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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Nov 30. 2021

불교 유적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불교








불교 발상지인 인도에는 불교가 현존하지 않으니,

전파된 다른 나라들의 불교로 구분할 수밖에 없다.




불교는 크게 5 가지가 있다.


1. 남방 불교(소승 불교)

    인도와 제일 가까운 

    미얀마와 스리랑카로 시작한 

    동남아의 불교이다.    

    초기 불교로 기반으로 한다.


2. 북방 불교(대승 불교)

    북방으로 전파된 중국과 한국의 불교이다.

    공 사상을 중요시한다.


3. 티베트 불교

    티베트 고유의 본교에 

    남방과 북방 불교와

    요가 수행이 혼합된 불교이다.


4. 선 불교

    대승 불교가 중국에 들어가 만들어진 

    참선을 위주로 하는 불교이다.


5. 서양 불교 

    불교가 서양으로 들어가

    불교 심리 치료가 된 것을 말한다.






불교 핵심 가르침 



정신과 물질로 이루어진 모든 현상이

괴로움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성제

1. 고 ㅡ 괴로움을 아는 것.

2. 집 ㅡ 괴로움의 원인을 아는 것.

3. 멸 ㅡ 괴로움이 멸함을 아는 것.

4. 도 ㅡ 경지에 도달하는 것


팔정도

불교 수행의 올바른 여덟 가지 길로

정견 (政見), 정사유 (正思惟), 정어 (正語),

정업 (正業), 정명 (正命), 정정진 (正精進),

정념 (正念), 정정 (正定)을 말한다.


수식관 호흡법

숫자를 세며 호흡하는 법이다. 


사마따(집중) 

힌두교처럼 집중을 강조하지는 않지만

위빠사나를 얘기할 때 

앞에 같이 따라 붙는다.


위빠사나(관조)

영원히 변하지 않는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보는 것.






불교의 경전 



부처의 가르침은 

600 년간 제자들의 암송에 의해 전해지다가

아쇼카 왕이 스리랑카에 보낸 아들들에 의해

기록되기 시작한다.




<안반수의경>과 <잡아함경>



'수식관(數息觀)'은 불교의 명상법 중 하나이다. 

'수식법', '안반념법', '아나파나사띠'라고 부른다. 

석가모니가 직접 하던 명상법으로, 

남방 불교 '위파사나'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명상법이다.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에 숫자를 세는 것은 

셈을 통해 잡념을 여의고자 함이다.

생각을 숨에 일치시켜 숫자를 세어야 하며

(念息合爲一數), 

숨을 세는 것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고 

혹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를 빨리 알아차려 

둘이 일치되도록 해야 한다. 


이렇듯, 

수식관은 산란심을 가라앉히고 

선정력을 키우기 위한 행법이다. \




'안반수의경'과 '잡아함경'에는

불교의 호흡법인 '수식관(數息觀)'이 나온다.

안반수의경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호흡을 세는 방법은

들이쉬고 내쉬는 숨에 따라 

하나부터 열까지 숫자를 세는 것으로 

들이쉬고 하나, 내쉬고 둘 등으로 

세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1, 3, 5, 7, 9의 숫자는 들이쉬는 숨이며, 

2, 4, 6, 8, 10은 내쉬는 숨의 숫자이다."






마하 프라즈냐 파라미타 흐리다야 수트라

   (산스크리트어 본)

> 마하 반야 바라밀다 심 경

   (현장 스님의 한자 번역본)

> 반야심경



'반야심경(般若心經)'은

6백 권이나 되는 대반야바라밀다경의 요약본을

당나라 삼장법사인 현장(玄裝)이 

번역 및 전래한 것이다.

한문으로 260자도 안 되게 짧지만

대승 불교의 깊은 진리를 함축했다는 경전이다.


깨달은 뒤의 상태를 얘기하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진언을 외우라는 내용이다.




<위대한 지혜로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

  (한글 번역본)


관자재보살께서 깊은 지혜로 

깨달음에 이르는 실천을 행하실 때, 

모든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가 

모두 텅 비어있는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벗어났다. 


사리자여.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니,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판단도 

또한 그러하다. 


사리자여.

이 모든 사물은 그 성질이 공하여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판단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생각도 없으며,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과 생각의 대상도 없다.

시각의 영역도 없고 

의식의 영역까지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고 

또한 어리석음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다.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없어짐,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또한 얻는 것도 없다.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 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다.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마침내 열반에 이른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 반야 바라밀다를 의지하여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므로 알아라. 

반야 바라밀다의 주문은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능히 온갖 괴로움을 없애주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해주니, 

주문은 곧 이러하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반야심경'에서는

반대로 이미 완벽하게 깨달은

관세음보살(관자재보살)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중생이라 할 것도,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소멸과 그 방법이라

할 만한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까지 합쳐서

한자 총 270자에 불과한 반야심경에는

'아니 불(不)'자가 9자,

'없을 무(無)'자가 21자,

'비어있을 공(空)'자가 7자나 쓰였다.


