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Apr 20. 2023

강진
사의재 2, 3, 4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강진

사의재 2, 3, 4



뜻밖의 인물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라는 것을

소신으로 사시는 양

어찌나 생글생글 과장될 정도로

실감 나게 웃으며 다가오는 그 노인네.

다짜고짜 말도 안 되는 얘기를 건넨다.

"진지하게 촬영하시네요."

백운동 별서 정원서 주인장이

내게 한 똑같은 첫마디를 다시 듣는다.

그들이 같이 대사를 맞췄을 턱이 없다.

하늘이 보낸 양반들의 인사법이려니

하고 넘어가련다.

난 속으로 답했다.

"네. 그 진지한 촬영을 하는 데 방해를 하셨네요."


사의재 가까이 도달해서

사진 한 장도 찍지 못한 상황에서

나타나신 방해꾼?

우린 늘 긍정적이다.

"하늘에서 보낸 양반이구나."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어떻게 엮인 데이터의 결과인지는 모르겠고,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냥 내게 정해진 일이려니 하고 받아들여야지.


내가 답이 없자

다시 확실한 예정된 듯한 질문을 날린다.

"숙소 못 찾으셨지요.

저의 집이 바로 저기인데, 같이 가시지요.

숙박비는 안 받겠으니

걱정 마시고 가셔서 편히 묵고 가세요."

엥?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보통 때는 느려터졌어도

이런 상황에선 판단력도 빠르기도 하지.

이럴 땐 몸도 상당히 민첩한 나다.

그분의 안내에 몸을 맡겼다.

그 하늘이 보낸 할아버지의 댁은

사의재 사거리의 길가 모퉁이 집이었다.

집을 보여주시고 내가 기거할 방을 보여주신다.

단 식사는 책임 못 지니

알아서 해결하라 그러신다.

저녁에 식사하고

늦게나 들어올 때 전화하기로 했다.




하늘서 떨어진 숙소를 가기 전에

답례로 베이커리에 들러 파운드 케이크를 샀다.

그 댁에 들어가자

통성명을 제대로 하자며 술상을 봐오신다.

독한 술과 안주로 곶감을 내오시며 미안해하신다.

우리의 대화는 공통점을 찾아들어갔고

어느 부분에서는 홀로 흥분을 하시며

두 주먹을 불끈 쥐시고

부르르 떨며 뭔가 의지를 보이시는 것이

모노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의 원초적 솔직함 그런 것이랄까?

연세는 있으시지만

열정과 건강은 젊은이보다 좋으신 듯했다.

말동무가 필요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하늘 풍성한 수국


밖에 도로에서 들어오면서 

제일 시야에 들어오는 사의재의 모퉁이는

차 몇 대 못 대는 주차장이 잘라먹고 있다.

관치주의 행정 피폐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차장은 큰 길가 쪽 한쪽에 만들고

사의재 주변은 걸어 들어오게 해야 

했는데 말이다. 

생각이란 것을 평소에 해 본 적이 없는 듯한

하류 설계자의 솜씨가 엿보여 씁쓸하다.


군청 관광과나 설계과가 

내 수명에 책임을 질 것도 아니니

더 이상 궁리한 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나마 볼 만한 조경이 좀 돼 있지 싶은

기존 사의재 경계 주변에서 

머리나 식히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지 싶다.

가운데 푹 꺼진 이상한 둥근 연못을 제외하면

경계 조경은 부분적으로 나름 

아름다운 꽃으로 원예 개념이 들어가 있었다.




사의재에는 여기저기 들어가는 통로가

네 군데가 있어 어수선한 감이 있다.

마을 공동 우물가와 가장 큰 나무의 사이로

사의재 측면 쪽에 초가 정자가 있고

그 경계를 따라 있는 꽃길은

나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한 아름의 수국이 바람에

하늘하늘 가련한 몸짓을 하는 것이

꽃을 왜 사람들이 

여성에 비유하는지를 알 것만 같다.


진행 방향에 담장을 대신하는

대나무가 있는 것 또한 아름다운 조화로다.

그쪽에는 우아하고 풍성한 수국 대신

기다란 접시꽃 대가 바람결에 흔들거리며

접시꽃이 인사하듯 끄떡인다.

어서 오시라는 뜻으로 해석하니

반김을 받는 맛이 또한 그윽하다.

아리따운 소녀들을 귀빈 영접에

꽃을 들고 내보내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도 같다.


꽃들 사이에 백운동 별서 내원에서 본 

석류꽃도 보인다.

반가웠지만 수국과 같이 있으니 묻혀버려

백운동 별서에서의 그 화려 찬란했던 모습이

온데간데없는 듯했다.

같은 꽃이라도

주변 환경과 원예사의 솜씨에

좌우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풍요로운 순간만큼은

사의재도 안중에 없게 된다.

한참을 뜸을 들이며

꽃의 환영을 만끽하고 볼 일이다.














































아스라한 잎들의 속삭임 

그리고 오라


사진은 이미지를 통해 

상상이 곁들여져 환상성을 주지만

바람에 따라 설레는 미묘한 움직임

그리고 그 움직임으로 인한 

잎들의 속삭임이나

그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오라에는 속수무책이다.

이럴 때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이로움이다.






















작가의 이전글 강진 영랑 생가 5, 6, 7, 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