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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Oct 14. 2022

아프가니스탄 2/3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아프가니스탄 2/3

정부군과 탈레반 간의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근대부터의 중동 상황 




전쟁에 휩싸인

중동의 나라들 9



제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 2/3




무굴 제국의 초대 황제, 바부르





티무르 제국 시대에

티무르의 피를 이어받은 바부르는

왕위 계승 전에 밀려 티무르 제국에서 

정전에 쫓겨 도망간다.


1504년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점령해

본거지로 삼고 인근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의 이스마일 1세와

동맹을 맺어 입지를 굳건히 했다.

1526년에 바부르는

사파비 왕조와 오스만 제국에게 지원을 받아

몰락한 인도의 로디 왕조를 멸망시켜

무굴 제국을 건국하는데,  

그 근거지가 된 곳이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이다.

바부르는 카불에 애정을 가졌었고

지금도 그의 유적이 카불에 남아 있다.








1528년 완공된 카불의 바부르 정원.

바부르의 사망(1530년) 후 

바부르의 묘지로 사용되었다.


1990년대 아프가니스탄 내전으로 파괴되었으나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복원 작업을 거쳐

현재는 어느 정도 원형을 되찾았다.




바부르 정원의 겨울 풍경

멀리 설산이 카불의 지형을 대변한다.





1890년대, 서쪽에서 바라본 바부르 정원 풍경





샤 자한에 의해 세워진 

바부르 정원의 흰색 대리석 모스크






무함마드 자이르 샤

(1914 ~ 2007)


아프가니스탄 토후국 시기부터 존속해온

파슈툰족 라크자이 왕조의 6대 마지막 군주이다.


자히르 샤는 프랑스에서 중고등 교육을 마친 다음

이스탄불의 이스티클랄 대학을 졸업했다.


1933년에 부왕이 암살되자 19살 나이에 즉위한다.

그의 집권 초기에는 삼촌들이 총리직을 맡았고,

1953년부터 63년까지는 사촌 모하마드 다우드 칸이

총리를 맡아 국정을 맡는다.

다우드 칸은 급진적 개혁을 시도했는데,

파키스탄과의 분쟁이 경제 위기로 이어지면서

자히르 샤는 다우드 칸을 해임시킨다.

이후 1964년 자히르 샤는

입헌군주제 헌법을 채택하고

왕족이 고위직을 맡는 것을 금지한다.




그의 치세 때, 아프가니스탄은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안정기를 맞는다. 

자히르 샤는 2차 대전 이후 

미소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며 

외국 고문들을 고용하여 

국가를 근대화하려 하였고, 

분파주의와 정치 투쟁에도 불구하고 

1964년에 새 헌법을 채택하여 

자유선거와 의회제도를 도입하였다. 

또한 군사분야 역시 상당히 발전시켰는데, 

소련제 무기를 도입해 국방력을 크게 키워 나간다. 


그러나 

73년도 다우드 칸의 쿠데타로 폐위되고 

아프간은 공화국으로 나라가 바뀌고

지옥이 시작된다. 

많은 아프간인들은

자이르 샤의 40년 통치 시절을 그리워한다.


1978년 다우드 칸 대통령이 

인민민주당 세력이 일으킨 쿠데타로 죽는다. 

다음 해에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그다음에는 정부군과 탈레반 간의 아프간 내전이, 

또 그다음에는 

탈레반과 북부 동맹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무함마드 자이르 샤





자이르 샤 이후 


1979년 12월,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있은 다음 해이다.

소련은 아프간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한다.

이슬람 세력의 반란에 궁지에 몰린

아프간의 친소련 정부는 

소련에 SOS를 보낸 것이다.

이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1989년 2월로 끝나니

거의 10년 간 지속된 전쟁이었다.

이란ㅡ이라크 전쟁(1980년~1988년)

8년보다 긴 전쟁이었다.

80년대 중동은 이라크부터 이란과

아프간 소련에 이르는 

거대한 전쟁터였던 것이다.




일반 무슬림과 과격파 무슬림들의 관점은

차이가 많이 난다.

지하드주의자와 와하비파와 같은

과격파 무슬림들 생각은 다음과 같다.

이슬람이 이란에서 샤를 타도했으며

미국을 쫓아냈다.

