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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Jan 12. 2017

포르투갈은 선물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16

이미 어두워지긴 했지만 비싼 돈을 주고 택시를 타고서 강 건너편까지 왔으니 이쪽도 조금 돌아봐야겠다. 이쪽엔 ‘카실랴스’ 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자잘한 소품을 파는 가게들이 조금 있고 해산물 레스토랑이 많은 곳이다.


이때가 11월 중후반 정도였는데,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조금씩 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모양새들이 세련되고 예쁘다기보단 단조롭고 투박하다. 어찌보면 좀 촌스럽기도 하다. 그나마 리스본은 큰 도시니까 제일 그럴싸한 수준인건데도 이 모양이다. 리스본조차 이 수준이니 다른 시골 동네들은 더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계속 보다보면 또 정감이 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포르투갈에 있는 동안에도 분명 심적으로 힘들었지만, 우리를 둘러싼 풍경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건 정말 미적으로 아름다워서라기보단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는 매력 있는 풍경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만약에 어설프고 소박한 것들을 구질구질하다고 느낀다면 포르투갈은 분명 살기에, 혹은 여행하기에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인간미라거나 푸근함을 느끼는 타입이라면 포르투갈은 그냥 그 자체로 선물 같은 곳이다. 우린 후자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머무르는 내내 무척이나 좋았다. 모든 걸 자로 잰 듯한 도시와 그런 도시보다 더 뾰족한 사람들 사이에서 버티느라 지쳤던 마음은 여기에 와서 분명 많이 편안해졌다.


어머, 식당에 사람이 한 명도 없네. 비수기라서? 혹은 경기가 안 좋아서? 맛집이 아니라서? 오만 생각이 다 들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시간이 너무 일러서였다. 아직 저녁 식사 시간이 아닌 것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보통 저녁을 9시쯤 먹는다. 식당에 가보면 8시 반 정도 되어야 사람이 좀 있다. 심지어 8시엔 한산하다. 그 전엔 아예 영업을 안 한다. 그래서 우린 적응이 될 때까지 늘 배고팠다. 회사에선 보통 밥을 6시에 먹었으니까..


넘어올 땐 다리를 통해 넘어왔지만, 돌아갈 때는 페리를 타기로 했다. 리스본에선 페리가 보편화된 대중교통 수단으로, 페리를 타고 강을 건너 출퇴근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한국에선 일상적으로 배를 탈 일이 없어 배라는 교통수단에 별로 익숙지 않기 때문인지 난 배에 대한 약간의 환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조금은 기대했는데, 관광용 유람선이 아니어서인지 내부 시설은 그저 그랬다. 


강을 되건너왔으니 슬슬 오늘의 일정도 마무리가 되어간다. 마지막으로 노란 푸니쿨라를 타고 산타 카타리나 전망대에 올랐다. 조금 전에 만나고 왔던 예수상이 멀리 보인다. 예수상과 4.25 다리에 불을 밝힌 모습이 한밤의 테주강과 어우러져 운치있다. 


강 건너까지 돌아다니다보니 어느덧 현지인들의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있었다. 산타 카타리나 전망대 근처에 약국을 컨셉으로 한 재미난 레스토랑이 있어 현지인들과 어울려 식사했다. 약국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신다는게 조금 이상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우리 모두 한 두군데 쯤은 아픈 곳이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그리고 맛있고 행복한 시간은 정말로 우리를 치유하기도 하니까.


이렇게 오늘 하루가 간다. 많이 걸었으니까 분명 잘 잘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매거진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이야기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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