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스터디 8
환국 시대와
수메르와 환웅 배달국 시대
'장자'에 보면, 상고(시대)의 혁서 제왕을 거론한다.
그때 백성들은 편안하고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려가며 근심 걱정 없는
평화로운 생활을 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혁서 제왕은,
환국의 제2세 혁서 환인천제와 이름이 같다.
환국의 백성들은 태평성대의 삶을 누렸던 것이다.
혁서 환인천제와 이름이 같다.
환국의 백성들은 태평성대의 삶을 누렸던 것이다.
환국(기원전 7197년 ~ 기원전 3897년)
환단고기에 의하면, 환국은 역대 환인들이
기원전 7197년부터 기원전 3897년까지
3,301년간 다스렸다.
배달국(기원전 3897년 ~ 기원전 2333년)
배달국은 역대 열여덟 분의 환웅들이
기원전 3897년부터 기원전 2333년까지
1,565년간 다스렸다.
한민족사는
환국에서 시작해 배달국과 고조선을 거쳐 대한민국까지
9천 년이라고 해야 맞다.
환국은 12 연방제로
12 환국의 광대한 영역에 속해 있던 12개 나라들은
비리국, 양운국, 구다천국 구막한국,
일군국, 우루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직구다국), 사납아국,
선비이국(시위국, 통고사국),
수밀이국이다.
그 가운데 상당수의 나라 이름이
후세 지나(중국) 사서인 진서의 사이전四夷傳에
기록되어 나타난다.
지금은 우리가 중동中東이라 부르는
저 수메르인들의 역사기록이나
유물을 통해서도
환국이 실재했음을 알 수 있다.
수메르인은 스스로
‘우리가 안샨(Anshan, 천산天山)을
넘어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환국에서 건너왔다는 이야기이다.
또 실제로 수메르 역사의 숱한 기록과 유물들은
환국과의 놀라운 연관성을 보여준다.
환국에서 동으로는 배달국이
그리고 서로는 수밀이국인 수메르가
파생되어 공존했던 것이다.
이라크 우르의 복원된 지구라트
우르의 지구라트 묘역에서 발견된
황금 투구
수메르 문명은 이 시기 동안 가장 융성했다.
이후 초기 왕조 시대(약 기원전 2900년경~2350년경)와
우르 제3왕조 시대(약 기원전 2150년경~2000년경) 등으로 구분된다.
서양문명이 발원했다는 수메르 문명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지역에서 탄생했다.
이를 그리스어로 ‘메소포타미아’라 한다
지리가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보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수메르인의 문명을 계승한 것이다.
기원전 2,500 년 전 수메르는 중심지를
우르로 이전하여
해상무역 활동을 활발히 전개한다.
수메르의 전성기 때 우르에 지구라트가 지어진다.
그리고 우르와 지구라트가
19세기에 영국의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하고
20세기 초에 수많은 유물을 발굴한다.
기원전 2350년경
셈족族에 속하는 아카드인들이
북쪽에서 내려와 수메르의 수도 우르를 정복한다.
이때 역사상 최초의 디아스포라가 발생한다.
지식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정착한 곳에서
신문물을 전파한다.
성경 창세기 11장에서는
아브라함이 우르 출신으로
하나님의 명을 받아 가나안으로 이주를 한다.
그때 아카드인들의 왕이 사르곤이다.
이 아카드인들이 수메르를 정복하고
이미 앞서 있던 수메르 문명을 그대로 계승한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이후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수메르-아카드 문명이라고도 한다.
함무라비법전으로 잘 알려진 바빌로니아 문명도
수메르―아카드 문명을 계승한 것이다.
실제 함무라비 법전도 아카드어로 기록됐고
그 법전의 내용 또한
수메르 법전과 대동소이하다.
이처럼 수메르의 원래 도시국가들,
또 아카드 제국과 바빌론 제국에 의해 계승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점차 그리스로 전파되어
결국 서양문명의 원류인
그리스 문명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스 문명이
애초에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발전한 것이 아니란 사실은
수많은 역사가들이 말한다.
