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Dec 06. 2021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이유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https://youtu.be/hAlcD8ffv3k?t=4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이유



한 나라에서 종교가 통째로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로마의 온갖 박해를 받았던 기독교나,

조선 500 년간 유교의 억압을 받았던

불교만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미신이라고 수천 년간 욕을 먹어온

무속 신앙도 아직 살아 있다.

이렇듯 믿는 자는 죽일 수 있어도

그 종교를 없앨 수는 없다.

더구나 1800 년간이나 뿌리내린

지배 종교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이 인도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그것도 오늘날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인

불교가 발생지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불교는 기원전 6세기,

네팔의 한 작은 왕국의 왕자

싯다르타의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인도는 힌두교의 모태인

브라만교의 세상이었다.

불교는 혁명이었다.

브라만 신의 천지창조는 물론

무엇보다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는

인간 평등사상에 인도인들은 열광했다.


불교 인구가 늘어나면서

왕들과 귀족, 상인들이 후원에 나섰다.

특히 인도를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왕 때,

불교는 인도 전역은 물론

인근의 나라에 전파되면서

국제 종교가 되었다.

그때가 불교의 최고 전성기였다.

불교 교단이 너무 부자가 된 것이

문제를 야기시키기 시작했다.

지배층의 넉넉한 후원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승려들은

더 이상 탁발을 다니려 하지 않았다.


석가모니만 해도 열반에 들기 전

40 년간 전국 각 지역에서

설법을 하며 불교를 알렸다.

하지만 이제 게을러진 승려들은

안전한 데다 먹을 것조차 넘치는 사원에서

나오지 않으려 했다.

불교를 민중에 전파할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대신 승려들은 사원에 틀어 박혀

온갖 형이상학적인 이론을 만들어냈다.

더구나 일반 민중들의 언어를 써야 한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달리

극히 일부 지식인들이나 아는

산스크리트어로 경전을 만들고

의식을 행했다.

그러니 일반 사람들은

불교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로마 교황청이 성서 번역을 못 하게 하고

라틴어를 사용한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사실 불교는 처음부터 

이럴 위험성이 있었다.

당시 민중들이 이해하기에 

불교는 너무 철학적이고 학문적이었다.

존재에는 반드시 그것이 일어날

인연이 있다는 연기설이나

불교의 핵심 교리인 사성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법인 팔정도 등

불교의 가르침은 하나같이 지식인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또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식관 같은 불교 수행법 역시

하루 먹고살기 바쁜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불교는 처음부터

일반 대중의 접근이 어려운, 

지식 계급적인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불교는 관혼상제 같은 가정 의식이나

종교 의례를 전혀 강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도인들의 일상에 뿌리내릴 수 없었다.

일반인으로서는 사찰에 가지 않는 한

불교를 접할 기회 자체가 없었다.


어쨌든 일반인들은 불교의 어려운 이론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신상을 모시고

그 신에게 복을 비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하고 쉬운 일이었다.

불교의 무소유 역시 당장의 생존을 위해

세속적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반인들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이러니 인도의 대중들은

계속 불교에서 등을 돌리고

이해하기 쉬운 힌두교로 속속 넘어갔다.

한편, 한 때 불교에 밀려났던 브라만교는

대혁신에 나섰다.


7~8세기경부터

불교의 교리와 의식을 받아들여

지금의 힌두교로 탈바꿈한 것이다.

힌두는 불교의 열반 개념을 가져갔고 

불교의 불살생도 받아들였다.

원래 브라만교는 다량의 소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으로 악명 높았다.

하지만 "생명이 있는 것은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힌두화하면서,

이게 더 확대되어 오늘날 인도에서

소를 숭배까지 하게 된 것이다.

힌두교는 한 발 더 나아가 

부처를 아예 힌두의 신으로 편입해 버렸다.

힌두 최고의 신 중 하나인

비슈누의 환생이란 것이다.




위기에 빠진 불교는 

이 대목에서 대 악수를 두었다.

인도에서 불교의 쇠퇴를 거론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소위 '불교의 힌두화'이다.

불교에 대해 힌두의 우위가 점차 뚜렷해지자

인도의 왕국들도 점차 불교에 대한 지원을

줄이기 시작했다.

카스트 제도와 운명론을 뼈대로 하는

힌두교가 불교보다 자신들의 통치에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왕족과 귀족의 후원에 의존하던 사원 경제는

급속히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불교는 신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힌두교를 대폭 받아들였다.

