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Oct 11. 2021

페르시안 거울 인테리어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안드로노보 문화 




















지금까지

페르시아의 문화가 세계 문화사에 끼친 

엄청난 영향력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뭔가 다르다. 

아니, 다름을 넘어 최고의 뭔가가 있다.

그들은 어떤 민족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페르시아는 아리아인의 후손이다.

아리아인이 이란고원으로 이주해 온 것은

기원전 2,000년 경이다.

아리아인은 '인도 유럽 어족'의 한 부류로

중앙아시아 초원 지역에 살던 한 부족이 

인도와 이란 지역에 내려와 정착한 민족이다.

아리아인들의 생김새는 

유럽인들과 가깝기는 하지만

원류는 중앙아시아인 것이다.

이를 인류 언어학에서 

'인도 이란이안 원류 문화'라 하며

고유 명칭을 '안드로노보 문화'라 한다.


인도 이란이안 원류 문화인 중앙아시아의

안드로노보 문화는

언어학, 인류학, 역사, 문화, 문명에 있어서

모든 것의 원점에 해당될 정도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안드로노보 문화권은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하는

오늘날의 '중앙아시아'라 하겠다.



중앙아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부에 위치한 건조 지대로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동으로는 알타이산맥, 

서쪽으로는 카스피해,

북으로는 시베리아 평원, 

남쪽으로는 힌두쿠시 산맥과

쿤룬산맥에 둘러싸인 지역이다.


파미르 고원은

중앙아시아 동남쪽에 있는 고원으로 

타지크(Tadzhik)를 비롯하여 신장,

파키스탄(인도), 아프가니스탄 등에 걸쳐 있다.

티베트 고원과 히말라야, 카라코람,

쿤룬(崑崙), 톈산(天山) 따위의 산맥이

모여 이룬 것으로, ‘세계의 지붕’이라고 한다. 


타지키스탄은

국토의 절반에 해당하는 동쪽 대부분이

파미르 고원에 속해 있다. 




안드로노보 문화는 역사 지리적으로

우리 겨레의 뿌리와 관계가 있어

상당히 흥미가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요즘 재야에서는 우리 역사 열풍이 일고 있다. 

<환단고기>에는

환인과 환웅과 단군의 상세한 족보가 나오고

카자흐스탄이 단군의 나라요

아사달이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라 하고

박 씨 가문에서 전해진 <부도지>에서는

태초의 마고 문명이 파미르 고원 쪽에 있었고

1만 8,000년 전

인류 시원(始原)의 문명이라고 규정한다.




유럽인들과 그들의 문화의 근원이라 생각하는

그리스 문화는

지금의 터키 북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영향으로 이루어졌고

아나톨리아 문화는 안드로노보 문화권의 

아리아인들이 이주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안드로노보 문화 

> 아나톨리아 문화 

> 그리스 문화







아리아인



아리아인은 기원전 1700년 전부터 등장한다.

함무라비 왕조를 무너트린 히타이트,

이집트를 지배한 힉소스 등이

아리아인의 한 갈래이다.


사학가들은

"문명은 불로 싹트기 시작해 

철로 꽃을 피웠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누가 철제품을 제일 먼저 사용했을까?

3,700년 전 터키 동부 지역에 있었던

아리안족이 세운 히타이트 제국이었다.

히타이트와 싸웠던 이집트가 

전투에서 쇠로 만든 무기를 대적할 수 없어 

평화협정을 맺었다는 기록이 

이집트 신전에 남아 있다.


히타이트 제국은 약 200년 후 멸망했는데

최근에 점토판들이 발굴로

그 이유가 바다 세력에 의해서라 밝혀졌다.

하지만 이들이 남긴 철 제조기술은

지금의 이란 조상들이 전수받아

기원전 500년께 중동을 통일해

페르시아 대제국을 건국하는 기반이 된다.




오늘날 진정한 아리아인의 후예를

강조하는 나라가 이란이다.

이란이란 뜻은 아리아인의 나라이다.

이란인들은 이집트에서 인더스강까지 이르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했던

아케메네스 왕조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기원전 550부터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했고

키루스 대제의 치적은 왕 중 왕으로 불릴 만하다.

페르시아인들은

페르시아라는 국명은 2500년 간 사용했다.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이란의 남부 지명인 

페르시스(현재 페르세폴리스)에서 왔다.

페르시스는 아리아인의 한 부족인

파르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페르시아 카자르 왕조의 레자 칸이라는

인물이 1878년 출생한다.

군인이었던 그는 1921년 쿠데타에 성공하고

1919년 체결한 영국 이란 협정을 무시한다.

