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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Oct 08. 2022

아프가니스탄 1/3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아프가니스탄 1/3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근대부터의 중동 상황 




전쟁에 휩싸인

중동의 나라들 8



제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 1/3





아프간의 지형은 고산지대로 매우 험난하다.

지리적으로 대국들 사이에 위치한 관계로

편안할 수 없는 상황에 쳐해 있다.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 영국이 그러했고

미소 냉전 시대에도 전쟁터였다.

영국이 러시아 남하를 막기 위해 

가로로 꼬리를 만든 와칸 회랑으로

국경선이 신장 위구르와 맞닿아 있어

지금의 중공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다.



본래 25.000의 촌락끼리나 군소 왕조로

그냥 사는 곳이었으나 영국의 정책대로

국경선을 만드는 바람에 

지금은 아프간인, 파슈툰족, 타지크족 등

20여 여러 인종이 섞여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므로

언어 차이가 매우 커서

의사소통이 그다지 원활하지 않고

한 나라를 형성하기에 정체성의 문제로

늘 불안한 나라이기도하다.




파슈툰인 (40 ~ 45%)


아프간이라는 말 자체가

페르시아어로 파슈툰인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파슈토어를 쓰는 주류 민족인 파슈툰인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다수 민족이지만

이웃 국가인 파키스탄 북부 산악지대에도

3,000만의 파슈툰인이

비주류 민족으로 살고 있다.

파슈툰인 거주지역의 정가운데가

영국의 의도로 인해 

인위적인 국경으로 분단된 꼴이다.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주로 이슬람 수니파 계열의 하나피파를 믿지만

일반적인 하나피파와는

교리와 문화가 좀 다르다.

파슈툰인들에게는 이슬람 도래 이전부터

전해져 온 민족 규율인 파슈툰왈리가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파슈툰인들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외에 인도에도 살며

두라니 왕조 시기의 파슈툰인들이 이동하면서

인도 서북부 카슈미르에도

일정수 이상이 거주한다.

그래서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에

카슈미르 지역을 두고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인구도 많고 터키나 시리아에 군집해 사는

나라가 없는 쿠르드인과 흡사하다 하겠다.

쿠르드인은 시리아 내전으로

미국의 총대를 메고 대신 용감히 싸워서

시리아 땅의 30%를

장악해 자치를 하고 있고

파슈툰인은 미군의 아프간 철수로

아프간이란 나라가 생긴 것이다.

이 절호의 기회를

그들은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타지크인 (30 ~ 35%)


다리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타지크인, 

이들은 그냥 이란인과 동계다.


타지크라는 단어 자체는

튀르크인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에,

이는 일반적으로 파슈툰인들이

페르시아인들을 부를 때 사용된다.

다만 오늘날 이란인들이 시아파이고

타지크인은 수니파가 주류이다.

타지크인은 자신의 민족을 타지크라고

간주하기보단 수니파 페르시아인이라는

표현을 훨씬 더 좋아한다. 




파슈툰인이

아프가니스탄의 주류 민족이지만

절대인구는 파키스탄에 더 많듯이,

타지크인도

타지키스탄의 주류 민족이지만

아프가니스탄에 절대인구가 더 많다.


반탈레반 통일전선이었던 북부 동맹의

주요 지도자 아흐마드 샤 마수드가

대표적인 타지크계 아프가니스탄인이다.

타지크인들은

전반적으로 과거 구소련 영토였던

타지키스탄의 영향도 있고,

탈레반의 영향도 적게 받은 편이라

근본주의 성향이 덜한 편이다.




그다음으로는 하자라인, 아이마크인,

튀르크멘인과 같은 튀르크계 부족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고 있다.




누리스탄인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누리스탄 주 일대에 

거주하는 인도유럽어족 내 누리스탄어군에 

속하는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주민들. 

이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은 

19세기 말 무렵이며 

그 이전에는 국경 너머 이웃한 칼라쉬인들처럼 

초기 형태의 인도유럽어족 

토속 신앙을 믿고 있었다 한다.


고대 중앙아시아에 유입된 

아리아인의 후손으로 

상당히 폐쇄적인 문화를 지닌 이유로 

외부인과의 통혼이 극히 드물었으며, 

이로 인해 오늘날에도 누리스탄인들 중에는 

금발에 벽안이 많은 편이다. 

이목구비도 서유럽, 동유럽인과 거의 흡사하다.




파미르인

타지키스탄과 중국,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4개국의 국경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파미르인의 언어는 파슈툰어와 비슷하지만

종파와 문화가 다르다 한다.


파미르인이나 누리스탄인의 경우 

서유럽 백인과 구분이 힘든 수준의 

외모로 금발 벽안의 인구도 많고 

대체적으로 피부색이 밝은 편이다. 


기원전 2000년경 팽창기 당시 

인도유럽어족들은 부족원들이 

마차를 타고 다니며 이동하는 

반농 반목 문화였다.


파미르인은 타지키스탄 동부와

아프간 동부 와칸 회랑 일대에 거주한다. 

와칸 회랑이 워낙 해발고도가 높고 

교통이 불편한 이유로 

파미르인들이 무장 투쟁을 벌이면 

탈레반 입장에서도 골치 아플 것이다.

그래서 악명 높은 탈레반도 

이들에게는 아직 함부로 못하고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파슈툰인





누리스탄인





파미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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