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의 미학, 모카포트

이탈리아, 로마

by 나예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커피가 익숙하지만 집에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일 배짱은 없다. 그럴 만한 공간도 없거니와 관리도 만만찮을 것 같아 고민하던 중 대체품으로 몇년 전 이탈리아 여행에서 업어온 모카포트를 꺼냈다. 모카포트만 있으면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린 것과 흡사한 맛의 커피를 간편하게 만들 수 있다. 모카포트에 분쇄된 커피 가루와 물을 적당히 담아 버너에 올려 적당히 끓이면 곧 온 집 안에 커피향이 가득 퍼진다. 이른바 적당히의 미학. 진정한 아날로그라고 할 수 있다. 이렇다보니 내릴 때마다 커피 맛에 조금씩 차이가 있어 이 또한 나름의 재미라면 재미다.


모카포트는 적당히 사용하기도 쉽고 열 전도율이 우수해 추출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점이 장점이지만 부식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한 물건이기도 하다. 몇 번 사용하다보면 녹이 슬었나? 싶게 내부가 거뭇해지는데 이는 커피 찌꺼기가 달라 붙거나 커피 물이 든 것으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얗게 변색된 경우는 녹이 슨 것이므로 더 이상 사용하면 안된다. 이 지경이 되면 그 때는 선반 위에 고이 올려 인테리어 소품으로, 혹은 지난 여행을 추억하는 물건으로만 활용 가능한 신세가 된다.


내가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이탈리아에 대한 책을 지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에는 스타벅스가 없었다. (지금은 드물게나마 상륙한 모양) 고작 몇 년 전이지만 "아메리카노를 왜 마셔? 그건 그냥 브라운 워터잖아" 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이 친구들은 지금도 여전히 아메리카노는 커피가 아니라 물일뿐이며 에스프레소가 진짜 커피라고 믿고 있다.)


아메리카노에 대한 이런 시큰둥한 태도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탈리아 사람들은 에스프레소만 마신다'는 말도 있지만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이 말을 맞게 고치려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에스프레소 위주의 베리에이션 음료를 마신다고 해야할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하다보면 에스프레소 위에 약간의 우유 거품을 올린 에스프레소 마끼아또, 우유 거품 대신 생크림을 올린 카페 꼰 빠냐, 젤라또에 에스프레소를 끼얹은 아포가또, 에스프레소 샷에 40도 정도의 리큐어를 첨가한 카페 꼬레또 등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어 에스프레소로도 이렇게 다양한 음료가 가능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질리
베로나에서 만난 카페


가장 유명한 모카포트 브랜드는 아마도 비알레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브랜드로 1933년 알폰소 비알레띠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후 그의 아들인 레나또 비알레띠가 가업을 물려받았다. 몇 년 전 레나또 비알레띠가 사망하고서 유족들이 그의 유골을 일반적인 납골함 대신 대형 모카포트에 담아 안치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개성있는 장례식 그 자체보다도 평생에 걸쳐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해 마지막까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그 사실이 무척이나 부럽다.

모카포트는 기본적으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위한 용도이기 때문에 사이즈가 작은 편이다. 아메리카노가 결국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는 것이기는 하지만 작은 모카포트로 추출한 에스프레소에 왕창 물을 타다보면 자칫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진한 아메키라노를 원한다면 모카포트 자체를 조금 큰 사이즈로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내 기준으로 2잔의 아메리카노를 만들때는 3인용 모카포트를 쓰는 것이 잘 맞았다.


※ 모카포트에 사용할 원두는 핸드 드립용 보다는 가늘게, 하지만 에스프레소 머신용보다는 두껍게 갈아주는 것이 좋다.

※ 이탈리아에서 만났던 커피들. 단 한 잔도 허투루 내린 맛없는 커피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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