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를 이쁘게 빚어야 하는 이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사수 에세이

by 헤이란


내가 열 살쯤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새벽 어느 시간이었을 어둑어둑한 부엌에서 할머니는 일찌감치 채소를 다듬고 계셨다.


나는 궁금해서 부엌 입구에 앉아 빼꼼히 쳐다보았다.

"일찍도 눈 떴네, 이리 와서 아 해봐."


아마도 국에 넣으려고 썰어 놓은 무 한 조각을 입에 넣어주신다.

교실 책상만 한, 대왕 나무 도마를 꺼내더니 그 위에 밀가루 반죽을 무심히 던져 놓는다.

"할미 다리라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주물러 봐."



할머니 팔뚝살처럼 만지듯 조물조물

반죽을 치대다 보니

손가락이 좀 아픈 것 같고 얼굴도 괜히 더 간지럽다.


밀가루 묻은 손은 이미 얼룩덜룩하다.

아쉬운 대로 손등을 얼굴에 비벼본다.

말랑말랑하던 반죽 덩어리에 제법 찰기가 생겼다.

"할머니 내가 만든 반죽 좀 보세요. 잘했죠?"


할머니의 무른 살이 튼튼한 근육이 된 것 같아 뿌듯해하며 외쳤다. 할머니는 말없이 끄덕이며 두부를 으깼다.


할머니는 만두소를 냄비에 가득 담아 거실로 들고 간다.

나도 반죽을 끌어안고 졸졸 뒤따른다.

할머니는 만두피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그 위에 만두소를 동그랗게 담는다. 손가락으로 하나 둘, 하나 둘, 수를 놓듯 껍데기를 박음질하고 나면 오동통한 만두 하나가 완성된다.



여럿이 모여 앉아 만두를 빚는다. 할머니가 하나 먼저 빚어 놓으면 조무래기들이 너도 나도 만두피를 집어 든다. 같은 스승에게 배워도 모양이 천차만별이다.

"할머니 꺼는 어찌 그리 만두가 커요?"

"할미가 욕심이 많은가 꽉꽉 눌러 담았지."

"내 만두는 늘씬하지요." "나는 동그란 왕만두지요."



이름을 써 놓지 않아도 누가 만든 지 다 안다.

요것들이 생김새는 달라도 속은 다 같아서 옹기종기 모여 보듬고 산다지.

조무래기들은 자기가 만든 걸 제일 앞에 놓겠다고 만두들을 이리 옮기고 저리 던진다. 그러다 몇몇은 겉에 구멍이 나서 터지고 만다. 덩달아 울음보가 터지면 할머니는 말없이 만두를 집어 밀가루를 묻힌다. 그렇게 몇 번을 쓰다듬으면 감쪽같이 멀쩡해지고 만두 한 판은 무사히 낙오 없이 한 상차림이 된다.





퇴근길에 못 보던 간판이 보인다. 새로 차린 만두 가게가 문을 열었다. 어머 이건 꼭 먹어야 해. 왕만두를 한 입 먹어본다. 고기가 많이 들어가서 고소하다.


할머니가 큰맘 먹고 김치는 덜고 고기를 더 넣어주시면 이런 맛일까. 쉰 김치가 빠진 만두라 맛이 젊다. 문득 할머니가 방금 꺼내 썰어 주신 쉰 김치 냄새가 난다. 사장님이 아쉬운 대로 한입 하라며 김치를 한 접시 가져다주신다. 적당히 푹 익은 배추 줄거리가 할머니의 손을 닮았다.



만두를 빚는 건,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은
쪽지 접기를 닮았다.


김하나 작가가 이런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말을 흩어지지 않게 또렷하게 전하는 사람.


말을 잘한다는 건

듣는 사람이 잘 들을 수 있게 잘 담아서 보여주는 거라고.


성격이 급한 사람은

빨리 단어를 뱉고 싶은 마음에,

내 의도를 바로 꺼내 보이고 싶은 마음에,

덜컥 단어들을 단숨에 뿌려 대고 만다.

그 순간 단어는 흩어지고 마음은 흩날린다.

생각났다. 내가 너무 억울해서 울먹거리며 생각나는 걸 마구 쏟아낼 때 하는 말이 그랬다.


할머니는 만두를 빚는 내내 말이 없었다.

조무래기들 수다 떠는 걸 듣는 건지 뭔지, 늘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만두 하나 내려놓으며 한마디 툭 꺼내 놓았다.

"만두 이쁘게 접는 걸 보니 우리 손주들은 잘 살겠다. 잘했다. 이쁘다."

숨을 고르고,

종이 접듯,

마음으로 말을 빚어 수줍게 한마디 건네는 우리 할머니.

가볍지만 선명해서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때 만두를 더 이쁘게 빚을 걸 그랬다. 나도 만두 하나에 한마디 더 담아서 할머니 줄 걸 그랬다.


"할머니 손주가 이쁘고 잘 사니 할머니도 잘했네. 이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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