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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May 31. 2023

강진  
고려청자박물관 1, 2


       







푸른 기 서린 

잿빛 청자색의 비밀 


강진의 환경은 

위로 월출산이 있고

앞으로는 바다가 길쭉하게 내륙으로 들어온 

강진만이 있다.

그 특이하고 기다란 강진만을 

호수나 연못 같이 보고 있는 곳이다.

그러한 환경은

궁전 건물 앞에 분수대를 가진 연못이 있는

페르시아 정원을 생각게 한다.

그러나 강진만은 바다다.


어떤 사람들은 자궁 터라고도 한다. 

그만큼 오지에 해당된다.

반면에 파도가 거의 없이 호수처럼 잔잔하여 

배무이 하기도 좋은 곳이었을 테고

옛날에는 배를 대고 해상 거래하기에는 

천혜의 지형이었겠다.


고려시대, 강진의 최고 납품 품목은 고려자기였다.

실제로 현재 남아 있는 고려청자의 80%가

강진에서 제작된 것들이라 한다.

그러기에 그곳에 고려청자 박물관이 유일하게 있다.

지방자치제 실행의 혜택은 

특화된 것을 내세우는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고려청자 박물관의 위치는 

참으로 볕 기운 따뜻한 골짜기에 있다. 

물론 손님은 내가 유일하니 감상하기에는 제격이다.

아무리 손님이 없어도 강진군의 자부심이기에

없어질 염려도 없고 운영비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첫 전시실의 첫 작품이 내게 충격을 주었다.

자그마하고 앙증스러운 것이 

날렵하고 하늘하늘하기까지 하다.

표면의 색은 청색이 아니다. 

옅은 잿빛 색에 청색이 조금 들어간 그런 색조이다.

12세기 것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12세기는 청자가 

쑥색으로 돌변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그렇다면 이 자기는 그 쑥색 청자 이전 것이다.


모든 창작품은 탄생의 원리로 접근하면

음양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아야 

분별과 창작이 가능하다.

음악은 박자와 음,

천은 날실과 씨실,

음식은 재료와 양념 혹은 소스,

미술품은 형태와 색채인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음양의 한 가지를 또 들여다보면 

또 음양으로 나눠 볼 수 있겠다.

형태와 색채로 이루어진 도자기도 

색채만을 들여다보노라면

재료인 흙과 유약에 따라 

색상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고려자기의 색이 

12세기에 달라졌다는 것은

그때 고려청자 색을 내는 흙을 찾았고

그에 적합한 유약이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도자기는

나라의 핵심 상품이었고 첨단 기술력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대성을 갖는 

미감의 집약체였다.

그 미감은 그 당시만 가능한 미감이다.

왜 안 되는 고려청자 재현을 

지금에 하려는지 알 수가 없다.

그 노력으로 보존이나 잘하고

이 시대의 미감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 생각한다.  

재현의 목적이 

미술관 관람객 기념품을 위한 것이라면 

할 말 없다.





하늘빛 두른 갯벌 색 


도대체 실물은 

분명 푸른색이 좀 들어간 잿빛이었는데

사진은 왜 짙은 쑥색으로 나오는 것일까?

실물 색이 미묘할 때 

사진은 그 색을 그대로 잡아내 지를 못한다.

그런 경험이 크게 몇 차례 있었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충격적인 컬러의 반 고흐의 초상화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가 그러했다.


프랑스 연구진들은 모나리자의 경우를 놓고

가장 근접한 색을 구현하려다 안 되니까,

그것을 스펙트럼 조사에 의해서 밝혔는데

카메라의 스펙트럼의 수가 

원화의 스펙트럼 색의 수에

미치지 못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하여간 카메라로 찍어 인쇄했을 때 

매번 비슷한 색만 볼뿐이다.

그래서 인쇄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원화 전시가 계속될 것이라 본다.


색채에 있어서,

명화와 일반 그림의 구분은 

프린트했을 때

원화보다 잘 나오냐 안 나오느냐로 

가리면 된다고 본다.

명화는 인쇄로 표현해 낼 수 없다.

그러나 명화 아닌 그림은 

원화보다 인쇄된 것이 훨씬 멋지게 나온다.

사진보다 섬세할 수 없는 감각의 화가는

좋은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는 뜻이다. 

작품 인지도에 있어서

색이 차지하는 퍼센티지는 75% 이상이다.

색의 중요성을 작가들도 

더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다른 누구도 못 내는 색과 그 조합은 

무수히 많으니 하는 말이다.




옅은 청색의 잿빛 색 고려자기에 매료되어

그것이 내게는 고려자기 분별의 기준이 되었다.

본래 매력에 끌리면 눈이 머는 법이다. 

남녀 관계에서는 

눈에 콩깍지가 끼어서 그렇다고도 하고

눈이 멀든가 씌어서 그렇다고도 한다.

그래서 울고불고도 하고 

결혼도 하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작품에서도 매력에 끌려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 맹점을 이용한 것이 옥션(경매)이다.

시중 갤러리 형성 가격의 70%에서 

경매가 시작되지만

희귀한 것이 나오면 희소성의 가치에

매력에 끌린 자들끼리 경쟁이 붙어 

값이 사정없이 치솟는다.

희귀한 매력에 끌려 한 여인을 쟁취하려고

별짓도 다해온 것이 역사에 허다하지 않은가.

매력이란 본시 그런 거다.




고려자기의 색의 변천은 

잿빛 청자에서 쑥색 청자로 밝아지고 

옥빛 나는 비취색 청자로 환해져 

청자의 극치에 이른다.

그러나 잿빛 청자가 눈에 어른거려 

다른 작품들은 그다지 눈에 안 들어왔다. 

머릿속은 온통 그 잿빛 청자는 

어떻게 구현된 것일까 하는 것으로 골똘했다.

청자 박물관에서 답을 못 구하게 되자 

청자 이전의 도기를 머릿속으로 더듬어 봤다.

도기에서라면 답이 구해질 듯싶었다.

마침내 월출산 서북쪽 구림마을에 있는 

도기 박물관을 가보기로 했다.

그곳은 

자기 이전에 도기를 굽던 가마가 있는 곳이다.




가는 길에 낮은 강진만이 역시 잔잔하게 보인다.

수면이 낮으니 일반 바다색이 아니다.

갯벌 색이 드러나는 그런 갯벌의 바다이다.

그 순간 영감이 쑥 들어온다.

저 거무스름하고 미끈미끈한 고운 개흙 색의 뻘!

그 위에 하늘색이 비쳐지면 

바로 내가 찾던 잿빛 청자의 색이다.


이곳 도공들은 허구한 날 

저 특이한 바다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겉에 하늘색을 두른 뻘색을 

익숙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 미묘한 색이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고

어떻게든 작품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푸른 기 서린 잿빛 색'이 아니라

'하늘빛 두른 갯벌 색'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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