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던 모습의 어른, 츄러스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by 나예

‘놀이 동산의 추억’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던 츄러스가 스페인에서 온 먹을 거리라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나름 놀랄 만한 일이었다. 츄러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빨간 천을 휘두르며 검은 소를 자극하는 ‘투우’ 게임을 즐기는 나라가 지구 어디엔가 있다” 정도만 알던 어린 시절이었는데 어찌저찌하다보니 어른이 되어 스페인에 오게 됐다. 당시에 내가 원하던 모습의 어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원조 츄러스를 스페인 현지에서 맛볼 정도의 어른이 되기는 한 모양이다.


그렇게 만난 스페인의 원조 츄러스는 내 기억 속 츄러스와 사뭇 달랐다. 이쪽은 밀가루 반죽을 짤주머니에 넣고 짜내어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낸 단촐한 과자. 츄러스 특유의 별을 닮은 각진 모양은 짤주머니 마개의 모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에 반해 그간 내가 알던 츄러스는 도톰하고 다소 폭신해 빵을 닮은 식감에 설탕 가루가 잔뜩 뿌려진 모습. 아마도 미국식 변형이 아닐까 싶다.


스페인에서 츄러스는 주로 아침 식사 거리. 핫 초코와 함께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핫 초코는 말이 핫 초코일 뿐 엄청나게 꾸덕한 식감으로 거의 액상 초콜릿에 가깝다. 물에 가루를 탄게 아니라, 고체 초콜릿에 열을 가해 녹인 정도의 느낌이라 후루룩하고 마실 수는 없는 진한 농도다. 퍼먹기 위한 스푼은 필수!

엄청난 양의 핫 초코들


덕분에 일종의 소스처럼 츄러스를 찍어먹기에 딱 좋았었는데 오늘은 농도 조절에 실패하며 망해버렸다. 어쩔 수 없이 스페인의 기분을 낼 정도로만 간신히 찍어먹고 나머지는 원샷. 꿀꺽꿀꺽 소리가 절로 나는 결과물이었다. 그래, 이런 날도 있지. 물에 술을 탄 것 정도도 되지 못하고 물에 물을 탄 것 마냥 맹탕 같은 날. 어찌 모든 날이 야물게 똑 떨어질 수 있으랴.


내일의 핫 초코는 부디 알맞는 농도이기를. 내일의 나와 감자도 여전히 행복하기를.

꼴보기 싫은 기다란 밀가루를 언제 패줄까 주시 중..
찍어 먹기엔 묽은 식감의 핫 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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