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답사 후기
능에 도달하기에 앞서서
야외에
세종 시대에 개발된 과학 업적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해시계, 측우기, '천상열차분열지도'...
대학 1학년 때 교양과목에
천문학이 있었다.
왜 들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연대 출신 천문학자 나일성 교수의 강의는
뇌리에 남는 명강의였다.
그때 교수가 자부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천상열차분열지도'였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유일하고도 상세한 '천문도'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세종의 업적인 줄은 몰랐다.
찬란하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하리라!
조선 시대 유산으로
42곳이 거의 온전히 남아 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능'.
어려서부터 소풍으로 여러 능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감탄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같이 간 친구와 입구에서부터
떼를 깎느라 고생이 많았겠다고
말을 나눴지만,
능이 보이자
떼 벌판과 언덕과 조선 소나무의 조화가
만들어 내는 풍경은 과히 일품이었다.
커다란 반구형의 둥근 묘역,
그 주위에 꿈틀대는 소나무들.
소나무가 액세서리로 쓰여지는 첫 경험이다.
하늘은 청명했고
땅 위의 모든 것들은 푸르렀으며
인간의 눈은 시렸다.
감성에 점유되어 있기에
감동하는 순간에는
지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감동 이후에 지성이 고개를 든 연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이것은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
빠르게 포기했다.
그래서 머릿속에는
찬란했던 능 전체 전경이 펼쳐지건만
사진이 몇 장 없다.
같이 능을 걷던 친구는 말한다.
어머님 모시고 한번 와야겠다고.
편찮으신 어머님을 정성껏 돌보는
요즘 보기 드문 효자다.
능 오기 전에 들렸던 식당 명함도
뒷주머니에 이미 챙긴 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