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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Apr 06. 2024

인왕산 9   인왕산 주변 명소 4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인왕산 9




인왕산 주변 명소 4



세검정 계곡


세검정, 겸재 정선




어려서 세검정 일대에서는

과수원의 끝자락을 볼 수 있었고

의성 사람들이 와서 하는 종이 공장들이 많아

언덕에 한지와 장판지를 말리는 풍경이 허다했다.

이곳 능금과 복숭아 등 과일들은

서울과 평창동 넘어 정릉으로 내다 팔았다 한다.

종이 공장이 이곳에 형성된 것은

닥종이 만들 때,

종이의 원료인 닦나무껍질을 삶은 후에

담가두고 헹궈줄 흐르는 물이 풍부해야 하는데

그러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세검정 일대가 물이 많은 것은

비봉 쪽 계곡과 보현봉 쪽 형제봉 계곡이

합류하는 세검정 초등학교 직후의

지점이기 때문이다.

합류 후 물이 돌고 또 돌아 내려오는

위치의 장면을

이 그림은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꺾여 흘러가는 모퉁이에

있는 정자가 세검정이다.



그림에 보이는 정자 뒷산 너머에는

양지바른 언덕으로 초가집들이 빼곡히 있었다.

7살 때 작은 아버지 신혼집이

그 초가 마을 가운데 폭포를 끼고 있어서

자주 가던 곳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험하지 않은

온화한 조건을 갖춘 곳이라

마을이 형성된 것이라 본다.


작은 아버지 집은 텃밭이 딸린 초가였는데,

여름에 그 시원한 느낌과 구수한 흙내음은

평생 잊을 수가 없어

내 예술의 원천이 되고 말았다.

그 쾌적함은 어디서 왔는가 생각해 보니

벽 두께가 거의 세자 정도의 황토 벽돌 벽으로

쌓아서라는 결론이다.

초가 방바닥은

장판이 아닌 진흙 바닥에 멍석이 깔려 있었다.

커가며 다른 지방 시골 어디를 가도

그 두꺼운 황토벽을 찾아볼 수가 없어

늘 아쉬움을 갖는다.


초가집 옆 폭포를 건너가면

바로 오성 대감 별장터인 백사실 입구였다.

지형적으로 입구가

폭포를 지나가야 되는 오지인지라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청정한 곳이다.




지명 유래


젊어서 혈기에 세검정과

근처 홍지문에서 술잔을 기울여 봤지만

차 소리에 산만했었다.

그리고 기분이 상하게 되는 건,

세검정(洗劍亭) 입간판에

"... 이괄의 난 때 이곳에서 칼을 씻었다 하여

세검정(洗劍亭)이라 한다..."라고

적혀있다는 점이다.

반란 세력이 거쳐 갔다고 해서,

그전부터 있던 유서 깊은 정자의 이름을

바꾸거나 새로 짓는다?

아리송한 얘기이다.


요즘에는 좀 발전하여 인터넷 사전에서는

인조반정을 들먹인다.

반정 세력이 자하문으로

거사를 치르러 들어가기 전에

전열을 가다듬은 곳이라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얘기니

맞는 얘기이다.

그로 인해 정자의 이름도

바뀐다는 얘기는 없다.


지명의 변천사를 모르면

역사까지 끌어와

입간판이 터무니없는 추리 소설이 되는 것이다.

북한 만포시에 있는

관서팔경의 하나인 세검정(洗劒亭)은

한문도 같은 이름인데 어쩌란 말이냐.

그곳도 결의를 다지며 칼을 씻었나?


입간판 세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뭐라도 써넣으려 조사하겠지.

관계되는 역사도 검색하고

주변 동네 사람 자문도 듣는다.

동네에는 아는 척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해서 추리 소설은 쓰여지고.




지명 연구를 해보면,

이 경우들에는 새터와 검터라는 지명이

있었던 곳임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터와 검터는 보통 서로 옆 동네인 경우가 많다.

새터와 검터를 줄여 새검터,

새검터에 정자를 지으니 새검정,

새검정 간판을 쓰자니

발음이 비슷한 한문을 차용한다.

그래서 세검정.

한자의 뜻하고는 아무런 관계없이

유사 발음만으로 한자를 썼다.


새터 + 검터 = 새검터 ㅡ>세검정




우리말 속에서

참으로 참(진리)과 이치가

담겨 있는 사실을 발견할 때 놀라곤 한다.


새터의 새라는 뜻이 그러하고

새터를 한문으로 차용해 쓴 것이

단군 시대에 소도인 것이 그러하다.




적어도 단군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 땅의 이름인 우리말 지명은

지역마다 같은 이름으로

무리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

먼저 이름들로 패턴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각 지역의 풍수를 고려해

지명을 정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자료로는

한국 중앙 지도사에서 제작한

제일 상세한 지도인

1/5,000 지도에 잘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한 증거이기도 하기에

후대에 문화유산이 될 소지가 많다.




