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문화는 사람이 살아가며
지역 환경에 맞게 형성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습하고 더운 여름에
면역력을 잃지 않으려고
'복(伏) 날'을 세 번 정해
보양식을 하는 문화가 있다.
어려서는 복날이
개만 잡아먹는 날인 줄 알았다.
젊어서는 닭도 먹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제는 보양되는 것은 다 먹어둬야 하는구나
정도는 되었다.
한 갑자가 돌아서야 알게 된 문화,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어려서 동네 아저씨들이
계곡에서 개를 잡아
창자를 씻어서 입에 넣어 주시는데
생고기라 안 먹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계곡이 좋다.
그늘이 있지, 아늑하지,
바위도 있고 물도 있지,
발을 담글 수도 있고 몸도 담글 수도 있고
심지어 목도 축일 수 있으며
예전에는 밥도 해 먹었다.
넓적한 돌판을 물에서 건져내서
말려 달구면
그대로 자연석 프라이팬이었다.
가져온 고기와 소금만 있으면
타지 않은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장비 없이도
모든 것이 가능했었다.
물가에서 먹는 것은 뭐든 맛이 달랐다.
그중에서도 닭볶음탕은
어찌 그리 맛있는 것인지!
요새는 등산 문화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계곡에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먹은 것을 빼려고들 산에 간다.
그리고는 내려와서는 밤새 진탕 먹어댄다.
정신적인 방황을 다잡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놀이 문화도 많이 변천했다.
자연스럽게 모여 민요로 불러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중요한 내용들이
알맹이는 없어지고 대중가요화 되어
몇몇 학자들이 책상에서
고심하며 정리해야 겨우 보존되게 되었다.
스트레스 푸는 것이 문화 보존 보다
앞서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어쩌겠는가 우선 스트레스는 풀어
살고는 봐야지.
이러하듯,
평소에 노는 습관이 들지 않으면
에둘러대는 부작용이 많이 생긴다.
잘 살기 위해 일한다고 한다.
그럼 일하는 순간은
잘 살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게 무슨 난센스인가.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편안하고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고
그래서 일은 돈을 위해 하는 거고...
돈이 없으면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이다.
그런 사람들은
한 번도 제대로 쉬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한테 돈을 많이 쥐여주고
쉴 만큼 쉬어 보라 해도
쉬는 것을 지겨워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문명이 발달할수록
신경정신과가 필요하게 된다.
일하는 것과 쉬는 것을 구분하면 답이 없다.
이분법적 사고는 진리하고는 거리가 멀다.
음이 끝나고 양이 오는 게 아니라
음양이 같이 공존하는데
음만 보거나 양만 바라면 전체를 볼 수 없다.
일의 뒤편에 쉼이 공존하고
쉬는 것도 일의 연장이다.
음양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전체를 볼 수 있다.
그러려면 단지 의식만 살아 있으면 된다.
아! 내가 지금 일을 하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쉬고 있구나 하고
그저 나를 지켜보듯 보며 알고만 있으면 된다.
아는 순간 피로감도 덜하고 조절 또한 가능하다.
일하거나 쉬거나 걱정 없이 편안하다.
이 개념은 불교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우리가 갖추고 있던 우리 문화의 단편이다.
의식의 기본인 '현재 의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방법이다.
유교 문화의 홍수 속에서도
면면히 쥐고 살아남았다.
용어로는 볼 관(觀) 자를 써서
관(觀)이라 정리되었고
우리말로 하자면
'지켜보기'나 '바라보기' 정도 되겠다.
이제는 문화가 변질되어
누가 우리보고 지켜보겠다면 겁부터 난다.
지켜보다가 기회 되면 해를 끼치겠다는
협박의 뜻이 되어 버렸으니까.
관(觀)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타당하겠다.
나는 지금 종교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미학과 연관된 종교 이전의
옛 문화 속의 관(觀)을 얘기함이다.
자기가 가진 '현재 의식'을 쓰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것이 현대인들의 현실이다.
안에 있는 자기 것을 사용을 안 하고
퇴화시키면 자신만 손해다.
그것도 그의 자유가 아니겠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서도...
계곡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멋들어진 일은
맑은 물을 바라보는 관을 하는 것이다.
느껴지는 맑고 개운한 맛이 일품(一品)이다.
물은 흐르는 일을 하고 있음으로써
물을 맑게 정화시키고 있다.
앞에 물에 밀려 멈칫 쉬는 순간도 있다.
또 이어서 흐른다.
본인의 현재의식은 그걸 바라본다.
물이 어떻게 되든
본인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그저 맑음을 느끼면 된다.
그게 다이다.
월출산 금릉 경포대 계곡
물길의 흐름 중간중간
이런 작은 물웅덩이들도 곳곳에 있다.
아무래도
옛사람들이 파놓은 것 같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파놓아
요즘 사람들이 눈치 못 챌 만도 하다.
명상이란 집중과 관조로 되어 있다.
관조가 집중 다음 단계이다.
관조는 눈을 뜨고 할 경우는
앞에 있는 대상을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이다.
그냥 보는 것이다.
그것이 명상 상태로 이끈다.
대상이 산이 될 수도 있고
둥근 형태의 무엇이 될 수도 있고
물이 될 수도 있다.
형체가 없는 하늘이 될 수도 있다.
계곡에서는
둥근 형태에 맑은 물이 흐르는 웅덩이라면
금상첨화가 되겠다.
물을 관조하는 것을 '관수'라 한다.
