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서 나는 꾸륵꾸륵- 소리에 일찍 눈을 떴다. 나와 아이는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살펴보니 실외기 뒤에 비둘기 한 마리가 있다. 마치 몸을 숨기려고 일부러 들어온 것 같은 녀석은 내가 문을 열고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고 기도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저 아이가 며칠 전부터 저곳에 있었다며, 비가 와서 쉬다 가려고 왔다가 저 공간에 갇힌 게 아닐까 걱정을 한다. 가만히 보니 녀석은 그 자리에서 가끔 날개를 퍼덕거릴 뿐 나가지 못해 그곳에 주저앉은 모습은 아니었다. 정말 쉴 곳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실외기, 비둘기, 눈에 보이는 단어들을 검색해 보니 '실외기 둥지'라는 연관검색어가 나온다. 아, 녀석이 지금 알을 품고 있구나. 그냥 날개 짓이 피곤해서 잠시 쉬어 가려고 고철 뒤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게 아니구나. 베란다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녀석에게 겁을 준 것 같아 머리를 긁적였다. 새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전문가의 손을 빌려 조치를 취하기로 하며, 혹시 성미 급한 이른 더위가 와도 에어컨을 켜는 일은 며칠 참기로 한다.
여름의 시작이, 누군가의 둥지를 지켜보는 아침이라서 다행이다. 고철 가득한 도시에 작은 그늘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어둡고 칙칙한 그늘이 아닌, 너무 뜨겁고 밝기만 한 해에게서 벗어나 잠시 쉬어 가는 그곳. 가장 불타오르는 절정의 계절을 살아가는 생명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집을 짓고 나무를 심고 새끼를 낳는 이유일 것이다. 더 나아가, 모르는 누군가가 잠시 쉬어 갈지도 몰라 활짝 열어 놓은 그늘이, 눈부신 세상이 버거워 찡그린 사람들도 하여금 인상 풀고 눈도 풀리고 마음도 풀어헤쳐 버리는 둥지가 되어줄지도. 봄에 심은 마음들이 여름에 시원한 그늘이 된다면 바랄 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