그리스 문자만 해도
페니키아인에게서 받아들였고
천문학, 수학도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부터 배워서 발전시켰다.
이런 까닭에 역사학에서
수메르 문명이 서양문명의 원천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환국 > 수메르
수메르 문명이 대단히 일찍 발달한 것이지만
그 또한 아주 갑작스럽게,
앞선 문명이 전혀 없이
독자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수메르인들은
우리가 안샨을 넘어왔다,
우리는 머리 뒷부분이 평평한
검은 머리의 인종이다,
스스로 자신들에 대해 기술한다.
수메르인의 점토판을 해독해
그들의 생김새, 사회제도, 풍습, 언어 등을
연구한 크레이머 박사는
“수메르인들이 동방에서 왔다”고 결론 내렸다.
한韓사상을 연구해 온 김상일 교수는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을 바탕으로
“고대 수메르인과 한민족은
불함문화라는 공통 문화권에 살다
갈라져 나갔다”고 주장한다.
‘불함문화권'이란,
중앙아시아에서 몽골에 이르기까지
산악 이름 중 상당수가 공통적으로
박(밝·白) 자를 쓰는 것에 착안해
최남선 선생이 동북아 문화권에 붙인 이름이다.
이 불함문화권이 바로 환국을 가리킨다.
학자들은 수메르인이
높은 산에서 신에게 예배하는 민족이라는 점과
그 언어가 우랄알타이어 계통이란 사실을 들어
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했다고 추정한다.
수메르인들의 언어는
한국어처럼 주어나 목적어 같은 체언體言에
조사(토씨)가 붙는 교착어膠着語이다.
지구상에서 교착어는
한국어와 한국어의 영향을 받은 일본어
그리고 알타이어뿐이다.
게다가 수메르의 경우 우리말과
어순語順까지 거의 같다.
아빠, 엄마 등 아예 단어 자체가 같은 게
100여 가지나 된다 한다.
이밖에도 동북아의 60 갑자甲子처럼
60진법을 사용한다거나,
결혼 전 신부가 될 집에 함을 지고 가고
씨름을 즐기는 등
의식주 문화나 생활 풍습에서도
적잖은 동질성이 나타낸다.
특히 주목할 것은
동방 한민족의 독특한 머리형인
상투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1923년 우르Ur 지역의 한 묘지에서
왕의 유골을 발굴했는데,
황금투구를 쓰고 있었던 그 왕은
머리카락을 뒤에서 묶어 상투를 틀고 있었다.
수메르 문명은 동방에서 발원했다 하는
그 ‘동방’은 어디를, 누구를 지칭하는가?
일찍이 환국의 서남쪽에 자리 잡았던
환족 사람들이 이란의 산악지대를 거쳐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남하해
수메르 문명을 개척했다고 본다.
결국 수메르인과 수메르 문명의 원래 고향은
환국이라 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배달을 세운 환웅이
환국의 마지막 환인으로부터
환국의 정통 계승자로 지명됐다.
3,300여 년간 지속된 한 시대(환국)가 저물고
또 하나의 거대한 새 시대(배달)가 시작된 것이다.
환단고기의 '삼성기 하'와 '태백일사'에 기록을 보자.
6천 년 전 기후변화 및 인구증가와
물자부족으로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지자
환국 가운데 서자부庶子部부족의
환웅이 새로운 터전을 개척해야 했다.
이에 삼위산과 백두산을 두루 살펴본
환국의 마지막 통치자 지위리智爲利 환인께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이라면서
백두산을 새 삶의 터전으로 정했다.
그리고는 환웅을 동방개척의 선봉장으로 세우신다.
백두산을 향해 떠나는 그에게 환인은
국통계승의 상징으로
천부天符와 인印을 내려주시고
문명개척단 3천 명을 붙여 주셨다."
