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푸드가 별거니? (Feat. 김밥)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사수 에세이

by 헤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사수 에세이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엄마다.

아직 집이지? 김밥 해놨어. 얼른 와서 가져가.


이른 아침부터 소풍 도시락 챙기듯 재료를 부지런히 준비하신 것도 대단하지만,

그걸 굳이 따뜻한 상태로 꼭 먹이겠다는 그 의지의 목소리는 매번 단호하다.


엄마는 집에 계시는 날이면 늘 나와 동생에게 완벽한 밥상을 차려 주곤 하셨다. 은퇴 후 다시 주부로 되돌아온 엄마는 전보다 더 바빴다.


음, 김밥은 아무 때나 사다 먹어도 되는데 굳이 일요일 꼭두새벽부터....

난 중얼거리며 우리 집 전기밥솥을 쳐다보았다.

쿠쿠 (그 유명한 이름을 그대로 베낀 거 맞다)라는 녀석인데 오늘은 표정이 뚱하다.

경험 상, 녀석의 이마(표시창) 숫자가 "40H"가 넘어가면 쿠쿠의 속이 노랗게 푹 익어 가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쿠쿠의 밥을 먹기로 한 날인데, 엄마의 김밥이 훅 치고 들어왔다.


갈까 말까. 아고, 귀찮아.

완성된 김밥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김밥 좀 말아 본 사람으로서, 엄마가 얼마나 일찍부터 준비했을지, 조금 전 어떤 맘으로 전화를 했을지 상상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더 꾸물거리지 않고 일단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 집 대문에서 친정까지는 느린 도보로 2분. 빠른 걸음이면 1분이다. 오늘같이 발가락이 무거운 날은 3분을 꽉 채우기도 한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참기름 냄새가 강력하다. 참으로 고소한 굿모닝이다.


https://pixabay.com/images/id-295089/


내가 처음으로 김밥을 먹은 건, 내가 유치원 다닐 적 어느 봄날 아침이었다.


여전히 이른 아침 시간이지만 나는 소풍 가는 날이라고 한껏 들떠 노란색 유치원 활동복을 벌써 챙겨 입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 손에서 김밥이 '갓 말아지는' 것을 지켜보며 도시락에 넣고 남은 걸 얻어먹으려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특히 김밥 꼬투리를, 그중에서도 햄이 길게 나와있는 것을 획득하면 마치 포춘쿠키를 뽑은 것처럼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내일은 누가 또 소풍 안 가나 물어보며, 매일 이렇게 고소하게 김밥 파티하면 좋겠다고 몰래 바라곤 했다.


엄마는 김밥을 눕혀서 피라미드 쌓듯 둥근 기둥탑을 만들어 접시에 내준다.

그렇게 누워있는 김밥은 날 좀 봐요, 먹음직스럽죠? 하고 색을 뽐낸다.

눈대중으로 보니 달걀이 두툼하게 들어간 게 참 맛나 보인다. 한 입에 쏙 집어넣고 또 다음 먹이를 찾는다.

한 줄만 먹고 가져가야지 마음 먹지만 엄마는 한 줄 더, 또 한 줄 더 접시에 담는다.


난 김밥의 칼로리를 알고 싶지 않다. 사실 알지만, '알고 있음'을 거부한다.

효도하려면 그런 건 잊어야 한다. 효녀인 나는 미식가의 눈빛으로 별점을 드린다.

"엄마 오늘 만든 건 유난히 더 맛있네. 손으로 집어 먹으니 꼭 파티 와서 핑거푸드 먹는 것 같고."

엄마는 호호 웃으며 말했다.



핑거푸드가 별거니? 온 식구 모여서 손으로 맛있게 집어 먹으면 그게 파티지, 뭐.



엄마는 오늘 김밥에 들어간 재료 중 뭐가 특히 맛있냐고 묻는다. 다 맛있다고 하면 다시 또 묻는다.

아마도 다음에 또 김밥을 하게 되면 그대로 하려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끝까지 다 맛있다고 대충 둘러댔다. 그러나 엄마는 내가 달걀 많이 들어간 게 좋다고 중얼댄 걸 벌써 듣고 달걀지단을 두 개씩 넣는다.


손녀딸이 먹을 김밥은 햄이 두 줄 들어있다.

신신당부를 한다. 그건 네가 먹지 말고 네 딸을 주라고.

사위가 먹을 김밥은 그냥 모든 재료가 곱빼기로 들어간다.

사위가 다이어트를 하든 말든 그건 관심 없다. 골고루 다 먹이고 싶은 거다.


엄마는 아무도 부탁하지 않은 미션을 혼자 수행 중이다. 세상의 부모들이 늘 정성을 다해 자식을 챙기는 것, 그것은 마치 작품을 선보이듯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고, 완전한 사랑이다.


그리고,


비록 그것이 자식에게 완벽하게 다 전달되지 않더라도,
주는 마음은 남김없이 말끔해야 한다.






나는 엄마의 사랑을 매일 온전히 받으려고 노력했다.


이른 아침에 차려진 식사를 불평 없이 일어나 챙겨 먹었다.

자잘한 반찬들 빼놓지 않고 우걱우걱 가득 입에 넣어 먹었다.

아무리 추워도 엄마가 직접 만드신 뜨개 목도리를 하고 다녔고 엄마의 도시락은 항상 싹싹 긁어먹어 남기지 않고 가져왔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마치 큰 과업을 끝낸 얼굴로 흐뭇하게 말씀하시곤 했다.

잘 먹어주어 고맙다.



두 줄만 가져가겠다고 했지만 결국 엄마는 네 줄의 뚱뚱이 김밥을 싸준다.

김밥이 식기 전에 냉큼 가서 사위와 손녀딸을 먹이라 한다.

나는 엄마의 사랑을 손에 들고, 배를 두드리며, 내쫓겼다.



자식은 아낌없이 주는 마음을 그저 받기만 해도 그저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야 깨달았다.

부모의 사랑은, 아이가 그 사랑을 받는 순간 이미 완전하다는 걸.

완전한 사랑으로 부모는 깨지지 않는 단단한 존재가 된다는 걸.

그리고, 나와 엄마는,

핑거푸드 같은, 서로가 주고받은 마음 조각들로, 그렇게 비로소 각자의 존재를 완성한다는 걸.


https://pixabay.com/images/id-7441663/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만두를 이쁘게 빚어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