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중동의 범위
중동은 크게
페르시아, 아랍, 마그레브(북아프리카)로 나뉜다.
페르시아와 아랍 사이에 페르시아만이 있다.
걸프전 이후에는 걸프만이라 주로 불린다.
걸프만의 소국들은 위에서부터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이다.
사우디는 이 걸프만 4 소국들과 오만을 포함시켜
이란에 대항해서
GCC(걸프 협력 회의 Gulf Cooperation Council)를
만든다.
바레인은 카타르를 잘 따른다.
이란과 근접해 있는 쿠웨이트와 오만은
이란과의 대항하기를 주저한다.
사우디에게 신뢰하는 나라는 아랍에미리트밖에 없다.
그래서 예맨전을 아랍에미리트와 치르고 있다.
GCC(걸프 협력 회의) 국가들
혼란한 중동에
시아파와 수니파의 틈바구니에
존재하려는 발버둥인지는 모르겠으나
알고 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있는 나라가 있다.
카타르이다.
카타르는 입헌군주국이다.
국토의 크기는 한국의 경기도 정도의 사이즈이다.
수도는 '도하'이다.
인구는 300만 정도이나, 자국민은 33만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화이트 컬러 외국인과
블루 컬러 외국 노동자들이다.
카타르에 가도 정작 순수 카타르인 보기는
힘들 거라는 얘기가 있다.
현대판 노예가 존재하는 곳이다.
서아시아,
사우디 쪽에서 북쪽 페르시아만으로 튀어나온
반도 형태의 땅이 있다.
이미 기원전부터 사막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소수의 무역상이나 유목민들을 제외하면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다.
한때 페르시아 만을 공략하고
일부 지역을 지배했던 포르투갈조차도
공격하지 않았을 정도로 황량한 지역이다.
바닷물이 얕고 따뜻하니 진주 채취업이나
무역업으로 근근이 먹고살았다.
1878년 카타르라는 나라가 세워지고
주 수익원이던 진주조개업도
1920대에 일본이 양식 진주 개발에 성공하면서
타격을 받는다.
사우디의 사우드 가문의 일파가 분가를 하게 되며
바레인과 카타르로 이주한다.
1940년대 석유가 발견되고
1971년도에 영국의 재정난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당하게 된다.
독립국 카타르의 왕인
'칼리파 빈 하마드 알 사니'는
집권 기간 천연가스를 발굴해
카타르의 근대화를 이끈다.
밖으로는 인접국인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와
걸프협력회의(GCC)를 결성한다.
1990년 걸프전쟁 당시엔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에
자국의 군사기지를 제공했고
전후에도 미국과 안보협약을 맺어
미군 중앙사령부 본부를 자국에 둔다.
그러나
1995년 그가 스위스로 휴가를 떠난 사이
아들 '하마드 빈 칼리파 알 사니'가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다.
아버지는 2004년까지 귀국하지 못한 채
해외에서 생활하다 별세한다.
아버지 국왕, 칼리파 빈 하마드 알사니
아들 국왕,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쿠데타에 성공한 아들 국왕은
러시아와 이란 다음으로 세계 세 번째 매장량을 가진
천연가스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로 한다.
천연가스를 액체화시킨 것이 LNG이다.
다른 나라에 앞서서 LNG 설비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한다.
천연가스 액화 시설들을 도입하고 플랜트를 갖춘다.
천연가스를 비싸게 팔 수 있는 극동 지역
한국과 일본과 중국을 공략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카타르의 수출국 1,2위가 한국과 일본이 된다.
한국은 전체 수입량의 27%를 카타르로부터 들여온다.
한국은 카타르와 천연가스 수입 장기 계약을 체결한다.
고로 한국이 카타르를 먹여 살린다는 결론이다.
카타르는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성장을 하기 시작한다.
옆 나라 아랍에미리트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아랍에미리트를 컨닝하며 경쟁 상태에 들어간다.
아랍에미리트에는 에미레이트(Emirates) 항공이
그리고 카타르에는 카타르 항공이 생긴다.
