나온다.

실제로 리스본에서 강을 건너는 일은 흔한 일이며 많은 사람들이 페리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도 한다. 다만 영화에 등장하는 하얀 페리는 신식 페리인데 사실 이 페리는 영화 속에서 가는 방향(예수상이 있는 곳)으로 가지는 않는다. 그 쪽으로 가는 배는 구식 페리로, 이렇게 생겼다.     

대중교통수단의 하나로 영화 속 페리보다 사이즈도 훨씬 크다


사실 조지의 약국은 약국이 아니다

주앙과의 대화 끝에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의 친구였던 조지를 만나기 위해 그의 약국에 찾아간다. 당시 반독재 투쟁을 위한 거사를 은밀하게 도모했던 조지의 약국. 조지는 아직도 약국에 불을 켜둔 채 밤마다 아마데우를 기다린다.

이 약국은 사실은 약국이 아니라, 와인 등을 보관하는 물류 창고이다. 용도가 몇 번 바뀌긴 했어도 한 번도 약을 판 적은 없다고 한다.      

그나마 영화 속 모습과 가장 비슷하다


아마데우의 집은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

영화 속 극적인 사건들은 모두 아마데우의 집과 관련이 있다. 아마데우가 의사로서 고민 끝에 비밀 경찰 멘데스를 살려낸 곳은 본인의 집 안에 있는 진료실이었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배신자’라며 모욕을 당하는 곳도, 스테파니아와 함께 조지를 피해 달아나던 장면에 등장한 곳 또한 본인의 집 앞이었다.

아마데우의 집은 실재한다. 내부는 세트였지만 건물은 정말 있다. 그런데 지금은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 새로운 주인의 취향에 맞게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공사가 끝나면 영화 속 그 외관의 집은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

공사는 몇 달 째 계속되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그 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 속에 등장했던 많은 부분은 세트였고, 실재하는 것들도 조금은 다르게 인용되었던 것 같다. 물론 우리에게 보여지지 않는 것들이 더 많을 터. 그건 삶도 영화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영화 속 장면보다도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엔 이런 대사가 있다.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단 한 번의 우연으로 리스본을 찾았고, 그 우연에 운명을 맡겼던 그레고리우스처럼 우리에게도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그런 우연이 찾아들기를 바래본다.     


또 이 영화에는 이런 대사도 있다.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다.

아마데우의 이야기는 물론 허구지만 그 배경은 1970년대였고 카네이션 혁명은 정말로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카네이션 혁명으로부터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이 말은 지금도 통하는 것 같다.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기사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기사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4. 영화 포스터 및 스틸 컷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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