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환자가 되고 언젠가는 현자가 된다

완벽주의 워킹맘의 취향 사수 에세이

by 헤이란


2020년은 여러 가지로 힘든 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버거운 순간은 아빠의 암 진단을 마주했던 8월. 극한 여름이었다.


평생 술을 즐겨 드시던 아빠는 우연히 건강검진, 어쩌다 대장암, 수술, 그리고 항암까지, 어느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순식간에 암환자가 되었다.


아빠는 전형적인 애주가였다. 사람들과의 한 잔은 그의 낙이었다. 그 외에는 딱히 취미가 없었다.

친한 술 동무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빠는 수술하고 회복하면 그때 한 잔 하자며 안부를 답했다.

그러나 수술과 치료를 계속되었다.

빨리 낫고 한잔 하자는 안부는 뜸해졌고

아빠는 더 이상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여름은 '빨리 감기'를 반복하더니 봄이 되었다.

어느 날 아빠는 등산화를 꺼내셨다.

암 환자라는 이유로 집에만 우두커니 있는 게 너무 답답하다고. 하긴, 예전에 일이 바쁘지 않을 때면 지인들과 등산이 끝나고 술 한잔 먹고 드시곤 했었는데.



아빠는 둘레길을 천천히 걷고 돌아왔다. 하산하며 술을 드시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건 처음이었다.

항암 주사를 맞는 날을 빼고는 거의 매일을 등산을 가셨다. 때로는 혼자, 어떤 날은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힘들면 더 걷고, 굴복하지 않으려 산에 올랐다.

그렇게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루틴을 찾았고 그것을 지켜갔다. 아빠는 비록 아만자이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하고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아빠의 sns 속 등산 일기 - 2021년 6월 어느 날.




아빠의 투병은 굴곡 없는 나의 삶에 엄청난 충격이고 재앙이었다.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지만 여름이 지나 겨울이 되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매일 밤 암에 대해 찾아보고 공부했다. 의사가 되어 아버지를 고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시험을 봐서 의대를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대단한 효심때문만은 아니었다. 중요한 결정을 현명하게 할 수 있길 바랐고 아무 지식 없이 속수무책으로 원치 않은 상황에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다. 의학 지식이 있다면 죽음의 공포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롭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제껏 나는 젊고 의욕이 넘쳤다.

하고 싶은 것, 채우고 싶은 것을 목록에 더 넣을 고민만 해왔다. 당연한 무언가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 영원히 나의 목록에 붙잡아둘 수 없다는 상상은 갑작스럽고 절망스러웠다. 난 불면과 불안에 시달렸다. 몸은 무겁게 쳐져갔다. 공포는 나를 잠식했다.



그날도 아빠는 등산 가방을 챙기고 계셨다.

준비물은 간단했다. 엄마가 직접 만든 김밥과 물.

암세포는 나약한 마음과 낮은 체온을 좋아한다더라.

그 녀석들이 호락호락하게 놔둘 순 없지.

등산스틱을 꽉 쥔 손이 아이언맨의 스틸 장갑보다 더 단단해 보인다.

어쨌든 평소대로 씩씩하게 살아야지. 아빠는 이렇게 생각해. 내가 하던 대로 하는 게 답이야.



아빠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혼자 걷다 우연히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순간 등산하러 나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눈물이 핑 돈다. 더 이상 핑계를 댈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어깨를 펴고 다시 힘차게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물론 인생은 고난으로 가득해. 하지만 요령은 순간에 주어진 몇몇 완벽한 경험들을 즐기는 거야.
Life is full of pain and misery, but the trick is to enjoy the few good things in the moment.

- 심슨네 가족, The Simpsons -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워킹맘이 아니었더라면 과연 나는...?

결혼은 큰 변화이다.

주변 사람들이 바뀌고 행동의 영향이 다르다.

육아를 하면서 무언가 많이 바뀌었다. 뭐가 많이 바뀌다 보니 계속 자문한다. 나 제대로 살고 있나.



육아 1년 차, 나는 매일 후회했다.

갑자기 멈춘 급행열차였다.

갈 길이 아득한데 선로에 주저앉았다.

결혼 이후, 완벽할 것 같았던 나의 삼십 대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오점 투성이었다. 뒤틀린 계획은 내게 쉼표를 주었다. 원한 적 없는 강제 쉼표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쩔 수 없는 이 최악의 상황은 나를 완벽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짜증이 나는데 속은 시원하다니 이 기분은 뭐지!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실이 있다면 나의 완벽주의가 그렇지 않을까. 엉켰다 풀었다를 반복하다 보니 헐겁다. 그래도 결코 끊어지지 않는 집요함은 변하지 않는 내 취향이다.

완벽주의는 결국 완성 주의다.



엄마는 어릴 적 꿈이 뭐야?

뜬금없는 아이의 질문은 허를 찌른다.

엄마는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

지금도 작가가 되는 게 꿈이야?

.....

응 맞아.


몇 초를 고민하고 대답했다.

잠시지만 깊은 고민을 했다.

여전히 내 꿈이 작가인가?를 고민한 게 아니었다.

내가 '꿈이 작가'라고 대답할 자격이 있나를 고민했다.

치열하게 지내왔지만 '꿈'은 내 입으로 언급하기엔 부끄러운 금지어였다.


엄마도 작가 하면 되지.

응 그럴게, 꼭 할게.

난 아이의 이런 쿨함이 좋다. 자초지종을 묻지 않고 이제부터 하면 된다는 그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엄마가 되길 잘했다. 평소에는 차갑고 무뚝뚝했던 '나의 완벽'은 오늘따라 나에게 사뭇 관대했다.

밤에 하려고 했던 영어공부는 제쳐두고, 무작정 노트를 펼쳤다.

제목은 이렇게 썼다. '나의 완벽주의에게'



나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마.
-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 -



꿈으로 가는 사다리는 결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끝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 일 것이다.

다만 목적지가 나의 꿈이라면 몇 발자국이라도 걸어보며 꿈같은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얼마나 높이 멀리 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나답게 나의 길을 가면 내 것이 완성될 것이다.

가끔 미련하지만 끙끙대는 고집스러움이 바로 나인 것을.

나의 완벽주의에게 안부를 건넨다.

'고맙다, 나의 완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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