물론 항공 관련 직원들 모두 외국인들이다.
물론, 이미 귀족이 된 아랍인들은 볼 수 조차 없다.
걸프 전 이후에, 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사우디가 영국 BBC와 합작해서 방송국을 세운다.
아랍의 BBC를 표방하는 알 자지라 방송국이다.
알 자지라 방송국은
아랍어 방송을 모두 장악하고 있었다.
1996년에 카타르의 아들 국왕
'하마드 빈 칼리파 알사니'는 알 자지라를
당시 돈 무려 1억 5천만 달러를 들여
BBC 쪽 최고 장비와 인력들과 함께 몽땅 인수한다.
그리고
"요구 사항 없을 터이니, 진실만을 보도하라."고 한다.
(단, 카타르 왕실 기사는 배제해 달라.)
중동 왕실의 비리 정보도 갖게 되어
카타르는 '알 자지라'로
중동에서 소프트 파워라는 또 다른 힘을 갖추게 된다.
아무튼 그때 알 자지라 방송국을 가져온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이
무명의 작은 지역 방송국이었던
최초의 뉴스 전문 방송인 미국 CNN이
걸프전으로 일약 글로벌 방송국이 되어버렸던 것처럼,
1차 걸프전 직후 설립 된 알 자지라 역시
방송국을 설립하자마자
미국의 아프간 전쟁이 시작되어 버리고
그 소식을 가장 가까운 데에서 전하게 되며,
정말 순식간에 글로벌 뉴스 메이커로
성장하게 된 케이스이다.
'알 자지라'가 세계에 기여한 것은
서구의 시각이 아닌 중동의 시각으로
전 세계에 영어로 송출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뉴스의 품질도 상당히 좋다.
그런데, 커다란 방송 사고가 터진다.
카타르는 수니파이고 이란은 시아파이다.
종파가 틀리긴 하지만,
좁은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이란을 마주 보고 있는 소국 카타르 입장에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독 안에 쥐가 된다. 무섭다.
한편, 사우디는
시아파 이란의 혁명 수비대 대외 활동으로 인해
시아파 벨트로 나라가 위아래로 포위가 되어가서
신경이 날카롭다.
이란이 평화적 핵개발을 하는 것에 대해
카타르는 자국의 자위를 위한 일이 아니냐라고
이란을 두둔하는 우호적인 발언을 몇 번 한다.
이에 벼르고 있던 큰 집 격인 사우디가
2917년을 기점으로
사우디에서 카타르로 연결되는 송유관까지
끊어버리면서
GCC라고 하는 걸프만 국가들을 동원해서
카타르와 하루아침에 단교를 해버린다.
카타르 항공의 영공도 막아버린다.
사우디를 통해 가는 모든 물자의 수송로도 막아버린다.
카타르는 발끈한다.
카타르에게 이란과 터키가 민항기와 수송기로
물자를 조달해 준다.
알자지라는 그 장면을 방송한다.
사우디는 이에 열받아 카타르와의 국경에
운하를 파버리겠다고 한다.
60km만 파내면 카타르는 섬이 되어버린다.
특수 목적 봉쇄 운하?
쿠웨이트가 나서서 중재를 한다.
사우디는 조건을 내세운다.
신경 쓰이는 알자지라 문 닫아라.
그러던 중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자신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지에
비판적으로 보도를 하던 사우디계 카슈끄지 기자를
청부 살해한 아주 유명한 사건이 발생하자,
카타르는 이걸 기회로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무함마드 빈 살만을 매일 적나라하게
공격하기 시작했고 상황이 극도로 심각해진다.
카타르 입장에선 이란도 무섭지만
덩치 큰 큰 집인 사우디도 겁난다.
덩치 큰 시아파 이란과 수니파 사우디 사이에
끼여 있는 카타르는 제3의 국제적인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큰 포석을 두기로 한다.
1999년부터 여성 투표권도 준다.
2005년에 최초의 성문 헌법도 만든다.
가톨릭 성당도 짓도록 허락을 해준다.
영주권자 제도도 도입한다.
