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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란 Apr 18. 2023

4/17  내 딸이지만 참 별나

필사적인 필사일기 - <H마트에서 울다>

"이제 우리가 서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게 돼서 너무 좋지 않아?"

대학생 때 언젠가 집에 와서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10대이던 시절에 서로에게 입힌 어마어마한 상처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뒤였다.

"좋아." 엄마가 말했다. "내가 뭘 깨달았는지 알아? 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거야."

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내가 무슨 다른 도시에서 온 이방인이거나, 저녁 식사에 초대한 친구가 데리고 나타난 특이한 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렸다. 나를 낳아 키우고 나와 18년을 한 집에서 살았던, 내 반쪽인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기엔 너무 이상하게 들렸다.


<H마트에서 울다> 미셀 자우너 저/ 정혜윤 역




미셀과 그녀의 엄마가 나눈 대화를 읽으며 "역시 모전여전이네",하며 혼자 웃었다. 그리고 내가 엄마와 나눈 대화를 쏙 빼 닮아서 또 웃었다. 훅 하고 들어오는 말들이 있는 데 엄마의 훅은 이런 것이었다. "내 딸이지만 너 가끔 되게 별나." "내가? 뭐가?" 이렇게 대답하면 승산이 거의 없는 대화일 확률이 높다. 엄마에게 공격권이 주어지고 나는 별난 사람으로 변신한다. 중간에 말을 끊고 내가 언제 그랬냐, 엄마가 더 별나다, 등의 잽을 날려보지만 역시 선공이 유리하다. 나를 잘 아는 적에게 쉽게 기회를 준 내 잘못이다.

왜 그토록 엄마의 '말빨'은 이기기 어려운 걸까.


나는 모계 유전을 배운 날 느낀 그 특이한 감정을 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세포는 세포 핵 DNA 에서 대부분의 형질을 물려받는다. 99.9%는 그렇다. 마지막 0.1%의 유전 물질은 세포의 부품 중 하나인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전달받는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를 이루는 기관 중 하나이다. 세포가 일을 한다면 그것은 미토콘드리아의 작품이다. 세포의 에너지를 만들고 살아갈 수 있도록 공급하는 엔진이다. 신기하게도, 자손에게는 오직 엄마가 주는 미토콘드리아만 전달된다. 이것이 내가 배운 일반생물학 속 미토콘드리아의 역할과 유전학적 특징이다.

교수님은 마지막 자신의 견해를 짧게 남기고 수업을 마쳤다. "어머니한테 잘해라, 녀석들아."


왜 유독 단 0.1%의 지분은 모계로만 유전될까. 뭐 아주 다급한 경우에는, 엄마가 아빠보다 너한테 0.1% 더 기여했어, 엄마한테 잘해야 하는 과학적 근거야, 등의 유치한 서열 다툼의 재료로 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때로는 0.1%의 사소한 상관관계가 미묘한 정치적 위상을 유발하여, 괜히 엄마편을 더 들고 '아빠엄마' 말고 '엄마아빠' 를 더 찰지게 발음하는 건, 살짝 치사하다. 어설픈 과학적 결과물이 우스꽝스러울 따름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인간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한다. 아이를 호되게 혼내며 탈탈 털어내는 무시무시함을 전달한다. 야단 맞고 울다 잠든(것 같은) 아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가 미안해'를 겨우 꺼내는 소심함 또한 놓치지 않고 전달한다. 정확하게 실수를 놓치지 않고 반복하는 것 또한 우리의 '과학'인 것을 어쩌겠나.


과학적 정설을 들먹이며 엄마의 괴상한 공격력을 폭로하니 살짝 개운하면서도 '누워서 침뱉기'라는 말이 머릿 속을 둥둥 떠다닌다. 이게 다 미토콘드리아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0.1%의 지분을 털어내지 못했다. 고스란히 나의 꼬마에게 물려주는 중이다. 이번에도 다음에도 또 미토콘드리아 때문이다.  0.1%의 유치하지만 억세고 질긴 생색내기를 계속 해 나갈 것이다. 이게 다 결국 미토콘드리아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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