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자연림의 어두운 계류를 왼쪽에 두고
약간 오르는가 싶더니
가파른 언덕이 보이고
돌흙담장이 보인다.
올라가는 길도 직선이 아니라
언덕에 순응해 에스자형으로 굽어져 있다.
힘들이지 않고 올라서니 별천지가 펼쳐진다.
별서의 샛문이 있는 남쪽이다.
별서 주변으로 큰 나무들이 무성하고
담 너머 별서의 안뜰이 돋보인다.
한참을 밖에서 담장 너머 들여다보며
들어가질 못했다.
왜 들어서기를 주저하고 멈짓했을까?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본 것이 아니라 상상했던 장면을
현실에서 마주친 것이다.
상상은 먼 과거로부터 이니 꽤나 오래되었다.
어릴 적 라디오로 듣던
'전설의 고향'에서부터 이다.
전성의 고향 프로에선
나그네가 산길에서 길을 헤매다
외딴집 한 채가 늘 나타나곤 했다.
그때 머리로 그려 보았던 딱! 그 장면!
그만큼 을씨년스러운 장면이건만,
귀신의 이승에 미련이 있어
떠나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공간이 나무랄 데 없이
농후하고 만족감을 줬다.
어느 구도로 셔터를 눌러도
다 앵글에 구도가 나온다.
담을 따라 기웃거리며
마음껏 '수평 촬영'을 했다.
샛문 밖으로 나지막한 언덕이 있는데
별서 원림의 안산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 언덕에 오르면서
별서의 내부가
각도 따라 점점 더 들여다보인다.
그 재미 또한 만끽할 일이다.
이것이 '수직 촬영'의 맛이다.
언덕 위에는 정선대(停仙臺)라는
정자가 멀뚱 거리고 서 있다.
정자는 보통 경치 빼어난 곳에
짓는 것이 예의이다.
그 정자에 오르니
과연 예의 있는 정자였다는 탄성이 절로 난다.
반듯한 별서의 내부가 통째로 보이고
멀리는 월출산의 옥판봉과
다른 봉우리들이 일부 보인다.
과연 신선도 멈추게 한다는
정자의 이름값을 하듯 경관이 이름답다.
남쪽 샛문과 언덕 사이의 공간,
큰 나무들 속에 언덕조차 그늘 속인 그곳.
까다로운 나의 미의식은 할 말을 잃는다.
표현력 부족 현상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큰 나무 그늘을 좋아하노라고
그냥 치부하고 넘어가자.
굳이 격식을 갖춰 얘기해야 한다면,
만족하노라, 흡족하노라,
그 그늘에 젖어들었노라. 그 정도로 해두자.
한참을 무아지경 속에 서있다가
정선대에 걸터앉아 버렸다.
별서 담장 바깥 공간 그늘 안은 별천지요,
볕 들은 별서 안 풍광은
화려함 그 자체로 펼쳐진다.
밤은 반대일 거 같다
달빛이 사그라지고 부엉이 울면
처녀 귀신이 오빠 할 것만 같다.
풍광과 경치에 도취된 취기가
한 삼십 년은 갈 것 같은 그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