아프간에서는 무슬림들이 

소련의 적군을 무찔렀을 뿐 아니라

소련 자체를 전복시켰다.

두 초강대국들 모두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슬람 초기에 비잔티움과 

사산 왕조를 무찔렀고 

근대의 두 초강대국들도 

그렇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 급진파들은 긴 역사를 두고 하는

종교 전쟁이다.


오랫동안 그들은 신과 사탄의

최후의 대결을 예언해왔으며

지금의 그들의 전쟁은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되는 세계를 

지향하는 그들에게는 위대한 전쟁이다.




1980년대 아프간에서 싸웠던

외국인 지하드주의자들은 

이상적인 이슬람 세계를 구현하려 했다.

사우디는 와하비파 자금으로

지하드주의자를 통해 탈레반을 지원했었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 때 

무자헤딘에게 전쟁 물자를 지원했었다.


소련은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탈레반와 

미국이 지원을 하는 무자헤딘과의 

끝없는 전쟁이었지만

카불 북쪽의 유일한 러시아 보급 통로인

판지시르 계곡 반군에 막혀 

철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헬기와 경비행기로 

보급을 시도도 해보았지만

미국이 제공한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었던 것이다.


소련이 철수하고 

아프간은 내전으로 치달았다.

오마르가 이끄는 탈레반이 

아프간을 접수한다.

한편,

오사마 빈 라덴은 탈레반 그늘 아래

거대한 계획을 짜고 있었다.

다음 타깃은 미국이었다.

알 카에다는

사우디 왕정과 미국에 적대감을 가진 

사우디인을 알 카에다 요원으로 포섭해 

적극적 훈련시킨다.

2001년 9월 11일, 총 19명의 아랍인이

4대의 미국 민간기를 납치한다.

두 대는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

한 대는 펜타곤과 충돌했다.

마지막 한 대는 승격의 저항으로

중간에 추락했다.


납치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출신이라는데

미국인들은 경악했다.

동맹인 나라 국민에게 테러를 당한 것이다.


미국의 아들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리고 빈 라덴을 인계받지 못하자

2001년 10월 7일 아프간을 침공한다.

카불을 함락시켰고 북부 부족 연합은

새로운 아프간 정부를 수립한다.

빈 라덴은 미국 포위망을 뚫고 달아났으나

2011년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은신처에서 

미 특수부대에 사살된다.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20년 만에 미국의 아프간 철수는

구멍 난 항아리에 물 붓기 식의 

아프간 사수가 무의미해서 이다.

아프간에 민주주의를 심겠다는 미국의 의도는

대실패 한 것이다.


그건 일반적인 견해이고

딥 스테이트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동안 미국이 2.7조 달러 자금을

아프간에 쏟아부은 것은

아프간이 그들 딥 스테이트의 주요 소득이 되는 

마약 재배지였기 때문이다.

유엔 마약 범죄 사무소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마약의 84%가 아프간에서 생산된다 한다.

마약 5킬로로 5톤의 식량을 살 수 있다 한다.

아프간의 철수는 딥 스테이트의 

어젠다가 끝났거나 쇠락했다는 

의미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아프간의 미군 철수 직후 탈레반 세력은

중국이 탐내는

가치가 1177조 원 규모의 희토류를 내밀며

한국에게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고

협력을 하자고 제의도 해온다.

그러나 한국은 조심해야 한다.

미국이 학을 띠고 손 떼고 나온 마당에

미국의 혈맹인 한국은 탈레반을 무시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러시아로부터 불곰 사업으로

무기나 로켓 기술 도움을 많이 받아

방산 산업을 일으키는 개기가 되었으므로.

우회해서 지원을 하든지 해야지 

직접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국가가 되면서,

세계 여러 대륙의 여러 나라들이 

해결사 역할을 해달라 한다. 

미국을 필두로 중동과 유럽을 위시해서

심지어 스리랑카, 라오스,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아프리카 콩고 등등

동남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중남미 국가들도...

탈레반에게 신경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하겠다.

중요도와 케어 가능한 선에서

선별적인 처신을 하는 한국이길 바란다.

정신을 차리고 바른 가치를 가지고 행해야 한다.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미국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언제든 맘을 바꿀 수 있을 지 모른다.

자국의 이익 앞에서는 뒤통수 칠 수 있다.

제아무리 혈맹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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