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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Oct 24. 2022

아프가니스탄 3/3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핵심 미술 이야기>

아프가니스탄 3/3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근대부터의 중동 상황 



전쟁에 휩싸인

중동의 나라들 10



제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 3/3


아프간의 국민 영웅, 판지시르의 사자

아흐마드 샤 마수드(1953 ~ 2001)







        

이란의 사진작가 레자가 마수드를

전장에서 찍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





마수드는

이슬람 운동가로 활동하였으나

소련군이 아프간을 침공해오자

고향 판지시르에 내려가서

민병대인 '북부 동맹'을 조직해

소련군과 맞서 싸운 희대의 영웅이다.



그러나 그들이 꿈꾸고 있던

해방이라는 꿈에 비해 파키스탄에서 사 온

700여 정의 낡은 총들과 

1000 명 정도에 해당하는 민간인이

마수드의 전부였다.


'판지시르' 자체가 소련군의 주요 보급로가

지나는 길에 위치해 있지만 오지라

아군도 그곳을 지원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수드는 이곳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보급로를 장악하면 전쟁은 빨리 끝날 것이다."

마수드는 혼자서 전사들을 계속 키워냈다.

1000 명으로 시작한 군대가

마수드의 승전 소식이 들리면 계속 불어나 

일개 사단급의 강군으로 성장하게 된다.




보급로 정중앙에 박혀 있는 이 마수드를

없애 버리기 위해

소련은 사단급 규모의 공격과 전략 폭격을

지속적으로 해대는데도 불구하고

마수드는 쳐들어오는 소련군을 

오는 순서대로 해치우는 위엄을 보였고

심지어 마수드를 끝내 잡지 못하자 

보급로로 가는 대신

항공 수송으로 마수드를 피했다.

마수드의 용맹에 감탄한 소련 장성들이

일부러 영웅이 죽지 않게

공격 정보를 누설하기도 했다.


결국 마수드의 저항에 타격만 입은 소련군은

마수드에게 휴전하자고 사정하기에 이른다.

소련의 속셈은 지방에 있는 소수의 무자헤딘부터

처치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수드는 오히려

그 소수 저항 세력들을 통합해 버린다.

뿐만 아니라 마수드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

경제위원회와 교육위원회를 세우고

민간인들을 가르치고 깨우치게 하려고 애쓰고

수도와 전기 시설, 초등학교, 12개의 소병원

그리고 외과 수술이 가능한

종합 병원도 3개까지 세웠다.


전쟁 중이었는데도

사람다운 생활이 가능했던 곳은

아프간에서 마수드가 장악한 지역뿐이었다.




소련이 철수하고

아프간 이슬람 연방 공화국이 세워지자

마수드는 만장일치로 국방장관이 되었다.

정치와는 맞지 않는다며 2달 만에 사임하려 했으나

소련이 쳐들어 올 때 지방에 숨어 있던

탈레반들이 내전을 일으키니 

결국 정부군을 지휘하며 탈레반과 다시 싸워야 했다.



마수드에게 고전하던 탈레반은 

알 카에다와 거래를 한다.

마수드를 제거해주면 도움을 주기로 한다.

알 카에다는 위장 기자 2명을 마수드에게 보내

취재 요청을 해댄다.

거절하던 마수드는 몇 달 만에 허락하고

그들에게 자살 폭탄 테러를 당해 사망한다.

그의 나이 49세이었고

9.11 테러 두 달 전 일이다.




마수드의 신념은

아직도 아프간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그는 말했다.


"가장 나쁜 삶은

가난한 삶이 아니라

노예의 삶이다."








탈레반은 기반이 파슈툰족이고

마수드는 타지크인이었다.

영국이 민족 단위 개념을 무시하고

영국 편한 대로 지도를 그린 병폐가

아프간 내전 중에도 이렇듯 나타난다.




현재는 마수드의 아들 마수드 주니어가

판지시르에서 반군 사령관을 맡아

같은 타지크인인 살레 부통령과 함께 

탈레반에 저항하고 있다.





마수드 장군의 아들 마수드 주니어




암룰라 살레 부통령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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