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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Jun 17. 2020

책 읽는 사람에 대하여

꺼져요, 제발

기본적으로 우리에겐 "책을 읽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 같은 것이 있다. 교양 있을 것 같고 경우도 바를 것 같고, 차분할 것 같고 합리적일 것 같고 예의도 바를 것 같은, 겸손할 것 같고 남의 의견도 경청할 것 같은, 한 마디로 바르고 좋은 사람. 거기다 항상 옳은 결정만 할 것 같기까지. 하지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는 환상에 불과한 것이며 "책 읽기가 취미인 사람은 이러저러한 사람이다" 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나 역시 당연히 이런 사람이 못되는데 그래서인지 책 읽기가 취미라고 말하면 "니가?" 라든가 "안 그럴것 같은데"하는 말이 꼭 따라 붙는다. 이는 영화 보기나 맛집 투어가 취미라고 할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그냥 어떤 사람의 취미가 책 읽기일 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 봐줄 순 없는걸까? 영화 보기나 맛집 투어가 취미인 사람에 대해서는 그닥 이런 말들이 없는데 책 읽기가 취미인 사람에 대해서 유독 이런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 매번 새롭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다.


거기다 글을 쓴다는 이야기도 덧붙이게 되면 상황은 더 피곤하게 흘러간다. 보통은 SNS는 시간 낭비 서비스라는 말도 모르느냐, SNS 좀 열심히 하는걸 글 쓰는거라고 할 수 있느냐, 부터 시작되는데 때로는 이런 채근질이 너무 버거워서 상대가 묻지도 않은, '이미 그렇게 책을 다섯 권 냈다'는 말을 내가 먼저 꺼내는 경우도 있다. 그럼 또 갑자기 '작가님이셨구나'하면서 반응이 달라진다. 물론 늘 긍정적인 반응만 따라오는 것은 아니고 '니가? 나도 책이나 내볼까ㅋㅋ'하는 식의 비꼼이 따라올 때도 있기는 하지만 책을 낸다는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니까 이쯤 되면 비하 대상이 되는 일은 면할 수 있고 대화의 주도권도 적당히 빼앗아올 수 있게 된다.


심지어 책 읽는 사람에 대해서는 외모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도 있는 모양이다. 난 이런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정말 지겨울 정도다.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봤는데 책을 보고있더라고? 책 같은건 한 글자도 안읽게 생겼는데"

한 번은 듣다듣다 어이가 없어서 그럼 대체 책을 읽게 생긴건 뭐냐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


"글쎄.. 적어도 너는 아니지"라고.


무엇을 읽고 무엇을 쓰는지가 본질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본질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책'을 읽는다, '글'을 쓴다 는 그 자체만 가지고 어울리네 마네 하며 마음대로 평가할 뿐. 무례함이 쿨함과 솔직함으로 포장되는 시대를 살며 매일이 피곤하다. 게다가 저런 말에 발끈하면 자기가 그렇게 느꼈을 뿐 너랑 나랑 가치관이 다른 것 뿐인데 뭘 그러냐며, 사회 생활을 제대로 못하네 뭐네 하면서 2차 공격을 당하기 일쑤다. 그 놈의 사회 생활. 진짜 너무 지겹다.


사회 생활이란 말로 퉁치지 마요.
가치관이 다른게 아니라 니가 틀렸어요.



정말 유독 외모를 가지고 어울리지 않는다며 '지하철에서 책 읽는 척 하지 말라'고 집요하게 시비를 걸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후 근무지가 바뀌고 자차로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이런 괴롭힘에서는 벗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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