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May 05. 2021

비잔틴 미술 (330~1453) B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서양 미술 이야기'





비잔틴 미술 > 러시아 이콘 
> 말레비치 > 로스코 > 모노크롬




비잔틴 미술 > 러시아 이콘 

비잔틴 시대가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는
내용에 의거해 상을 만들지 않고
성서에 너무 절대적으로 치중되다 보니
미술은 진정한 꽃을 피우지는 못했다.
다만 비잔틴 종교인 그리스 정교에 의해
러시아에 전해져
러시아 동방정교의 성화 이콘이 
정착하는 계기가 된다.

이콘은 어수룩한 종교화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으로 내부적으로 집중하게
하는 힘은 있었다.
그 결과는 동토에서 잠들어 있다가
한참 세월이 지나 의외로
카지미르 말레비치(1878-1935)에 의해
모노크롬 미술로 태어난다.

동방정교회 측 이콘 요약은 이러하다.
"우상숭배를 피하기 위해 동방정교회 신학은 이를 신비주의적인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은혜가 이콘 안에 임재하며 그림 저 너머의 세계와 지금 현재의 세계를 연결하는 매체가 바로 이콘이다."
현실과 초월을 매개하는
그 무엇이라 주장함으로써 
우상의 범주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현대 미학에서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숭고함을 인용해 
형상의 이면이나 그 너머에 존재하는 미를
숭고의 미로 정착화시켰다.

기도를 통해 매개체인
이콘 너머의 세계에 대한 숭고한 체험만큼
관객이 작품을 통해 숭고함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을 찾아낸 작가가 말레비치라는 점에서
이콘과 말레비치의 작품은
연관성이 있다고 하겠다.



 말레비치

말레비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915년에 그의 대표작인 흰색 바탕에 
'검은 사각형'을 발표하고 
절대주의 선언을 한다.
1919년에는 검은색을 완전히 제외시킨
'흰 바탕 위의 흰 정사각형'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절대주의의 논리적 종결점이고,
말레비치의 철학적 종결점이었다.

비잔틴의 절대 종교적 성향이 이콘화와
러시아에서 형성된 형이상학인
신지학에 기초한 그의 세계관을 통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를 탄생시킨 것이다.

절대주의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최초의 순수한 기하추상회화 운동. 추상한다는 시각 세계에서 주어진 것을 단순화하고 정화하는 것이다.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기하학적 형태를 택했다. 물질적 현실세계를 초월하여 대상 없는 정신세계를 표현하였다. 또한 색채의 순수성, 즉 색채가 회화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립된 하나의 단위로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공존하는 다른 의식들을 무시했다.
그러면서 단순한 형태와 컬러만으로
절대주의를 표현한 것이다.




절대주의는
어떠한 한정(限定)도 없으며,
모든 가능성을 내포한
무한(無限)의 상태이기도 하다.
즉 이것에 의거해 모든 존재가 탄생하고
존립하는 근원으로서의 절대적인
실재(實在)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3차원을 원근법으로 2차원의 공간에
넣을 수 있다면
4차원도 3차원에 투영될 수 있을 것
이라고 주장한다.


형태 면에서 
그의  작품의 특징은
단순한 기하학적인 형태의 사용이다.
"모든 형태의 기본은 
사각형 혹은 원, 삼각형이다.
절대주의의 사각형 및 
그 이념에서 생겨난 형태들은 
원시인의 기호와도 비교될 수 있다."
라고 했다.

색채 면에서는
말레비치는 이 검은 사각형을
"모든 회화를 불태운 (검은) 화장터”라고
말했다. 그림에서 제거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제거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불변의 절대적 속성,
모든 것을 불태웠을 때 남게 되는 본질,
그 형상의 본질을
새로운 회화의 출발점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는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단지 감수성밖에 없다.
바로 이 길을 통해 예술,
즉 절대주의는 재현을 벗어난
순수 표현에 이르게 된다.
예술은 감각 외에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는
사막에 도달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색과 형태 모두
회화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파리 유학 시절
우리 학교 미술 이론 교수들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통하는
권위 있는 교수들이었다.
미술 이론 강의에서 바우하우스의
강의 내용을 토대로  칸딘스키의 저서
'점, 선, 면'이란 책을 공부한 적이 있다.
학생들을 설득시킬 때 교수는
난해했던 말레비치 이론을 많이 들먹였다.
나도 이제 그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심오한 원리를 그 이후 연구된
다른 의식들과 접목해
쉽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는 프로이트에 의해 잠재의식만으로도
놀라운 발견으로 치부되던 시대였다.
말레비치는 나름 다른 사람이 모르던
또 다른 의식의 영역을 발견이고
그걸 작품화해서 발표를 한 것이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또 다른 의식을 절대라는
종교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후에 잠재의식 외에 초의식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었으니 초의식이란 용어로 대치해야
된다고 본다.


