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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란 Jun 14. 2023

나를 위한 선물

필사적인 필사일기 - <사물의 중력> 

마찬가지로, 뭘 받고 싶은데 아닌 척하지도 않는다. 나는 생일을 열심히 챙기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막상 아무도 몰라주면 서운하다. 그러면 선물을 달라고 한다. 어느 생일에는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말했다.

"저 오늘 생일이에요. 선물 주세요. 자리에 있는 거 아무거나요."

그렇게 화장품, 책, 상품권 같은 잡다한 것들을 받았는데, 그중에 연필깎이가 있었다.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생일이었다. 왜냐하면 연필깎이를 받았기 때문이다. 톱니에 연필을 착 끼우고, 손잡이를 돌돌 돌려서 연필을 깎은 다음, 톱밥 통을 탁탁 털어서 비우는 물건 말이다. 어릴 때 그게 그렇게 갖고 싶었다. 막상 어른이 되고는 까맣게 잊고 살았지만 말이다. 친한 디자이너 선배가 책상을 두리번거리다가 그것을 집어서 "옜다, 선물!" 하고 건네주었을 때 마치 한평생 꿈꾸던 무언가를 이룬 것처럼 황홀했다.

(중략)


나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그동안 갖고 싶었으나 굳이 돈 주고 살 생각을 안 해본 쓸모없는 것들의 목록을 써나갔다.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피규어, 전동드릴, 만화책 몇 권 그리고 연필깎이가 있었다.

이번에도 연필깎이는 내게 오래 머물지 못했다. 너무 욕심을 부려서 전동으로 샀더니 연필이 뾰족하게 갈리지 않았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밥맛없는 상사와 주인공이 사무실에서 대화하는 신을 상상해 보라. 보통 대화 신이라 해도 캐릭터의 성격을 설명하고 연기가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가외의 동작을 집어넣기 마련인데, 그럴 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전동 연필깎이다. 시건방지고 유치한 중간관리자가 다리를 꼬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건성으로 연필을 집어서 전동 연필깎이에 쓱 집어넣으면 우웅 하고 연필이 갈리는 거다. 마치 회사에서 비참하게 갈려나가는 주인공의 신세를 대변하듯이, 혹은 뾰족한 연필심으로 너의 목을 찔러버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듯이, 하지만 그게 그렇게 속 시원히 갈리지가 않더라니까. 글쎄.

그것을 버린 뒤로 다시 연필깎이를 사지 않았다. 이제는 깎아야 할 연필도 없다. 언젠가는 집에 있는 연필 수십 자루를 몽땅 찾아 기증해 버렸다. 그래도 내 삶은 전혀 불편해지지 않았다. 나는 단지 연필깎이가 불필요하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그것을 소유했고, 잠시 내 집에 머물다 간 것으로 그 물건은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선물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꼭 필요한 것이라면 선물이라는 핑계를 대고 살 필요도 없겠지. 


<사물의 중력> (이숙명 저),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





동료가 퇴사하는 날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선물을 골랐다. 목욕용품, 커피교환권, 그 외 다양한 후보들을 놓고 고민 끝에, 20대 후반의 여성이라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조말론 향수로 골랐다. 그런데 정말 실패하지 않는 선물이 맞나? 나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  적어도, 20대 후반의 나라면, 향수가 절대 실패하지 않는 선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면, 대부분의 경우, 일단 웃으며 받겠지만 속으로는 이걸 얼마나 들고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게 도의적일지 생각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오해가 있을까 말해두자면, 내가 향수를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니다. 남이 주는 물건에 거부감을 느낀다거나, 누가 만진 물건을 혐오 혹은 결벽증도 없고 타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도 아니다. 오히려 선물을 받으면 감사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르는 '관심바라기'에 가깝다. 그러나 받은 선물이 내 취향이 아니거나, 비교적 고가의 선물을 받기 다소 부담스러운 관계라면, 선물은 다시 쓸모와 이유를 바꾸어 달고 새 주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잠시나마 그것을 소유했던 주인은, 선물을 준 사람에게 이러한 처분의 결정을 말할지 말지, 말한다면 뭐라고 말할지, 말을 안 한다면 향후 어떻게 처신할지 정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조리 있고 기분 나쁘지 않게 상황을 잘 설명하던데, 나는 그저 이것은 상처 주는 역할이니 고로, 미안하든 어쩌든 선물 준 사람에게 뭐라고 말할지 연습을 해보지만 결국 배역에 몰입하지 못한 채 혼자 끙끙 앓기 일쑤다. 절친한 지인들은 모지리 같은 내 표정을 읽고 처분 대행을 자처하곤 했다. 손 안 쓰고 코를 푼 것치곤 개운하지 않았고 결국 나는 '선물은 받지 않습니다'라고 보이콧을 선언, 대신 '같이 밥먹기'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원래부터 나는 물건에 욕심이 없다. 그래서 친구들이 거리를 지나다 예쁜 옷을 보고 '어머 이건 사야 해'하며 행복한 경제적 교감을 누릴 때, 나는 '사람이 물건과 사랑에 빠지는 기분', 그 기분이 궁금했다. 옆에서 사이보그처럼 서 있다가 그나마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엄마가 어제 필요하다고 했던 그 물건이어서 반가운 쓸모의 답을 찾아 구매 절차를 밟는 어떤 가속감과 성취감 정도. 물론 소위 그 '득템'이 순수한 자발적인 불꽃의 쾌거는 아니지만 물건의 쓸모를 찾는 기쁨은 누렸으니 후회는 없었다. 


나는 어떤 필요를 기억해 내며 사물을 소유하는 즐거움 대신, 오히려 물리적으로 가질 수 없는 생뚱맞은 대상을 동경해 왔다. 빅마마의 가창력, 아인슈타인의 천재성, 학교 동기의 저돌적인 추진력,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바른말을 하고 마는 직장 선배의 언변과 용기와 같은, 어떤 능력이나 사회적 위치, 신념 따위의 무형의 것들이 나는 더 궁금하고 부러웠다. 딱히 물건에 정착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엉뚱하고 이상해 보일까 봐 억지로 물건을 산 적도 있다. 몇 년 전 출장지에서 동료들이 면세점에 들러 물건을 고를 때 괜히 같이 하나 집는 것. 면세점에서 나를 위한 선물은 고르지 못했다. 나를 만족시키는 물욕의 제물은 없었다. 


쇼핑을 그만두고 잠시 쉬다 가려고 혼자 카페에 들렀다. 남은 동전을 탈탈 털어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마시는 커피라고 특별한 원두를 쓰는 건 아닐 텐데 향이 참 좋았다. 꼭 필요해서 마신 건 아니지만 이것도 썩 괜찮다.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해 두자. 선물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꼭 필요한 거라면 선물이라는 핑계를 대고 살 필요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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