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대로 육아해도 나쁘지 않아

완벽주의자 워킹맘의 취향 사수 에세이

by 헤이란


스물아홉 살의 겨울, 나는 출산예정일 38주 차 예비맘이었다.



평생 딸로만 살아오다 이제부터 엄마로도 살아야 한다니.

예습이 전혀 안되어 있던지라 엄마 노릇의 난이도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남들만큼은 하겠지. 그리고 열심히 할 거니까 조금 더 잘하겠지.



처음엔 모든 것이 완벽할 줄 알았다.

대놓고 티는 안 냈으나 육아 관련 책을 읽고 육아에 대한 심리적 과학적인 자료를 확인하며 꼼꼼하게 준비했다. 임신 대백과 비슷한 이름의 육아서는 다정하고 희망찬 문체로 단호하게 말하곤 했다.

"아기를 낳는다고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육아는 엄마가 아는 만큼 잘할 수 있습니다."




나보다 먼저 출산을 한 친구, 지인들은 하나같이 알짜 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를 키우려면 일단 맘카페부터 가입해야 돼."


출산 휴가를 마치고 온 직장 동료가 맘카페를 소개해주었다. 이런 곳이 있다니. 폰 바탕화면에 온갖 육아 관련 어플이 신속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이 재우는 어플부터 육아용품 쇼핑몰까지, 숨겨진 육아 세상은 상상 이상이었다.



나는 원래 입던 옷만 찾아서 입는 편이다.

내 옷은커녕 남의 옷은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기껏해야 3킬로 남짓 신생아가 챙겨 입을 옷이 이렇게 많다니. 아기 모자, 양말, 내복 상하의, 손싸개, 속싸개, 겉싸개,......


아기는 우두커니 누워서 울거나 아주 가끔 웃거나 혹은 자거나만 반복하는 게 일상의 전부인데 저 많은 옷이 다 필요하다니. 여전히 그 많은 옷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아기의 입을 거리를 챙기는 덕분에 사시사철 비슷한 옷만 입던 나에게 아기 옷을 고르는 취미가 생겼다.






드디어 아기가 태어난 날,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의 특별함을 느꼈다.

아기를 위해서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아기에게 필요한 것을 구해올 수 있는 엄마력이 생겼다.


그러나 너무나도 잘하고 싶었던 엄마 노릇은 결코 쉽지 않았다.



육아 대백과에서 말하는 육아의 시작은 모유 수유부터였다.


"일단 모유수유를 하려면 돼지 삶은 국물을 드셔야 하고 모유수유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하시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될 줄 알았으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모유 수유를 못하면 혹시 아기에게 안 좋을 걸까? 걱정이 되어 모유수유와 아기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찾아보았다. 별다른 진전이 없었고 난 그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전 그저 되는대로 그냥 분유 먹입니다."



그래도 아기가 먹는 건데 모유 잘 나오는 한약을 먹어보는 게 어떠냐, 병원에 가봐라, 제왕절개 수술의 부작용이다,….

주변에서 말하는 우려의 말들은 쉽게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알아본 뒤 내가 내린 결론은, 하면 좋고 안되면 딱히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영양학적으로 훌륭한 모유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초유를 힘들게 힘들게 먹이고 난 더 이상 모유를 먹이지 못했다.

그렇게 모유 수유는 실패했고 난 주변의 비난을 받았다.

어쨌든 난 아기에게 모유도 제대로 물리지 못한 무능한 엄마였기에.



저녁 6시가 지나면 나는 허겁지겁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간다. 30여 년을 같은 동네에서 자라 지금까지 살고 있는지라 퇴근하는 길목마다 동네 이웃들을 마주쳤다. 애정 듬뿍 담긴 안부와 조언도 함께.


아기가 아직 어린데 애를 맡기고 일을 나간 거냐, 아기는 엄마가 키워야지. 다른 건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아기 키우는 건 왜 대충 해. 그러면 못써.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에게 찍힌 낙인. 육아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엄마. 나는 몹쓸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나는 어디에서도 일처리라면 자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되고나서부터는 칭찬은커녕, 어디에도 못 써먹을 엄마 소리를 들으니 좌절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자책감으로 쌓여갔다.


