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서양 미술 이야기'
체헬소툰을 나와 조금 더 걸으면
또 하나의 궁전이 있다.
하쉬트 베헤쉬트다.
이 궁전의 이름을 짓는데도
페르시안인들의 시적 상상력이 발동됐다.
하쉬트 베헤쉬트라는 단어는
하쉬트는 여덟이라는 숫자이고
페르시아어로 '8개의 천국'이라는 의미다.
쿠란에는 천국은
7개의 층으로 돼 있다고 쓰여 있다 한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이 궁전이
쿠란에 나오는 7개의 천국에 비견될 정도로
아름답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1669년 사파비 왕조 여덟 번째 왕 솔레이만이
여덟 아내를 위해 여덟 개의 방을 들인
팔각형 궁인 것이다.
궁은 중앙에 분수대를 둔 개방 홀을 만들고
사방으로 방 네 개씩을 이층으로 들였다.
심지어 분수대도 팔각형이다.
무슬림들은 일부다처제이지만
첫째 부인이 허락하에서만 후처들을 둘 수 있고
공평함을 원칙으로 한다.
그에 따라 방도 똑같아야 하는 것이다.
홀의 천장은 중앙에 채광창이 있고
채광창 천장 부위는 거울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이 궁의 특징이다.
방 역시 천장을 돔으로 처리했고
방이라 천장 채광창은 없지만
돔 중앙 부위를 거울로 포인트를 주었다.
우리가 눈길이 가는 부분은
홀의 천장 컬러와 방의 천장 컬러이다.
벽이나 기둥은 아이보리 갈색 계열이지만
홀과 방은 전체적으로 같은 분위기의
중간색 컬러이다.
그러나
방 쪽이 더 따뜻하고 밝게 처리되어 있어서
안온한 감을 준다.
침실에 살색이나 핑크 계열이 들어가면
남자의 본능은 자극된다.
핑크까지는 아니지만 옐로우와 주황이 보인다.
그 색들은 인간 심리를 좀 들뜨게 하는 컬러이다.
보다 점잖게 지체 높은 이를 자극하기에
적당하다 하겠다.
하쉬트 베헤쉬트는 건축적으로
홀 내부나 방 내부의 채광이 잘 되고
문과 창문이 크고 높고 많아
정원의 숲과 교감을 극대화시킨
수준 높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그 점에서는 체헬소툰 궁전보다
점수를 더 주고 싶다.
샤의 궁궐 활동 영역을 생각해 본다.
궁궐은 크게 3개의 궁으로 구성되어 있다.
낙쉐자한 광장을 끼고 있는 알리카프 궁전은
방문객들 접견과 연회와 힐링을 위한 곳이고
체헬소툰은 집무실의 공간이겠고
하쉬트 베헤쉬트는 침소에 해당한다,
낮과 지상의 최고는 체헬소툰이라면
밤과 천상의 영역은 하쉬트 베헤쉬트라 하겠다.
하쉬트 베헤쉬트의 정원의
옛 이름은 '바게 볼볼'이라고 불렀다.
볼볼은 페르시아어로 '나이팅게일'을 뜻한다.
나이팅게일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정원에는
지금 오렌지 나무가 빼곡하게 심어져 있다.
풍성하게 달린 노란 오렌지 나무 아래
고급스런 벤치에 앉아 있으면
페르시아 문화의 한가운데에 와서 앉아 있는
만족스러움이 밀려온다
하쉬트 베헤쉬트의 정원은
샤히드 라자이 공원이 되었다.
이스파한 시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저녁 무렵 마땅한 엔터테인먼트가 없는
이란 사람들은
쿠란에 등장하는 천국과도 같은 정원에
음식을 가져와 카펫을 깐다.
그리고 가족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티 파티의 시간을 보낸다.
놀이문화가 발달 안 된 것은
아마도 금주를 비롯해 엄격한 절제를 강조하는
이슬람 계율 탓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란 사람들은 공원의 피크닉을
커다란 즐거움으로 여긴다.
우리네도 어려서는 궁에 가서 돗자리를 펴고
가져간 도시락을 먹던 시절이 있었다.
능에서 야유회를 하며 수건 돌리기 놀이도 했었다.
인간의 놀이 문화는 그때그때 변한다.
안 변하는 것은 놀고 싶은 욕구이다.
놀 때 즐거움도 있지만 발산을 위해서 이기도 하다.
발산은 순환에 도움이 준다.
이왕 놀 거 즐겁게 놀고 볼 일이다.
하쉬트 베헤쉬트 궁은
세계적으로 최고의 가치 있는
생활 문화 유적인데
다른 모스크나 궁에 비해 보수해야 할
부분이 많이 눈에 띈다.
이라크와도 전쟁을 치렀고
시리아 전쟁에도 가담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헤즈볼라에 지원도 하고
수니파 대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견제도 해야 하고
종교계와 정부에서 자금을 빼돌리느라
여력이 없겠지만 차차 시간을 가지고
보수 공사를 진행하기를 바래 본다.
하쉬트 베헤쉬트 궁전 옆에
과거 실크로드를 오가던 카라반들이
숙소로 사용했던 '카라반사라이'가 있었다.
실크로드상에 있는 도시에는
대부분 카라반사라이가 존재한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곳도 있지만
몇 군데의 도시에는 생생하게 보존돼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거나
여행자 숙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쉬트 베헤쉬트 옆의 카라반사라이는
이란 최고의 호텔이라고 일컬어지는
압바스 호텔로 변해 있다.
압바스 호텔에 묵는 사람들은
수백년 전 낙타를 몰고 수만리를 걸어서 온
카라반들이 감발을 벗어 털고
노곤한 몸을 뉘었던 곳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다.
압바스 호텔의 정원은
하쉬트 베헤쉬트의 정원과 이어져 있다.
압바스 호텔 시설은 현대식을 바랄 수는 없다.
이도저도 아닌 것이,
한국의 70년대의 고리타분한 느낌이랄까?
요즘, 향수는 아닐 것이고 그 퀘퀘한 분위기를
낭만으로 찾아다니는 젊은이도 있기는 하다만,
하쉬트 베헤쉬트 정원만 즐기고
차라리 전통 호텔을 찾아보는 것이 답일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