불교는 힌두의 신들과 다를 바 없는

여러 보살들을 만들어 신격화 한 다음

이들에게 소원을 빌도록 했다.

관세음보살상은 힌두신들처럼 

팔이 여러 개 달리기도 했다.

석가모니 생전에 그토록 비판했던

주술 주의와 신에게  복을 비는 기복 신앙이

불교에 도입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9~10세기경부터

불교는 힌두교와 구분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불교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는 불교의 기대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신도가 늘기는커녕 오히려 불교 인구의

이탈이 가속화되었다.

어차피 별 차이가 없으니 불교 신도들조차

사찰 대신 집에서 가까운

힌두 신전을 찾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인도에서 불교는

힌두교의 아류나 지류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다.




이렇듯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불교에

이슬람이 결정타를 날렸다.

7세기 아라비아 사막에서 시작된

이슬람은 아프가니스탄이 이슬람화 된

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인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우선 이슬람의 출현으로

유럽으로 향하던 인도의 무역로가

모두 막히게 되었다.

이는 당연히 인도의 왕족과

상인들의 몰락을 가져왔다.

그들은 불교의 막대한 재정적 후원자들이었다.

다수의 신자가 아닌

한정된 지배층의 후원에 의존하던 불교가

졸지에 궁핍해지는 것은 뻔한 수순이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불교가 

힌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근본적 원인이

바로 이슬람의 무역로 장악이었던 것이다.


이후 이슬람은 끊임없이 인도를 침입해 

크고 작은 왕국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수없이 많은 불교 사원이 파괴되고

승려들이 살해되었다.

살아남은 승려들은 경전을 수레에 실어

대거 네팔과 티베트 등지로 탈출해 갔다.

이런다고 종교가 완전히 없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인도에서 불교는 실제로 사라졌다.




이제 그 가장 중요한 요인만이 남았다.

아주 오랜 세월 인도의 종교는 

힌두교와 불교의 양자 대립 구도였다.

인도에서 불교는

힌두의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는

인간 평등사상 덕에 빠른 시간 내에

거대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다.

7~8세기 이후 불교가 위축되면서도

그나마 세력을 유지했던 것은

불교가 형식상이나마 평등 주의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불교의 존재 이유는 평등이라는

사회 정치적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슬람이 불쑥

이 양자 구도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불교와 이슬람은 묘하게도

공통점이 많았다.

상업 세력이 기반이라는 것도 그렇고

반 카스트 제도와

인간 평등을 주장하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다른 점도 있었다.

불교는 반 카스트적인 평등 주의를

실현할 힘이 없었던 반면

이슬람은 이를 실천할 무력도 있었고

경제력도 있었다.

그러니 이제 불교를 옹호할

아무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즉, 이슬람은 인도에서 힌두에 대항할 

불교의 완벽한 대체재였다.

힌두와 불교의 대립구도가

힌두와 이슬람의 구도로 바뀐 것이다.


이 바람에 인도에서 불교도들이

대거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불교도가 가장 많았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가 모두

이 과정에서 이슬람의 땅이 되어 버렸다.

물론 이슬람의 강압도 일부 있었고,

힌두교로 개종할 경우 불가촉천민이 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해서 인도에서 불교는

13세기 초에 거짓말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거기에는 불교의 지식 계급적인 한계와

불교의 힌두화란 그릇된 판단 등 

여러 요인이 있었다.

하지만 인도에서 불교가 소멸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불교가 인도 사회에서 담당하던 역할을

이슬람에게 빼앗기면서 

존재 이유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역사가 오래된 종교라 할지라도

올바른 정치 사회적인 역할을 못 할 경우,

그 나라에서 도태될 수도 있음을

불교 발상지인 인도가 경고하고 있다.







가정(定)



한국의 불교계는 고려 중 후반기에 이미

지눌에 의해

즉각적인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점진적인 수행은 해야 된다는

'돈오 점수론'으로 결정을 봤지만

지금까지도

즉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돈오'와 

점진적으로 수행을 통해야 한다는 '점수'를

놓고 갑론을박을 한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불교는 수행법을 보충하고자

중국에서 달마의 단순한 선불교를 들여와

좌선이 대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수행법은 없어

고행만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노릇이다.


현 한국 불교는 오랜 세월 한국 문화에 스며들어

완전 한국 고유문화가 되었다.

