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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Aug 17. 2019

강진 - 사의재 11

답사



[조립의 실체, 마루]


사의재 마루에 앉아 있다 보니 

마룻바닥의 느낌이 편안하다. 

쓰다듬다 보니 색이 오래된 맛은 아니다.



일산 서쪽 경계 수막산(심학산) 밑에서 

농사지으며 쉬면서 이론을 정리하던 시절,

주변에 한옥들이 팔려 허물어 버려지고 

다시 지어지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그중에는 솜씨 있는 목수의 작품 같은

목재 전체가 자색이 도는 제대로 된 집도 있었다.

아까웠다.

살던 농가 창고가 넓었기에 

백 년 된 한옥의 마루를 가져와 

다시 조립한 후 그 위에서 살았었다.


버려진 구들장도 손쉽게 구할 수 있어서 

아궁이와 쪽 구들을 만들어 

부뚜막으로 쓴 시절도 있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입체 생활품이자 

자연 소재 조각품 같은 느낌이었다.

낮에는 농사짓고 마당에서 불 피워 

깨진 항아리로 이것저것 데워 먹고

저녁이면 부뚜막에 불 지펴 된장찌개 끓여 먹고

조립한 옛 마루에서 잠을 잤다.

새벽녘에는 짙푸른 장엄한 하늘을 보면서 

밖으로 나와 푸른 잎과 

파란 꽃(큰 개불알꽃) 위에 소변을 봤다. 


논에 물을 대는 봄에는 

온 동네가 호반의 농가로 바뀐다.

논둑길에 핀 나만의 나팔꽃이 

어떻게 그리 연한 색을 내는지 감탄했다.

잊지 못하는 인생에 있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폐기 처분하는 한옥에서 손쉽게 건질 것은 

대청마루와 쪽마루이다. 

나머지도 아깝긴 하지만 

그걸 쌓아 두고 보관한다는 것은 거시기하다.

멀쩡한 마루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인기가 있어서 

사려면 골동품상에서 가격도 꽤 나간다.

그 마저도 이도 저도 아니면 

눈물을 머금고 폐기장으로 보내기도 한다.


마루를 뜯고 조립해 보면 

조선의 목재 술의 근간을 쉽게 알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각재를 썼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현대인들의 한계이다.

통나무 한쪽만 켜서 판판하게 만들어 보로 쓰고

홈을 파서 그 사이사이에 널빤지를 끼워 넣었다.

일종의 바닥에 누워있는 장이라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 면만 가공한 통나무 대라는 것이다.

우리 목재술의 뿌리가 이렇다면 

배무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조선이 통나무에 판자를 맞추어 

판옥선을 만들었다면,

일본은 판잣집 문화에서 보이는 

나무 기둥을 반듯하게 썰어내고

얇은 판자로 만든 배일 테고...

조선의 판옥선은 

그에 비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근방 알 수 있다.

두 배가 부딪치면 어느 배가 깨지겠는가? 

우리는 대포까지 장착했는데.

이순신 장군이 전략도 좋았지만, 

전승의 바탕에는 이런 배경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선조 앞에서

"전하, 저희는 아직 13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큰소리쳤던 것이 아닐까? 


마루에 기름을 먹인다고 하나? 

하여간 마감을 할 때,

재래식으로는 광목천에 삶은 콩을 담아 넣어서 

쪼매어 계속 마루에 대고 몇 날 며칠을 문지른다.

콩보다는 호두 기름이 더 뛰어나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끈적이지도 않고...

맞는 말 같다.

프랑스인들도 부유층 아니면 모르는 것이 

호두 기름 두른 살라드이다.

맛이 확연히 틀리다. 비싸서 그렇지.

최근에 신세계 쪽에서 수입해 파는 

호두 기름을 발견했다. 좋은 세상이다. 

비싸지만 제 값은 톡톡히 한다. 

우리 속담이 이럴 때면 꼭 생각난다.

"물건을 모르면 돈을 더 줘라."


옻칠한 나무 아니고는 그 표면의 색으로 

어느 정도 오래되었는지 대충은 알 수 있다.

그 멋의 품격도 시간의 정도에 따라 많이 다르다.

0.1밀리미터도 안 되는 

그 얇은 표면의 색감이 주는 가치를 알면 기겁할 일이다.

그런데 한옥을 구입한 사람은 

새로 단장한다고 그걸 다 갈아내고 새로 니스를 입힌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홍대 앞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큰 한옥 한 채도 식당으로 넘어가더니 

그 홍색이 돌던 최고의 한옥이 

하루아침에 잡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 집도 장사 안되면 

언젠가는 헐려 빌딩 들어설 것이 뻔하다.

경제 이치에 한옥은 늘 밀려났으니까.

그래서 재력이 있는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는 것이 시급하다.

유네스코는 각 나라의 문화재들만 지켜줄 뿐 

그 이하는 속수무책이다.

우리의 피부는 당장 우리가 

스스로 사포질 하지 말고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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