말레비치가 발표한 흰색은 창조의 바탕을
검은색은 창조된 후 쇠락을 
그리고 몇 년 뒤에 발표한 흰색은 
재창조를 의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현존 의식에 의도가 생기면
초의식은 표현을 위해 창조를 하게 된다.
창조를 하기 위해서 태초의 빛이라는 
신성한 에너지가 생긴다.
그 태초의 빛의 컬러를 흰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얘기 나온 김에 추가로 얘기하자면,
태초의 빛은 스스로 발광하는 빛으로 
영감을 느낄 정도의 선명한
여러 컬러의 빛으로 나뉘며
조합되어 창조를 해낸다.

그 이후 무채색에 가까운 잠재의식을 거쳐 
초의식의 컬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현상 세계에 수많은 컬러들로 표현된다.


이 알려지지 않은 창조의 비밀 원리 파악과

적용을 한 작가가 한 시대에 다 해내기에는

버거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말레비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그러하니

말레비치는 한 의식 영역을 열고

작품화한 용감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홍대 선배로 재불 작가인 이배는

의욕과 에너지 넘치는

진취적인 남성적인 인물이다.

나무가 불타면 숯이라는 정수가 남는다. 는

말레비치와 같은 주장을 하며

그 에너지로 압축적인 힘찬 형태로

작품을 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절대주의적인 작가군의 특징은

그 고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드레이 루블레프, 그리스도 이콘화, 1410년~1415년, 

158*106cm, 목판에 템페라, 모스크바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 1915





말레비치, 흰색 위의 흰 사각형, 1919







이배, Issu du feu-ch44, charcoal on canvas, 2003





로스코

말레비치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는
후대에 미니멀리즘의 효시인 
마크 로스코이다.
말레비치가 이루지 못한 나머지
이성이 아닌 감정과 컬러만을 다룬다.

마크 로스코(1903~1970)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로
'색면 추상'이라고 불리는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로
거대한 캔버스에 스며든
모호한 경계의 색채 덩어리로
인간의 근본적인 감성을 표현했다.
극도로 절제된 이미지 속에서
숭고한 정신과 내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관객들이 작품과 교감하기를 원했고
자신의 그림들이 개별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으며
작품 스스로 개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본인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작가였다.




모노크롬

1950년대 말, 프랑스의 이브 클라인은 
개인적으로 색소를 개발하여 한 가지 색을 만든다.
울트라마린만큼 밝지는 않고
프러시안보다는 어둡지 않은 
사람을 빨아들이기에 적합한 선명한 컬러이다.
작가가 개발한 색이기에
본인의 이름의 이니셜로 컬러 이름을 정했다.


1960년대 초, 추상표현주의 영향을 받은
애드 라인하르트나 로버트 라이만과 같은 
단색화 추구하는 화가들이 나온다.
라인하르트는 검은색, 라이만은 흰색 계열을
주로 썼다. 
이들은 형태를 버림으로써 
더욱 풍부한 감각의 차원을 열어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2012년 초,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본관에서 개최했던
‘한국의 단색화’ 전은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그려진
‘단색화’를 집중 조명하는 대형 전시였다.
그래서 큐레이터를 맡은 윤진섭 호남대 교수는
‘모노크롬’이란 영어 대신
‘단색화(Dansaekhwa)’란 고유명을
공식적으로 표기할 것을 주장했다.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한국 미술의 브랜드를 갖기 위한
첫걸음이란 생각에서 란다.

김환기·곽인식·박서보·이우환·정상화·
정창섭·윤형근·하종현 등 17명의
전기 단색화 작가와
이강소·문범·이인현·김춘수·노상균 등
14명의 후기 단색화 작가로 구분했다.


서구에 비해 100년 내지는 50년 뒤진 전시가
뒷북을 치는 듯 씁쓸했다.
평론계에 대표 격인 윤진섭 교수가
이 정도뿐이 안되는가 못내 께름칙스럽다.
한국의 단색화는
서구의 미니멀아트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은
나는 우물 안 개구리요 로 들린다.






마크 로스코, 레드와 핑크 위에 핑크





이브 클라인, IKB 191





라인하르트, 추상화, 레드, 1953





라이먼, 브릿지, 1980



작가의 이전글 싱글 몰트 위스키의 대명사, 그렌피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