새터(소도)

새터는 지도상 가장 많은 지명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새터의 지명이 정해질 시대의 발음에

가장 근접한 한자는 蘇塗(소도)였다.


새터 > 소도



옛 시대의 발음을

인터넷으로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언어학의 발달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전에는 불가능할 거라 단정한 일이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새를 풀어쓰면 "ㅅ +  + ㅣ"이다.

'사이'라는 뜻이다.


새 > 사이



하늘을 나는 새도

날 수 있기에 하늘과 땅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생명체이긴 하다.


지명에서 새터란,

땅의 세계에서 하늘의 세계를 지향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물질세계에서 영적인 발전을 위해

수양하는 장소를 말함이다.

새터(소도)는 고대에

교육을 하는 터였던 것이다.



초기 새터의 한문 차용은

발음으로 이루어졌으나

후대에는 뜻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아진다.

대표적인 예로 신촌을 들 수 있겠다.


새터의 새를 '새 신(新)' 자의 新을 차용하고

터를 '마을 촌(村)' 자의 村를 차용해서

신촌(新村)이 된다.

그 밖에도 그런 식으로 '터 대(垈)'를

써서 신대(新垈)로 쓴 곳도 있다.

신촌이던 신대이던 모두

우리말 지명 '새터'에서 변형된 지명이다.


새터 > 신촌(新村), 신대(新垈)





그지없는 단아함을 은근하게 뿜어내는 그림


세검정자는 예전에는 담을 두르고 있고

자색으로 칠해진 점으로 미루어

나라에서 관리하고 있던 정자임을 알 수 있다.

겸재는 정자가 맘에 들었는지,

4칸 정자를 한 칸 더 늘려

있어 보이는 정자로 만들었다.

그만큼 이 그림에 애착과 정성이 들어간

그림이라는 것이

전체적인 분위기와

차분한 색감으로도 보여진다.

그지없는 단아함을 은근하게 뿜어내는 그림이다.


그림 속의 풍경은

두 명의 양반이 마부들과 어린 종과 함께

노새와 나귀를 타고

쉬엄쉬엄 개천을 건너 고개를 넘고자

언덕으로 오르고 있다.

지금의 현실 풍경과는 너무도 다른,

그때는 300년 전 얘기이다.


내게 세검정은 대학 졸업 후,

세검정자 근처에서 친구가

술 파는 카페를 해서

프랑스 가기 전,  한 일 년을

원 없이 실컷 재밌게 논 추억이 있는 곳이다.


유학 갔다 와서는

무예의 대가에게 무술 전수를 받은 곳도

세검정 근처이다.






백악산(북악산)

비둘기 바위(부아암)


백악 부아암, 겸재 정선








백악산, 겸재 정선





백악산(북악산)의 부아암(비둘기 바위)





그림에서 제자로 미루어 보아

지금의 북악산 명칭이 겸재 당시에는

백악 혹은 백악산으로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악의 정면은 산의 실루엣으로

부아암이 있는 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아암은 비둘기 형상의 모뉴먼트이다.

모뉴먼트는 보통 정상 방향을 하고 있다.

여기서 비둘기는 새이기 때문에

앞서 얘기한 새터와 연관성이 있다.


비둘기 바위는 유난히 히고

매끄럽게 가공이 되어 있다.

형태 상으로는

받침대 위에 둥근 형상이다,

이 패턴은 초고대 바위 문화의 특징이다..

둥근 것은 진리(순수 의식)를

받침대는 에너지의 통로를 상징한다.


세계적으로 바위가 있는 곳은

이러한 근원적인 컨셉에서 나온 패턴의

모뉴먼트들이 아주 많다.

하지만 모두 같은 원리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공통점을 가진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선인류들의 높은 영혼의 소유자들의

작품일 것이라 추정된다.

높은 수준의 영혼들도 각기 개성이 있기에

각 지역마다 다른 특성을 보인다.


이 백악의 비둘기 바위는

초고대 모뉴먼트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냥 구(공)의 형태가 아닌

비둘기의 형상을 가지고 있어서이다.

이런 경우는 유일한 경우이고

가치가 있디.

솟대 위에 새가 세 마리 앉아 있는 것으로

발전했다고 추정되는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부아암(비둘기 바위), 겸재 정선





겸재 정선은 백악산을 그릴 때

백악산의 심벌인 비둘기 바위를

강조해서 그려 넣었고

그 모뉴먼트만을 확대해서

따로 그리기도 했다.


그는 대상의 심볼이 뭔지를 캐취 했고

강조하려 했다.

그것이 작가의 또 다른 훌륭한

면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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