월출산 금릉 경포대 계곡
고사관수도 (高士觀水圖), 강희안
강희안(姜希顔)은 조선 초기의 묘한 인물이다.
세종 때의 안견(安堅), 최경(崔涇) 등과 더불어
시서화의 3절(三絶)이라 불렸다.
먼저 그의 글씨는 왕에게 채택되어
나라의 활자의 본으로 사용되었다.
요즘으로 치면 윤고딕과 같은
폰트로 쓰여졌다 보면 된다.
지금 서예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체와 서예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의 서체는 대륙에서 그전에 가장 유명했던
어느 서체보다 뛰어나다.
세종이 옥새의 글씨를 맡길 정도로
당시에 그를 따를 만한 사람이 없었다 한다.
말년에는 원림 조경에 심취해서
'양화소록(養花小錄)'이란 책을 남긴다.
이 책은 조선 세조 때 강희안(姜希顔)이 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초의 원예서이다.
최근래에 다시 번역되어
시중에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관(觀)에 관한 그림은
동양에 무수히도 많고 그 뿌리 또한 깊다.
그중에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가장 사랑받는 그림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高士觀水圖)이다.
젊어서부터 시종일관 보아 오건대
변함없이 좋은 그림이다.
'고사관수(高士觀水)'는
"고결한 선비가 물을 바라본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고사관수도에서는
물이 밑에만 조금 있고
인물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이라는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는 자의 의식 상태가 주제인 것이다.
후대에 종교가 된 것들의 이전 것이면서
여전히 그와 유사한 수련을 하는 듯한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것의 겸손함이다.
요즘 식으로 거창하게 얘기하려 하면은
물을 보고 수련하는 도사의 모습에서
청정세계에 든 정신세계를 어쩌고....
그거 아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다.
거기에 뭐 하나라도
설명이 붙는다거나 할 필요도 없고
그러면 오히려 그 행위에 손상이 되는 것.
그것이 그냥 일상의 한 부분이나 다름없는 것.
어렵게 받아들이지 말자.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그냥'이란 말, '그대로' 내지는
'거시기'라고 쓰는 말 같은 느낌이면 되겠다.
월출산 경포대 계곡 웅덩이의 물을
바라본 체험은 실로 맑은 느낌이었다.
살아오며
어디서 그러고 있을 겨를이 있었겠는가.
바라보라 해도 못 하기가 더 쉽다.
낚시꾼 친구와
이런 비슷한 대화를 나눴던 생각이 떠오른다.
낚시에도 급이 있단다.
방생은 높은 단계고
일자 바늘이 그다음,
민고리 바늘 순이다.
하물며 그냥 낚싯대도 들이지 않고
고기도 안 사는
웅덩이 물만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고사관수도 안에.
미학의 일환으로
오랜 기간 동안 고대 문화 연구를 해왔다.
바위 답사를 통해 고대 근원 상징의 핵심은
알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갖게 되었다.
평면적으로는 원이고
입체적으로는 알의 형태이다.
태고대로 올라가면서
알은 진리를 표현한 것이며
숭상했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바위에는 양각의 알뿐만 아니라
음각의 알의 형태도
산 정상의 바위에서 쉽게 보여진다.
양각으로 된 알의 대표적으로 알려진 사례는
설악산의 '흔들바위'와
금강산의 '귀면암'이다.
음각의 알의 형태는
정상 바닥에 많이 보이는 웅덩이이다.
비가 와서 물이 고이면 위에 있는 물이 되는데
우물이란 말이
여기서 근거해서 생기지 않았나 생각된다.
월출산 경포대 지역으로 올라가면
아홉 웅덩이가 파진 봉우리가 있는데
물이 고이면 아홉 우물이 되어
'구정봉(九井峯)'이라 불리운다.
어떤 연구가들은 이런 웅덩이의 이름을
'알터'라고 명명하며 책까지 낸 사람도 있다.
'알자리'라면 모르지만
알터는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알자리가
계곡에서는 물웅덩이로 재현된다.
바위에서의 알은 크기가 다양한데
계곡에서의 물웅덩이 크기도
큰 차이를 보인다.
큰 물웅덩이는
계곡의 아름다움의 백미이기에
탕(湯)이나 담(潭)으로 불렀고
물줄기는
최고의 찬사로 구곡(九曲)이라고 표현했다.
이 알자리나 물웅덩이는
창조의 근원인 진리의 상징이기도 하면서
실용적으로 쓰임새가 있다.
바위의 경우는
차후에 바위 문화를 소개할 때
얘기하기로 하겠지만,
물웅덩이 경우에는
더운 여름에 피서하면서도
진리의 상징인 물웅덩이에
몸을 담글 수 있게
조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진리에 이렇게 목마른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겠지만
옛 태고대 문화에서는
그것이 콘셉트이자 모든 것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자료가 많이 있다.
참으로 일반인에게 얘기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얘기이기에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이해 가능한 범위의 것들은
조금이라도 밝혀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다.
무시되거나 버려지는 한이 있더라도
핵심을 빠트리고
주위를 빙빙 맴도는 것은
의문만 증폭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문이란 어느 경우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 사실 가지고 추론을 하고
서로의 견해를 나누면 되는 것이다.
과거의 그 시대에
살아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누구도 진실이 이렇다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은
자명(自明)한 사실 아니겠는가!
설악산 흔들바위
금강산의 귀면암
월출산 구정봉 알자리
설악산 12 선녀탕
금강산 상팔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