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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Jun 19. 2020

나의 친애하는 독립 서점

그렇게 내 삶은 조금씩 더 풍요로워져간다

나는 책을 빌려보기보다는 사서보는 사람이다. 특별히 책에 밑줄을 친다거나 메모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빌린 책은 제 날짜에 반납해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도리어 잘 읽히지가 않아서다. 읽은 책은 중고 서점에 팔거나 SNS를 통해 책 좋아하는 이들과 나눈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책 나눔을 받기도 한다. 예전엔 악착같이 짊어지고 팔러 나가 몇백원이라도 받곤 했는데 요즘은 팔아봐야 몇 푼 되지도 않는거 남에게 선물하는게 낫겠다 싶어 나누는 일이 더 많아졌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즐기는 사람 중 서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통 서점이라고 하면 대형 오프라인 서점, 인터넷 서점, 독립 서점 정도될 텐데 이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서점은 독립 서점이다. 이는 너무 많은 책이 넘쳐나면 되레 뭘 선택할지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어 작은 서점에 꾸려진 큐레이션 내에서 고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기준에서 독립 서점의 매력은 역시 사람이다. 큰 서점에서는 거기 사장과 이야기할 일도 없거니와 딱히 유대감을 느끼기도 쉽지 않은 반면, 독립 서점은 유대감을 파는 장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립 서점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나누는 '살롱'의 역할을 해내기도 하고 저자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제공하기도, 뭔가를 배울 수 있기까지. 때론 아무 목적없이 삼삼오오 모여 놀고 먹을 수 있는 동네 사랑방도 되어준다. 나 또한 그간 출간한 몇 권의 책에 대해 독립 서점에서 여러 차례 북토크를 진행한 경험이 있어 더욱 애정 어린 공간으로 기억에 남아있기도. 이쯤되면 독립 서점이 ‘책을 파는 곳’이라는 건 그저 단편에 불과해보인다. 문화공간이자 놀이터, '그 무언가'를 위한 '장'을 마련해주는 장소라 불러야 더 정확할 것 같다. 또한 이런 서점은 손님과 사장으로 만나든, 저자와 손님으로 만나든 단골이 되고 팬이 되어 끝내는 서로 친구가 되는 일이 가능한 곳이다.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친구가 될 수 있는 곳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쯤되면 책과 서점, 그리고 이 둘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나도 나만의 서점을 오픈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겠지만 서점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그건 '요즘 세상에 임대료가 충당될 만큼 책을 많이 팔기는 힘들겠지'하는 수준을 떠나는 문제이다. 서점을 운영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처리해야하는 잡스러운 일이 정말 많고, 그 노동 강도 또한 중노동에 달한다. 한 공간을 책임지고 손님을 응대하는 주인으로서 갖추어야할 사려깊은 친절함은 98%가 '체력'에서 나오는데 나 같은 사람은 아마 멍석을 깔아줘도 못할 일임이 분명하다. 서점 사장님들과 친구가 되고 그 현실을 좀 더 명확히 볼 수 있게 된 뒤, 나는 나의 비루한 체력과 게으른 성정을 핑계삼아 '서점 운영'에 대한 로망을 완전히 접었다. 대신 여태까지처럼 단골 손님과 저자 역할에만 충실하기로.


요 몇 년 새 제각각의 개성을 뽐내는 독립 서점들이 많이도 생겼다. 덕분에 오늘은 어떤 서점을 가볼까 하며 즐거운 고민을 하는 일도 늘었다. 어떤 곳은 큐레이션이 마음에 쏙 들기도 하고, 인테리어가 취향을 저격하기도 한다. 반면 이런 것들은 그저 그럼에도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이 너무 매력적인 곳도 있다. 이처럼 선택의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은 단순히 그 자체보다도 나는 어떤 취향의 사람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꺼려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하고 나아가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이나마 더 알게 한다.


요즘은 책 읽기와 서점 방문이 그저 SNS에 업로드할 만한 꺼리로 소비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적어도 내 지갑을 열게 하는 존재는 화려한 립스틱이나 예쁜 옷이 아니라 책이고, 나를 이끄는 곳 역시 고급 스파나 유명 맛집이 아니라 작은 서점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것만 해도 그게 어디인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갈 수록, 그렇게 내 삶은 조금씩 더 풍요로워져간다.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재계약 주기(보통 2년이다)를 기점으로 이전을 하거나 문을 닫는 서점도 늘고 있어 그 공간에 섣불리 정을 줘도 될지 마음을 정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지만 '공간이 사라질지언정 추억은 남으니까' 하는 믿음으로 나는 오늘도 지갑이 얄팍해질 마음의 준비와 함께 독립 서점을 찾는다.



많은 이들이 청원한 대로 도서 정가제가 폐지 수순으로 간다면 독립 서점들이 살아남기는 더욱 쉽지 않아보인다. 책이 좋아 책방을 차린 사람들, 사람이 좋아 책방을 찾는 사람들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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