미숙한 엄마 때문에 행여나 아기가 결핍을 갖고 자라게 될까 봐 '곁에 있는 엄마'를 자처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소위 말해 '애착 육아'라는 명분이었다. 새벽에도 아기가 어디 불편할까 봐 지켜보며, 잠든 모습을 눈에 담고 또 담았다. 물론 이 또한 집에서 보내는 겨우 몇 시간뿐이었다.



효율적이고 학습에 도움이 될 영양가 풍부한 시간을 보내기란 쉽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육아법을 따라서 해보겠노라 결심했었다.


그러나 결국, 구하기 힘들다는 '핫한' 아기용 동화책을 구해서 몇 시간씩 읽어주거나, 영어의 핵심은 노출량이라며 아이와 자주 눈을 맞추며 영어 노래를 불러주는 엄마표 영어는 실천하지 못했다.


그저, 운이 좋아 일찍 업무가 끝나면 아기에게 정신없던 나의 하루를 들려주고, 즐겨 듣는 노래를 불러주며 시간을 보냈다. 아기는 엄마의 주절주절을 알아듣는 듯 웃어주기도 했고 내가 울면 함께 울었다.




아기를 키울 때 일단 귀부터 막아야 해.



대한민국 엄마로 살아가려면 360도 사방에서 주는 기대와 관심을 견디는 역량이 필요하다.



수많은 추천 아이템과 육아 조언이 알짜 정보가 되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는 부모로서 지키고자 하는 철학을 익사시키기도 한다. 조언과 지침서는 감사했지만 필요한 부분만 잘 참고하기로 했다.



나에게 있어 육아원칙은, 육하원칙처럼 단순하고 명쾌했다.

그래야만 했다. 육아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원칙을 정했는데 청결, 자연스러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계획하기였다.

이것은 철저히 우리 가족의 행복이 최우선이라는 우리 부부의 철학에서 시작한 원칙이었다.



또한 애초에 자신이 없으면 포기하고 좌절하는 나의 예민함을 고려하여,

이토록 중요한 '육아'를 시험 보듯 불행하게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높은 언덕을 보면 다 오르지 못할 바엔 애초에 발조차 내딛지 말자고 돌아서던 나였다. 완벽하지 못할 바엔 안 하는 게 낫지. 매번 그렇게 새로운 것을 마주하면 이것저것 재다가 결국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채 제자리였다.




육아는 내 삶의 아주 큰 산이었다.

우뚝 서있어서 항상 눈에 담고 가슴에 품었다.

때로는 보기만 해도 버거웠지만 계절이 바뀌면 형형색색으로 나를 깨웠다.

늘 너무 높고 막연했다. 어떻게 정상에 올라야 할지 막막했다.


육아도 그저 매뉴얼을 따르면 될 줄 알았는데. 쉽지가 않다. 매뉴얼은 접어 두기로 한다.

원칙을 기억해. 할 수 있는 것만 잘하자. 다시 중얼거린다.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정상 등반하는 대신 쉬엄쉬엄 산책을 하기로 했다.

육아는 더 이상 정복의 대상이 아니었다.






육아서, 구전 육아, 다 좋은데 나도 내 방식이라는 게 있어서요.



육아는 일이 아니라 관계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목표와 성과를 논하는 일의 개념과는 성격이 다르다.

육아는 기르는 사람과 자라는 사람의 관계이기에

애초부터 잘한다 못한다의 잣대는 없다.

관계는 잘했다, 못 했다 대신에 잘 맞고, 잘 통한다 라는 표현을 쓴다.

결국 서로를 수용하고 존중하는 것 자체가 육아였을지도.



나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인정하기로 했다.

동시에 아이도 또한 엄마를 한 사람으로 인정하기 위해 엄마의 삶을 보고 듣고 수용하는 중이다.

취향대로 솔직하게,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각자의 철학을 담은 그릇을 놓고, 같은 밥상에 앉아 식구로 살아가는 중이다.




육아는 더 이상 엄마만의 숙제가 아니다.



나는 가끔 골치 아픈 내 고민을 아이에게 가져가 묻곤 한다. 아이는 있는 힘껏 고민한 뒤 따끈한 조언을 내준다. 그 또한 내가 바라는 육아의 한 면이다.

우린 결코 다른 엄마, 아이와 비교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방식이니까.

우리의 육아는 그동안 서로에게 던졌던 깨알 같은 힌트들을 연결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촘촘하니까.

너답게 나답게 우리 가족답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