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최신 기술과 효율이 강조되는 시대, 인터넷만 켜도 각종 정보가 공짜로 쏟아지는 시대에 책을 사고 읽고 모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문학은 우리가 숨기고픈 가장 예민한 부분을 치열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타인을, 더 나아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데에 훌륭한 도구가 되어준다. 정성스럽고 아름다운 그림, 혹은 사진으로 가득한 그림책과 사진집은 이 너저분하고 험한 세상에서 잠시나마 마음을 내려놓고 쉬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돕는다. 비문학은 특정한 주제에 대한 누군가의 열정과 끝까지 탐구하는 자세를 배우게 하는 동시에 안일한 나의 마음가짐을 반성하게 한다. 이렇듯 모든 책들은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안식처가 되어준다. 어두운 밤이든 어스름한 새벽녘이든 상관없이 언제든 불을 밝힐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서재는 그래서 항상 고맙고 소중한 존재이다.
- 자연 서가 & 고양이 서가
자연 서가는 동식물과 관련된 책들을 모아 놓은 서가로 나의 최애 서가이다. 동식물과 관련된 책이라면 일차적으로 그 생태에 대해 과학적으로 저술한 책이 먼저 떠오르는데, 요즘은 단순히 그 수준을 넘어 이 분야에 대한 예술적, 문학적, 윤리적, 사회적 관심도가 증가하면서 관련 책들이 점점 늘고 있다 보니 내 서재에서 자연 서가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계속 커지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아직까지는 식물보다 동물을 소재로 하는 책들이 좀 더 다양한 편.
동물을 주요 소재로 한 문학 작품과 반려동물 혹은 반려식물과 함께 하며 느낀 점들을 기록한 에세이, 동물 학대가 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분석한 서적, 그리고 동물 실험과 그에 따르는 인간으로서의 윤리에 대한 책,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한 식물에 얽힌 이야기 책, 멸종 동물 도감, 동물과 함께한 여행서 등이 우리 집의 자연서가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동식물을 소재로 하는 그림책과 동화책, 삽화집 및 화보집. 이런 책들은 책을 ‘읽는다’가 아니라 책을 ‘본다’는 말이 왜 있는지를 실감하게 해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친애하는 ‘고양이’는 아예 따로 자리를 마련해 ‘고양이 서가’로 빼두었다. 각종 고양이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즐거운 요즘이다.
- 음식 서가
음식 서가라고 하면 요리책 정도만 연상될 수도 있다. 나는 요리 그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여행을 추억하는 용도로 요리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나라나 도시의 특색 있는 요리에 대한 책을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난 여행을 추억할 수 있으니까. 이런 용도의 책들은 마음 내킬 때 따라할 수도 있도록 ‘영어’로 된 책을 선호하는 편. 이렇다 보니 요리책이 내 음식 서가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음식과 관계 있는 책에 요리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식당 및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 음식으로 풀어낸 역사서와 철학서, ‘요리’가 아닌 식재료 자체 혹은 식기에 집중한 교양서, 문학 작품에 등장해 호기심을 자극했던 요리에 대한 책, 특정 작가와 관련된 요리 기행서, 미식 여행기 등 음식 서가의 스펙트럼은 꽤나 다양하다. 일상 생활과 친숙한 소재여서 그런지 이 분야는 독립 출판물도 많은 편이라 독립 서점들을 다니며 개성있는 결과물들을 찾아내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
- 특정 작가를 위한 서가
책을 읽다 보면 한 두 명쯤은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기 마련인데 내 경우도 그렇다. 그 작가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면 신간을 발간할 때마다 한 권씩 구매하면서 ‘xxx 작가 컬렉션’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절필을 한 경우에는 예전 책을 조금씩 채워 넣는데, 내가 원하는 책이 이미 절판이 되었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틈 날 때마다 중고 시장을 뒤지는 수고스러움도 필요하다. 다작을 하는 작가의 팬으로 산다는 것은 금전적으로 쪼들리는 일이지만 오래전 절판이 된 책을 찾는 일은 더욱 힘들어서 이게 과연 책이었던 적은 있는건지, 처음부터 낡은 종이 뭉치였던건 아닌지 구분이 안 갈 상태인 중고 책 한 권이 3~40만원에 거래되는 일도 있다. 아직까지는 이런 책은 잘(?) 포기하고 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예 집에 문학 전집을 들일지 말지 고민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 고민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나 존경하는 작가의 책이 한 출판사에서 동일한 시리즈로만 계속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그때그때 찾아 구매해 나 스스로 특정 작가나 특정 주제를 다루는 전집을 만드는 일을 즐기고 있어서다. 내 경우 쉬이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번역 문제인데 외국 작품인 경우에는 번역가마다 다른 느낌의 결과물을 내기 때문에 특정 전집 시리즈 안에서도 A소설은 번역이 괜찮았지만 B소설의 번역은 내 스타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번역에 따라 완전히 다른 책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쪽이라 번역본이 여럿인 책은 최소 1~2페이지라도 번역본끼리 비교해보고 어떤 책을 읽을지 결정하곤 한다. 내가 어떤 스타일의 번역을 좋아하는지 또한 많이 읽고 많이 비교해봐야 알 수 있게 되는 부분 중 하나로, 이 부분에 대해 확신이 생기면 이후 책을 고르는 일은 더욱 즐거워진다.
물론 이럴 경우 책들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니 한 군데 모아서 꽂아 놓으면 들쑥날쑥. 위로 솟아오르고 앞으로 튀어나오고 두께도 제각각에 책등의 모습도 다 다르다보니 서가의 모습이 결코 예쁠 수는 없다. 질서정연하게 쪼로록 전집을 꽂아 두었을 때 뿜어져 나오는 그 특유의 포스와 정갈함은 절대 따라갈 수가 없지만 책은 꽂아 놓았을 때보다 펼쳤을 때 더 의미가 있다고 믿기에 전집을 통으로 들이는 일에 대해서는 깔끔하게 미련을 버린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