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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란 Apr 17. 2023

4/12  녀석들이 타인을 사랑하는 방식

필사적인 필사일기 - <H마트에서 울다>

나는 엄마가 좋아하시던 음식을 절대로 못 잊는다. 엄마는 늘 먹던 대로 음식을 먹는 분이었다. 쇼핑하러 가는 날이면 꼭 마지막에 테라스 카페에 들러 호밀빵 치즈버거와  두껍게 썬 감자튀김을 시켜 나와 반씩 나눠 먹었다.

(……)

카페 서울에 가면 엄마는 늘 짬뽕이라고 부르는 매운 해물국수를 먹었고, 그때마다 채소를 듬뿍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카페 서울은 으레 서울 카페라고 불렀는데, 그게 엄마 모국어 어법에 더 잘 맞아서였다.

(……)

나는 이 모든 것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것이 엄마가 타인을 사랑하는 방식이었으니까. 이를테면 듣기 좋은 말이나 끊임없이 지지하는 말을 해주는 식이 아니라, 상대가 좋아하는 걸 평소에 잘 봐두었다가 그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편안하게 배려받는 느낌을 받게 해주는 식이었다. 엄마는 누군가 찌개를 먹을 때 국물이 많은 걸 좋아하는지, 매운 걸 잘 못 먹는지, 토마토를 싫어하는지, 해산물을 안 먹는지, 먹는 양이 많은 편인지 어떤지를 시시콜콜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제일 먼저 무슨 반찬 접시를 싹 비우는 지를 기억해 뒀다가 다음번엔 그 반찬을 접시가 넘치도록 담뿍 담아서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갖가지 다른 음식과 함께 내어놓는 사람이었다.


<H마트에서 울다> 미셀 자우너 저/ 정혜윤 역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을 계속 만나는 이유를 묻는다면, 아마도 '나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일일이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본격적인 수다를 떨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 중 한 녀석은 소위 잘 나가는 대기업 팀장이지만 여전히 밥을 먹을 때 그렇게 음식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그 녀석 옆에 앉는 다른 한 녀석은 그럴 때마다 턱에 구멍이 났냐고 핀잔을 날리며 화장지로 연신 닦는다. 또 한 녀석은 매운 걸 입에 넣을 때마다 콧물 눈물 다 쏟으면서도 꼭 매운 걸 찾는데 그래서 우린 잊지 않고 우유를 주문한다. 그것을 함께 마셔야 그 녀석이 다음 날 출근 지옥철에서 배를 움켜쥐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을 테니까.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주문하고 무엇은 빼야 하며 무엇을 꺼내야 하는지 알 수 있기에 우리는 매번 서로 놀리고 또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알고 있다. 다음 주말에 만나기로 한 짓궂은 녀석들은, 내가 못 먹는 카레 전문점을 예약하고 보란 듯이 예약 화면을 보낼 거란 걸. 그리고 막상 만나면 녀석들은 '카레는 뻥이야'라면서 늘 같이 가던 그 치맥집으로 가서 당연한 듯 내가 좋아하는 닭날개와 내가 먹던 라거를 주문할 거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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