2006년 아시안 게임과
2022년 월드컵의 개최
2030년 아시안 게임의 개최 예정
2022 월드컵을 위해 307조 원을 투입했다 한다.
국왕의 위신을 높일 수 있고
세계적인 포지션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경기장 짓는 등 보통 몇조면 치를 월드컵을
저렇게 많은 자금을 투입했다.
내막을 보면,
월드컵 예산의 대부분은
월드컵을 빙자해 인프라에 쓰여졌다.
이참에 나라의 기간산업을 확충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카타르 측 입장에서 보건대.
대 내외적으로 성공한 월드컵 유치라 할 수 있겠다.
국제 대회를 열면서 겸사겸사 인프라도 구축하고
이 인프라가 조성된 첨단 도시를 홍보하고
그 과정에서 국제적인 비즈니스 도시로 도약하고
가스 말고도 먹거리가 많은 나라로 성장하겠다.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하마드 왕과 혜안이 있는 둘째 왕비의 뜻에 따라
그래서 여의도의 4배에 해당하는
에듀케이션 시티를 만든다.
그리고 세계 유명 8개 대학을 유치한다.
어쨌건 카타르는 '지식 기반 경제'를 추구한다.
카타르의 정치 노선은
개방 정책으로 국제 세력도 필요하지만,
어차피 입헌군주제로 가는 거,
미래의 정당들 세력 싸움에 누가 기득권을 가질지 모른다.
왕가에선 왕권만 유지되면 된다는 생각하는 듯싶다.
운동권이라 할 수 있는 이슬람 형제단 출신
테러리스트 단체도 망명을 받아주고 지원해 준다.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반군 집단인
하마스와 헤즈볼라에게도 지원을 해준다.
터키가 러시아산 미사일 사는 문제로
미국의 금융 제재에 걸려들어 어려울 때,
카타르가 구원 투수로 나서서
한 방에 2백억 불 지원을 쿨하게 해 준다.
터키는 그 보답으로 카타르 정부를 보호하기 위해
터키군 200명을 카타르에게 보낸다.
카타르는 살아남기 위해
별짓을 다하기로 작정한 듯싶다.
원리주의 종교 이전에
자신의 생존이 우선이라는 것을 카타르는 보여준다.
아버지를 상대로 쿠데타를 한 아들의 심성이
이런 결괏값을 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카타르의 1인당 GDP가 대략 10만 달러를 넘어
IMF, CIA 월드 팩트북 기준으로
세계 1-3위권을 넘나 든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같은
다른 중동 쪽 석유 부국들과 비교해 봐도
매우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1970년대에 북해에서 유전이 터져서
손꼽히는 석유 수출국으로 올라선 노르웨이
그리고 금융으로 잘 사는 룩셈부르크와 비교해도
세금이 없으니 훨씬 잘 산다고 봐야 하겠다.
카타르인은 대학만 나오면,
나라에서 집을 한 채 무료로 빌려주고
또 그 집에서 10년을 살면
집을 빌린 사람이 그 집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전기와 수도 그리고 의료비에다
교육비까지 모두 무료이며 소득세도 없다.
유학을 가고자 하면 생활비와 학비까지 대준다.
그 부의 원천은 천연가스이다.
카타르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보수적인 성향이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판박이일 정도로
극단적인 와하비즘과 일부 왕족에게만 부가 집중되고
서민은 빈곤층인 상황이었으나
1995년에 하마드 빈 할리파 알 사니가 집권하면서
정치적으로 온건해지고,
왕족들의 개인 소유였던 국부(원유, 천연가스)를
국유화한 뒤
이를 바탕으로 국민들에 대한 복지 정책을 펼쳐
지금에 이르렀다.
중동 아랍 왕국답지 않게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를 주입하려 노력하여
현재는 전제왕정이 아닌 입헌군주제이며,
기초의원을 투표로 선출하여 의회를 운영한다.
하마드 빈 할리파 알 사니는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서
2013년 넷째 아들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에게
전격 왕위를 이양했다.
국왕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가 매우 높다.
현 국왕,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