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받을 용기 (feat. 팝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사수 에세이

by 헤이란

내가 몸담고 있는 품질관리 부서는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부서이다.

품질 내부 감사 기간은 일 년 중 우리 부서가 가장 바쁜 기간이다.


올해는 11월이 그 기간이어서, 중요한 손님들이 오셨다.

품질 관리 감사원들이다.

감사원들은 현장에 방문하여 관리 체계를 점검한다.

그들은 기간 동안 철저히 지적하고, 평가한다.

그리고 우리 부서는 최종적으로 품질관리 성적표를 받는다.

성적을 잘 받아야만 하기에, 그들을 환영하(는 척을 하)며 극진히 대접했다.


감사 업무를 영어로 Audit이라고 부른다.

단어 철자가 그렇듯, 공들여 준비한 노래와 춤 등을 평가자들에게 보여주는 오디션(Audition)과 유사하다.


실제로 감사 기간 동안 쩔쩔매는 나의 모습은,

마치 수년을 갈고닦은 재능을 모두 쏟아내겠다는 참가자의 처절한 몸짓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매일 8시간씩 질문을 받고 답변을 했다.

수 차례 지적을 받고 나는 주눅이 들었다.

이 기분은 아무리 경험이 쌓여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내부 감사는 끝났다.

동시에 나는 완전히 고꾸라졌다.

며칠 동안 아쉬움과 속상함으로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되어서야 드디어

나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거북했던 감사 성적표를 제대로 쳐다볼 수 있었다.

억울했던 마음들이 한없이 관대해졌다.

그렇다. 때로는 시간을 두고 조금 멀찍이 서서 자신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관객이 되어 보는 용기



속상한 일이 있는 날은 도통 잠을 잘 수 없다.

이렇게 밤을 지새울 거라는 걸 알기에 결국 일어나 앉는다.


팝콘을 준비한다. 아무거나 내키는 맛으로 고른다.

그리고 영화 보듯 드라마 보듯 나의 하루를 바라본다.

엄밀히 말하면, 억울하고 속상한 그날들의 장면을 되돌리고 또 되돌려본다.


스스로 곱씹으며 먹는 팝콘은 까슬하면서도 고소하다.

아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다시 보기가 필요한 이유를 알겠다.

중요한 건, 반드시 팝콘을 품에 안고 봐야 한다.

버터향을 온 가슴을 느끼며 팝콘을 입에 넣고 바스락 거려야만, 아 맞다, 나는 지금 관람 모드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고소함은 결코 달지 않다.

자기 객관화는 냉정하다.

장면을 보는 내내 진땀이 흐른다.

당사자가 아닌, 관객의 눈으로 나를 해부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체적인 사정을 파악하고 나면,

나는 다시 나로 돌아온다.

관객의 나도, 장면 속의 나도, 모두 존재하는 나이다. 모두가 본질은 같다.


그래서 울컥한다.

거친 파도 속에서 겨우 버티고 모래에 누운 주인공이 바로 나여서.


엔딩은 없다.

팝콘을 내려놓으며, 엔딩은 '아직'이라고 말한다.

팝콘 통이 바닥을 보이고

입에 짠 기운이 가득할 때

비로소 나는 더 단단한 내가 된다.


나에게 팝콘은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런 나를 용서하는 특식이다.


가장 차가운 눈을 가진 관객은 가장 뜨거운 감상을 가슴에 품는다.


스스로의 관객이 된다는 건

지적받을 용기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온전히 용서할 용기이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수용하라. 상대방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용서하라. - 아들러 -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용기



넷플릭스 드라마 중 Black Mirror의 시즌 3 에피소드인 "Nosedive"는 소셜미디어의 평점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세상의 잔인한 단면을 그렸다.


드라마 속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받은 평점이 높을수록 사회적 지위가 오르고 그만큼 혜택을 누린다.

반면, 평점이 낮으면 기본적인 사회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


내용이 다소 극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평가에 자유롭지 못한 나로서는 잠시 생각에 빠진다.


완벽한 인생에 빠질 수 없는 '칭찬'과 '관심'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버튼 하나로 손쉽게 보내는 '별'은

무언가를 계속 지켜나가는 응원이지만

때로는 하찮은 존재인 양 배제되는 '벌'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별 하나에 울고 웃는 삶이

대낮에 별바라기이고

하늘의 별따기다.



https://namu.wiki/jump/8qYlmUGMQItq9gtHCxbyyU6bQSm5ZOz95yuoUVaL6s9ALcYYqLDZ%2BZyhuxFppJpZ0QagY1l%2BD




그래도 한 걸음 내딛을 용기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시작할 때가 떠오른다.


빨리 걷고 싶어서 주변에 손을 짚으며 조심스럽게 한 걸음 두 걸음.

그러다가 가족들이 한마음으로 오구오구 잘도 걷는다 하니, 아이는 용기를 낸다.

두 손을 놓고 크게 한걸음 옮긴다. 박수를 한껏 받으며 두 걸음만에 종료된 첫걸음마는 축제였다.


그렇게 신고식을 치르고

아이는 무릎이 성할 날이 없이 매일, 매 걸음마다, 넘어졌다. 13개월 차 3등신의 서툰 영혼에게는,

걷는 것보다 일어서는 게 더 버거웠다.

아이는 걷는 만큼 넘어졌고 다시 일어섰다.


넘어진 뒤 바로 일어서기란 쉽지 않다.

더 많은 힘을 끌어올리고 넘어짐을 다시 감당할 마음이 필요하다.

중력보다 강한 힘으로 나의 무게를 들어 올리려면,

결국 나와의 싸움이고, 요령이다.


13개월부터 시작한 나의 걸음마는

10대의 어느 구간에선 뜀박질이었고 20대의 어느 자리에서는 발맞춰 걷기였다.

30대, 그러나 실전이라는 무대는 점점 버거워지고, 걷기보다 넘어져 주지 앉은 순간이 여전히 더 길다.


넘어진 나에게 필요한 건

'완벽해서 지적 사항 없음'이라는 건조한 평가도 아니고

힐끗 보고 눌러주는 '별'도 아니다.

그저 잠시 추스르고 스스로 일으켜 세워 다시 걸어갈 용기와,

그런 스스로를 기다릴 수 있는 믿음.


오늘도 팝콘 각이다.

완벽하지 않기에 이번에도 엔딩은 없다.

주인공과 관객만 있을 뿐이다.



꽃들은 다른 꽃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꽃을 닮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 빛깔과 모양과 향기를 지니고 살뿐이다. - 법정스님, [스스로 행복하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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