한국 불교의 문화는 

한국 문화의 보루라고 봐도 될 정도이다.

그 멋과 품위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불교가 현대 한국 고유문화를
지켜왔다는 데에 의의가 크다 하겠다.

하지만 불교가 들어온 후로

왕성했던 백제, 신라, 고구려 삼국이 

하나 같이 쇠락기에 접어든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얘기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 불교도 현 상태로 구태의연하게 간다면

진취적인 기독교에 신도가 몰리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지금까지 몇십 년간의 종교인 통계를 보더라도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 어려서 한국에 불교 인구가

기독교 인구에 비해 많았다.

불교에는 청년회나 유아반이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진취적인 기독교는 각 동네마다 

작은 교회가 있었으며

교회들에는 아동반과 청년반을 

적극 장려하며 키워왔다.

어린 우리의 눈에도

기독교가 불교를 이기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지금 현실적으로 그렇게 실현되었다.


아직도 몇몇 절 외에는 아동반이나 청년회가

조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 불교의 나태함의 민낯이다.

최근에 승가에서 깨인 스님과 신도들은

티베트 라마교 사원과의 교류도 하며

불교의 혁신을 위해

요가 수행을 병행하기도 하고

라마교 수행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초기 불교를 가르치는 미얀마에서

초기 경전인 니까야를 배워오고 변역도 되어 있다.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종교는 크게 선교, 불교, 유교로 내려왔다.

한국의 평등주의 불교가

양반 쌍놈을 구분하는 계급 사회였던

유교 사회에서는 살아남았지만

진취적이고 자본력 있는 기독교 평등주의에

온전하지는 못할 것이라 본다.


유일신만을 섬기는 기독교도 

포용성 면에서 부족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구약과 신약의 신의 모습이

대조가 될 정도로 다른데

한 카테고리의 종교인 것도 의아한 일이기도 하다.

예수가 유대 교회에 가서 

뒤집어 놓을 정도의 유대교 구약이 

신약과 같이 엮여 있는 것 자체가 

모순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필요한 것을 발취해서 취해야 되는 

번거로운 종교가 되었다.

예수의 재림이 새로운 방법으로 이루어지면 

해결되려나?

기존 경전 외에는 다 이단으로 몰아가는 

독선적인 현대의 일부 기독교 목사님들에게

예수가 새로운 성경을 가져다줘도

그들은 이단이라고 손사래를 칠지도 모른다.


기독교를 객관적으로 볼 때,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인들과 하나님과의 갭이라 본다.

어떤 은혜받은 전도사는 

성경에 하나님의 입장이 될 수 있다 

라고 나온다 하고,

어느 종파는 '해븐 라인'이라는 것이 있어

그 선을 절대 넘을 수 없다 한다.

종교에서 에고가 제압되어야 절대 세계가

드러나기에  자기희생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아예 절대자에 접근 금지선을 그어 놓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기독교가 불교보다 성장하는 와중에

한국 고대 역사가 정리되고 힘을 받으며

과거에 웅비했던 선교(仙敎)가 고개를 들면

크게 종교화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것은 한국민의 자부심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때는 한국이 세계 역사를

리드하는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파미르 고원에서 북방으로 퍼진 계열 가운데

동으로 이동해 엄청난 세력을 기반으로

조성된 문화와 역사 유물이 

밝혀진다는 전제 하에서 하는 가정이다.


현 국제 정세 상황으로 보아

가능성은 많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중화 쪽에서 한나라 사마천의 사기부터

왜곡해 온 역사와 동북공정과 일본의 식민사관은

한 순간에 끝장이 난다.

물론 현재 매국질을 하고 있는 한국의 주류 역사계는

그때 어떤 해명을 할지 무척 궁금하기도 하다.




파미르 고원에서 사방으로 퍼져

유구한 역사를 가진 많은 나라들이 생겼다.

동이족의 선교(仙敎)도 그중 하나이다.

호흡을 돌려 증폭한 파장을

브라만 대신 율려에 맞춘다는 이론은

브라만교와 유사하다.

하지만 스승과 제자로 내려와야 하는 

맥이 끊어진 지 오래다.

현재 인간이 영성을 개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영 과학 기술이 

온전히 계승된 나라는 

인도와 티베트가 유일하다.

다음 편에는 내친김에 

티베트의 영 문화도 요약해 보기로 하자. 






https://youtu.be/D75Lwxo4Wbw?t=323

         

작가의 이전글 불교 유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