그는 서구의 압박에서 벗어나

아리아인 민족의 자긍심을 더욱 고취시키고자

1935년 그리스어인 페르시아에서 

아리안족의 후손이라는 의미인 이란으로

국호를 바꾸고 서방 세계에 통보하기에 이른다.


히틀러의 종족 우월주의는 

순수 혈통을 운운하며 

엉뚱하게도 게르만족이 아니라 

아리아인을 주장했다. 

이란의 레자 샤의 정책을 도용한 것이다.

유대인과 집시들을 처벌하려는 명분으로 

순수 혈통을 들먹였던 것이다.




원류와 기원을 추적해 갈 때

언어가 상당히 중요하다.

말의 어원의 앞말은 변하지 않고 

내려오는 특성 때문이다.


서양 문화는 서쪽으로 계속 이동했고

동양인들은 동쪽으로 계속 이동했다.

남쪽으로 내려간 인도의 문화는

인도네시아 남쪽 끝 발리까지 내려갔다.

그 중심점은 파미르 고원 쪽으로 추측이 된다.


서남쪽으로 이동을 시작한 아리안족,

이란인들이 주장하는 아리안은

'고귀한' 이란 뜻이란다.

북쪽으로 이동한 동이족은 아리랑을 

귀하게 여긴다.

남쪽으로 이동한 경우인 인도의 남부에는

한국어와 같은 타밀어가 존재한다.

아리안족의 아리와 아리랑의 아리가

일치하는 것을 간과할 수가 없다.

아리는 어원적으로 진리가 확장됨을 뜻한다.


이란의 아리안

한국의 아리랑


두 민족 다 먼 옛날,

같은 지역권에서

같은 진리를 숭상하지 않았을까?







히타이트의 비닐 형태의 철제 갑옷






히타이트 제국의 신무기 강력한 전차






히타이트와 이집트 간의 인류 최초의 평화 조약 문서






아리아니의 혈통을 이은 페르시아는

메소포타미아 동쪽 지역에 자리하며

그전에 있었던 수메르와 이집트와 인더스 문명

그리고 아시리아와 바빌론 문명들의

좋은 것들을 모두 수용해

그들만의 페르시아 문화와 문명을 

재창조해냈다.


현대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들의 집약된 완성품 중 하나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 고레스탄 궁전에

인테리어로 남아 있다.









중세와 그 이후 미술 

(476 ~ 1400 ~)



1. 이슬람 건축 미술






페르시안 거울 인테리어



고레스탄 팰리스, 테헤란





거울의 방, 베르사유 궁전






프랑스 베르사유에 여러 번 가봤다.

화려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댄스홀인

거울의 방은 큰 네모난 거울들로

아취 형태 안 쪽 벽을 장식되어 있었다.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프랑스인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정원도 크고 넓기만 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거울 궁전이나 모스크는 달랐다.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는 감동이 있었다.


오리지널이라 그런가?

제아무리 프랑스라도 짝퉁은 어쩔 수 없다.

프랑스인들은

페르시아 궁전의 화려함을 모방해 놓고

자기네들의 작품인 양 선전해 왔다.


프랑스인의 특징은

창조력이 약하나

다행히 관용 정신이 있는 탓에

다른 나라의 것을 수용을 해서 하는

포장과 선전 능력은 탁월하다.


유럽 문화의 최정상이라는

베르사유 거울의 방은 이제

오리지널인 페르시아의 고레스탄 팰리스 앞에서

꼬리를 내리려 할 것이다.

그것은 모든 유럽 문화도 함께

무릎을 꿇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란 힘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가린다고 가려지는 것도 아니다.








테헤란의 고레스탄 팰리스


























































 




































한국과 터키, 

히타이트 문명 복원 협력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는 터키는 

역사적으로는 터키의 선대 돌궐(튀르크)이

흉노 제국에서 분할되기 전에

고구려와 혈맹을 맺은 관계로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튀르크족이 지금의 터키 땅으로 남하하기 이전,

페르시아가 있었고

그 이전에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튜샤(Hattusha)가

오늘날 터키의 초름에 존재했다.




2015년 주터키 한국대사관과 

터키 초름 주 관계자들이 만나 

고대 히타이트 문명의 중심지인 초름의 

관광 및 역사 유적 발굴과 관련하여 

협력방안을 모색했다. 


이 프로젝트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란의 선조들인 아리안의 옛 고도 유적이

지금의 터키 땅에 있는 관계로 

개발은 이란이 아니라 터키가 하게 된 상황 말이다.

한국도 끼어들게 된 점도 희한하다.

우연인가? 필연인가?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튜샤(Hattusha) 유적>






















작가의 이전글 2021 KIAF SEOUL / 초대의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