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에 가로로
세계에서 제일 큰 사하라 사막이 펼쳐져 있다.
위에서 아프리카를 진입하려면
중간을 가로지를 수는 없다.
가운데를 세로로 가로지른다 해도
도달하는 곳은 깊숙한 밀림일 뿐일 것이다.
아프리카로 진입할 수 있는 곳은
서쪽으로 모로코가 있고 동쪽에는 예멘이 있다.
이 두 나라는 아프리카로 들어가는 관문이라 하겠다.
예멘은
비옥한 토양과 온화한 기후를 토대로
독자적인 문명을 형성해 오다가
7세기 이후 이슬람 문화권이 됐다.
예멘은 인도와 유럽을 연결하는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향료 해상 무역 시대에도 번창했던 곳이다.
건축과 인테리어가 발달되어 있는 것은
그런 연유이다.
예멘은 홍해 건너 에티오피아에서
커피 묘목을 들여와 키우게 된다.
커피 문화가 이슬람에 전해지면서
오스만 제국의 술탄의 커피 장려로
예멘에 커피 농작의 규모가 커지게 된다.
투르크 제국의 ‘1차 빈 공성전’ 때
술탄 술레이만이 즐겨 마시던 커피콩들을
퇴각하며 차마 가져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대로 남기고 떠났는데,
유럽인들에겐 처음엔
이 묘한 향이 나는 검은 콩이
대체 화약인지 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
폴란드인 콜시츠키(Koltschitzky)라는 사람이
오스만 제국에서 커피를 만드는 법을 배워 왔는데,
이것으로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커피가 알려졌다고 한다.
예멘 분열의 역사는 타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오스만 제국과 영국의 식민 통치가 끝나며 시작됐다.
독립 과정에서 북예멘에는 자본주의 국가(1962년)가,
남예멘엔 사회주의 국가(1967년)가 들어섰다.
숱한 동족상잔을 거쳐 1990년 통일됐다.
알리 압둘라 살레가 초대 대통령이 됐지만
오랜 내전으로
예멘은 아라비아 반도의 최빈국이 됐다.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
지금의 난민 사태를 초래한 내전은
2011년 ‘아랍의 봄’에서 이어졌다.
장기 집권하며 경제 파탄을 극복하지 못한
살레 대통령은 그해 6월 물러났다.
이어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다시 살레와 그의 지지 세력이
이슬람 시아파 무장단체 후티(Houthi)와 손잡고
하디 대통령을 축출했다.
후티 반군은 2015년 1월 수도 사나를 장악하고
의회를 해산했다.
후티 반군은
예멘의 정치인 알 후티가 창단한
반제국주의, 반시온주의, 시아파 무장 단체이다.
이데올로기로 남북으로 갈라져 있던 예멘,
통일하고는 이제 수니파와 시아파의
주도권 싸움으로 내전으로 치닫는다.
시아파인 후티 반군의 뒤에는 이란이 있다.
후티 반군에 밀려버린 수니파는
수니파의 종주국인 바로 윗 나라
사우디에게 지원 요청한다.
사우디 북쪽으로 이란만 시아파였는데,
이라크, 시리아 그리고 레바논까지 시아파화되었고
이제 남쪽 예멘도
시아파인 후티 반군이 득세하게 생겼다.
사우디는 아랍에미리트와 직접 개입해
폭격을 해댄다.
후티 반군도 탄도 미사일을 사우디 리야드로 쏜다.
사우디는 그 미사일들을 패트리어트로 요격한다.
예멘 내전은 점점 커진다.
미국에서 보기에 사우디가
너무 개념 없이 전쟁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은 사우디에 무기 공급을 중단한다.
이에 사우디는
미국산 무기와 호환되는 무기 공급처를 찾는다.
이스라엘과 한국뿐이 없다.
아랍의 이슬람 맹주가
이스라엘에게 손을 내밀 수는 없다.