반야심경의 본문은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긍정 표현은 거의 없고,

"무엇은 무엇이 아니고,

무엇은 물론, 무엇 무엇까지도 없다." 란

부정 표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공의 입장에서는

모든 현상을 부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늘 문제다.

왜 색(물질)이 공이라 해놓고

바로 공즉시색이라 해서

공에서 물질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 문제는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이나

'하나의 빛이 온 세상을 장엄하게 비춘다'는

화엄(華嚴) 사상으로 푸는 것이 적절하리라 본다.

즉, 공의 세계에 한 빛이 있어

창조가 순식간에 일어나

색의 세상이 펼쳐지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의 열쇠는 결국 빛이다.


빛에 대해 상세한 것은

신약 성서의 '요한복음'에도 아주 많이

그리고 아주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성령의 이야기와 함께.

'요한복음'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 홀가분하고 개운했었다.

미학에서 이론적으로 정리한 것이

이미 거기 다 있었으니. 






부처의 뜻은 구세주라는 뜻이다.

오랜 세월 많은 부처들이 있었다.

지금의 불교는 '고다마 싯다르타 부처'이다. 

한 분 더 올 미래 부처가 '미륵 부처'이다.


고다마 부처는 

철두철미한 과학자적 성향이 있었다.

세상의 어떤 원리인지를 파악해냈고

힌두교의 요가 수행법 중에

가장 손쉽게

수행자가 닦을 수 있는 방법을 추려냈다.

그 당시에는 

새로운 지적이고 실질적인 

진리의 종교였던 것이다.


힌두교에도 요가 호흡 수행법 중에 수식관이 있다.

불교의 수식관은 힌두교의 호흡 수행법 중 

수식관을 특화시킨 것으로 사료된다.

불교에서 힌두교를 통해 전해 내려오는 법 중에

불교화한 가장 차원 높은 법은 '관법'이다.

이는 영적인 면에서 힌두교와 불교가 

인류에 공헌한 가장 큰 것이라 여겨지는데

힌두교의 '보는 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그것이다.

요즘은 명상이란 말로 주로 쓴다.




우리 젊은 시절에는 

한문 중심이어서 불교를 접하기가 어려웠고

한문은 추상적인 문자라 

좀 뜬구름 잡는 구석이 있었다.

더욱이 부처가 설법했던 팔리어로 된 

초기 경전은 번역이 되어 있지도 않았다.

이제 시대가 달라져 

초기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스님들이나

신도들도 있는 시대가 되었다.


불교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데서 시작한

종교이니 만큼 진지함이 있다.

그러한 까닭에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특성이 있다.

기쁨을 찬양하는 긍정적 종교인 

그리스도교와는 대조적이라 하겠다.






불교 유적지



인도 산티대탑



인도 불탑의 전형, 산티대탑(석가모니 진신 사리탑)





탑(스투파)의 몸체를 이루는 반구형의 돔을 

불교 문헌은 'Anda(알)'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형태'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 불교 문헌 내용은 상당히 중요한 자료이다.

이로써 힌두교 탑의 원형 꼭대기에

알이 있는 이유를 확실히 알게 해 주며

고대사의 많은 수수께끼들을 풀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선 인류 문화인 바위 문화에서

세계 곳곳에 즐비한 알바위 형성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밝힐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선 인류'는 

현생 인류 이전에 있었던 인류를 말한다.)


예를 들자면,

북방계 유목민들의 적석분 무덤 양식도 

알을 반으로 표현한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잔타 석굴 사원


https://youtu.be/zvTneRPdqhA?t=548








                                        

슈웨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 


미얀마의 양곤 에 세워져 있는 98m의 불탑이다.

고고학에서는 탑은 사실상 6~10세기 사이에

몬족에 의해 지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탑은 원래는 8m에 불과했으나 

시대를 거듭하며 증축되어 현재의 높이가 되었다.

















미얀마의 바간







사람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친절한

미얀마는

방문하기 쉽고 편안한 곳은 아니지만 

바간이 주는 풍광만큼은

세계의 다른 지역과 다른 맛이 있다.


미얀마의 이라와디(Irawadi) 강둑에 있는 

멋진 탑과 사원으로 가득한 

황량한 버려진 도시, 바간은 

아시아의 경이로움 중 하나이다. 


푸르른 바간 평원 바탕 위에

2,229개의 불교 사원과 각종 탑 등의

풍부한 고고학 유적이 뒤섞여 있는 풍경은

아름답다.

일몰 때 바간 평원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아무리 냉철한 사람이라도

정신적인 힐링과 함께

곧 가슴에 사랑이 깃들고 말 것이다.




바간은 고대 버마의 정신적 유산에 속한다.

역사는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Bagan의 화려함은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지속되었으며 

그 기간 동안 수많은 웅장한 건물이 지어졌다. 

하지만,

1287년 쿠빌라이 칸에 의해 약탈되었고 

재건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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