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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크리스마스 마켓 이야기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40

by 나예

지금은 시간이 무척이나 지나버렸지만, 이 때만 해도 전세계가 크리스마스 준비로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었다. 겨울의 유럽, 유럽의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그 기간에만 만날 수 있어 더욱 소중하고, 차디찬 겨울을 잠시나마 따뜻하다고 느낄 정도로 사랑과 낭만이 넘친다는 말들을 익히 들어왔기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리스본은 눈이 오는 곳도 아니고 그리 춥지도 않은 동네다. 깜깜한 밤, 노란 전구들이 가판대들을 은은하게 밝히면 그 위로 흰 눈이 소복히 내리는 그런 풍경은 애당초 만들어질 수가 없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리스본에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긴 있지만 그다지 활성화되지는 않은 느낌이다.

IMG_4891.JPG 이런 모습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적어도 리스본에선 레고로만 가능한가보다


2016년, 리스본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독특하게도 한 낮의 투우 경기장에서 맞게 열렸다. 투우를 본 적도, 투우 경기장을 본 적도 없었기에 마냥 새로웠는데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춰 생각해보면 원형 경기장에서 콘서트나 각종 행사를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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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은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기보다는 소소한 동네 장터에 가까웠다. 몇몇 가게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물건들을 취급하는게 전부였는데 그나마도 거의 먹을거리였다. 하지만 독특한 수공예품이나 재미난 물건들이 나름 있었기에 구경하는 사람들은 제법 많았다. 그러니까 이 날의 마켓은 크리스마스 마켓이 아니다 뿐이지, 그래도 꽤 재미난 마켓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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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던 곳은 우연히 발견한 시내의 한 소품 가게였다. 부담되지않는 가격으로도 장만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소품들이 조그만 가게 안에 가득해 한참을 구경했다. 가게를 통채로 들어다가 서울에 옮겨놓고 싶을 정도로 하나하나가 모두 귀엽고 예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간신히 몇개를 집어들고 계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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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내가 어디에 있든 매년 돌아올테지만 '언젠가 한 번의 크리스마스는 리스본에서 보냈었지'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요 조그만 스노우볼들이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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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매거진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이야기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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