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빵순이라 신상 빵이 나오면 이유 불문하고 신난다. 베이커리가 내뿜는 유혹의 스멜, 그리고 그걸 저항하지 못하는 무방비의 집게질은빵순이들에겐 당연한 일이다.
오늘은 담백 고소한 녀석이눈에 들어온다.
소금빵? 요 녀석 꽤 귀엽네.
소라 모양의 몸통인데 소라빵은 아니다. 좀 더 들여다보니, 보석을 뽐내듯 왕소금이 몇 알씩 박혀있다.
마치 '거봐 나 소금빵 맞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소금 같은 사람이 되라는 옛 말씀이 있다.
빛과 소금처럼 세상의 쓸모 있는 존재가 되라는 성서의 구절이다.
솔직히 난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염전 기술의 발달과 수많은 영양제의 보급으로 소금만큼 중요하고 귀한 게 많아진 탓일 거다. 실제로도 소금은 더 이상 고귀하지 않다.
(오히려 나는 언제부턴가 소금 알갱이를 보는 순간 고혈압부터 떠올린다.)
어릴 적 나에게 '소금'은 검소함의 상징이었다.
소위 말해 '짠내 난다'는 표현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특히 나의 엄마는 왕소금 짠순이였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생활비, 학원비 영수증을 차곡차곡 모아놓고 가계부를 적었다.
나중에 너희들한테 이거 청구할 테니 성공해서 모두 갚아.
그 말을 듣고 나와 내 동생은 둘이 머리를 맞대고 빚 청산을 어찌할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방법은 모르지만 속으로 결심했다. 난 기필코 다 갚고 더 대단한 사람이 되겠다고. 왕소금보다 더 대단한 세상의 빛이 되겠다고.
다시 떠올려보면 그때는 1998년, 대한민국 전체가 경제위기를 맞이한 직후였다. 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의 얼굴은 늘 지쳐있었고 목소리는 컸고 그림자는 늘 바빴다. 펄펄 끓는 시대의 아궁이 속에서 별 탈 없이 살기는 쉽지 않았다. 엄마는 어떤 온도에서도 꿋꿋하게 살림을 지켜갔다. 그렇게 가족들의 먹을거리, 살아갈 거리를 짜내고 짜내는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짠 소금인형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시간의 계곡을 지나며 엄마의 짠내음은 씻겨 내려갔다. 엄마의 표정도 점점 밝아졌다. 지나간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는 여유가 생겼다.
그때는 다들 참 힘들었는데 그것도 다 지나갔구나.
엄마는 이제는 마음 내키는 데로 살겠노라 말하며 '다 같이 짠'을 외친다.
'짠내'는 '짠'이 되고, 엄마의 소금은 성숙한 윤슬이 되었다.엄마가 단단한 어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밑간이라고 하는 소금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짜고 자연스러워진다. 더 이상 소금 기운이 아닌 '잘 베인 소금 간'이 된다. 소금 간은 억척스러움과는 조금 다르다. 가난한 시절 속 감칠맛이랄까. 적당히 필요한 맛이라서 질리지 않는다.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완성된 소금빵이다.
짭조름한 소금빵은 빵조각을 떼어 낼 때 과하지 않은 쫄깃함이 있다. 공기 반 소금스러움 반, 녀석만이 가지는 빵빵한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소금빵은 작지만 기운을 가득 안고 우뚝 서있다. 왠지 이 자태가 익숙하다. 짠내로 무장한 내 모습 같아서일까.
나는 세상에 무서운 것 투성인 심각한 겁보였다. 계단을 내려갈 때 넘어지는 게 무서워 손잡이를 잡고 걸어 다녔다. 다른 사람에게 '이것 좀 해주세요' 부탁하는 게 어려웠다. 면허를 겨우 따고도 운전이 두려웠고, 높은 곳에 오르면 꼼짝도못 했다.
그러던 내게, 아이를 낳고 나서 희한한 용기와 깡다구가 생겼다. 필요한걸 어떻게 든 획득하는 억척스러움, 씻지 않은 채 아이를 안고 뛰어나가는 뻔뻔함은
엄마가 되며 뒤늦게 획득한 능력이다.
예쁘지는 않지만 자랑스러워
며칠 전 아이가 갑자기 물었다.
"엄마는 만약 나랑 엄마 중 한 사람에게 10년을 더 살 기회를 준다면 -" "엄마는 당연히 너 주지."
아이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고민이 필요하지 않은 너무 당연한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알겠다. 엄마의 왕소금도 사실은 엄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지키기 위한 보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