한국에 급하게 SOS를 신청한다.
한국은 빨리빨리 정신에 입각해
급한 대로 배치되어 있던 무기를 넘긴다.
아랍에미리트도
대전차 공격용 미사일 현궁을 요구한다.
한국 무기가 예멘을 공격한다?
이란뿐만 아니라
시아파 전체와 등지는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간의 제국의 고래들처럼
양쪽에 무기를 파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예멘은 현재 정부군이 약화된 틈을 타
알카에다와 이슬람 국가(IS) 등 무장단체들도
주요 도시 장악에 나서면서
내전은 복잡하게 흐르고 있다.
사우디와 예멘의 전쟁은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전쟁이다.
여기서 위급한 것은 사우디이다.
이란은 예멘 반군을 앞세워
대리로 싸우게 하지만,
사우디는 직접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것도 바로 옆 나라와.
사우디에게는
미국하고 틀어진 상황에 믿을 곳이 없다.
그것이 사우디의 모함마드 빈 살만이
한국에 올 수밖에 없는 속내 중 하나이다.
세계 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예멘에선 2015년 3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9245명이 사망했고 5만 2807명이 부상을 당했다.
병원을 거친 숫자가 그렇다.
사우디군의 폭격으로
학교버스에 타고 있던 어린이 40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내전 발발 이후 예멘을 떠난 이들은
3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도 예멘 난민을 받아들여 500명 넘게
제주도에 살고 있다.
박애 정신으로 난민을 받아들인 것은 문제가 아니다.
이슬람이라는 번식력 지독한 종교를 걱정들 한다.
예멘에만 있는 특수 문화 중 하나가
'카트' 씹기이다.
카트는 아라비아와 아프리카에 나는
마약류 식물로, 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카트는 7백 년 전에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약용으로 사용되다가
불과 30년 전부터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된다.
카트에는 각성효과를 일으키는
카틴과 카티논이라는 성분이 있다.
이 성분이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해서
혈압과 맥박수가 높아지고
정서적으로 흥분시키는 효과가 있다.
카트에는 마약과 같은 중독성은 없다.
그러나 식욕 부진이나 무력감 같은
부작용이 있다 한다.
예멘 성인 남자의 80%가
모여서 카트를 씹기를 즐긴다.
정치 문제든 사업이든 일단 카트를 시작하면서
대화를 풀어나간다.
카트를 씹으면 활력이 나고
자꾸 말을 하고 싶어지고
모든 일에 잘 집중할 수 있고
그래서 일도 잘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쓰고 떫지만
시간이 지나면 단맛을 느낀다고 한다.
커피 묘목이 몇몇 유럽인들에 의해
다른 대륙에 심어지면서
융성하던 커피 재배는 카트 재배로 바뀐다.
이제는 환금 작물을 심는 농경지의 52%가
카트 재배지역으로 변했다.
재배와 판매가 비교적 쉬울 뿐만 아니라
소득이 많기 때문이다.
향정신성 식물 ‘카트’를 씹고 있는 아랍인.
아랍 남성들이 입는
발목까지 오는 긴 옷을 '토브'라 하고
배에 차는 단도를 '잔비야'라 하며
머리에 두르는 천을 '케피아'라 한다.
예멘 남성들은 흰 전통 의상인 토브를 입고
겉에 보편적으로 영국식 슈트를 걸쳐 입는데,
꽤 세련되게 잘 어울린다.
반군이나 무장 저항 단체들의 괴한들은
테러를 하거나 인질극을 벌일 때,
얼굴을 케피아로 둘둘 말아 가린다.
얼굴이 노출되면 나중에 그들의 가족이
복수를 당할 것을 염려해서 이다.
이 경우는 조건이 맞으면
풀어 줄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있다.
그러나
얼굴을 케피아로 가리지 않은 집단이
더 위험하다.
어차피 인질을 죽일 거니까
노출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