부족을 이끌어 백두산에 도착한 환웅은
도읍을 신시神市에 정하고
백두산 신단수에서 삼신상제三神上帝님께
천제를 올려 나라 세움을 고한다.
이렇게 거발환居發桓 환웅이 세운
동북아 이족(동이족)의 나라, 배달시대가 시작된다.
환국의 마지막 환인께서
환웅을 환국의 정통 계승자로 지목하였는데,
그 증표가 바로 천부와 인이다.
천부는 태고의 문서로,
환인은 이것을 환웅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의 표증’으로 내려주신다.
인은 ‘환국의 종통宗統을 전한다’는 것을
인증하는 도장으로 왕의 옥새와 같은 것이다.
환국의 마지막 환인 천제로부터
천부와 인을 내려받은 거발환 환웅은
이 증표와 함께 장차 국가를 다스려 나갈
‘통치이념’도 전수받았다.
그것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
곧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이념이다.
환웅 배달국 시대를 전개되어 가는 와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 두 가지만 이야기한다면
하나는 치우천왕의 행적,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천부경'이다.
먼저, 치우에 대해서는
중국의 25사史 가운데 첫 번째 사서인
사마천의 『사기』 첫 부분 '오제본기五帝本紀에
비교적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사마천은 '오제본기'에서
헌원과 치우 사이에 벌어진 탁록대전을
“치우가 난을 일으키며 황제의 명을 듣지 않자
이에 황제는 제후들로 군대를 징집하여
탁록의 들에서 싸워 드디어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고
서술했다.
이 기록의 핵심은 ‘금살치우禽殺蚩尤’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는 네 글자이다.
헌원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면서
치우에 대해 왜곡된 기록을 한 것이다.
그 후 대륙과 한반도의 수많은 서적에서
치우에 대해 쓰고 있다.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은
약 4700년 전 동시대에 공존한 인물이다.
배달국의 임금 치우천왕은
재위 초기 인접한 신농국이
제8대 유망楡罔에 이르러 쇠퇴하자
서방으로 출정해 지금의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을
배달의 영내로 흡수했다.
그런데 이 틈을 타서
서토 지역의 일개 제후였던 헌원이
치우천왕을 밀어내고
동북아의 천자가 되겠다고 일어났다.
이에 급히 말머리를 돌린 치우천왕은,
탁록 벌판에서 헌원의 군대와 맞서
10년 동안 73회에 걸친 접전을 치러
마침내 헌원을 굴복시켰다.
『환단고기』 가운데 「삼성기」 하권에는
“다시 몇 세를 내려와 14세 자오지
환웅(치우천왕)이 계셨는데,
이 분은 신이한 용맹이 매우 뛰어났다.
구리와 철로 투구를 만들어 쓰고
(=동두철액銅頭鐵額)
능히 안개를 일으키며 구치九治를 제작해
광석을 캐내고 철을 주조해 무기를 만드시니
천하가 크게 두려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동두철액은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졌다’는 것이지만
구리와 철로 투구를 만든 것으로 봐야 한다.
이를 통해 치우의 시대가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이어지는,
금속무기를 사용하던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사마천 사기의 해설서인 사기정의에도 보면
‘치우군대가 금속투구를 머리에 쓰고
큰 쇠뇌(=太弩)와 같은 병장기를 갖추고
출전하여 그 위엄을 천하에 떨쳤다’고 했다.
또 『관자』에서도 “갈로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물에는 철이 섞여 있다.
치우가 이를 받아 제련하여
칼, 갑옷, 창 등을 만들었다.”
葛盧之山發而出水, 金從之,
送尤受而制之以爲劍鎧矛戟
중국 사서들이 이처럼 치우의 무기를
세밀히 묘사한 것을 뒤집어 보면,
헌원의 군대는
그만한 무기를 가지지 못했던 것을
은연 중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당시 치우천황은 동북아에서 가장 먼저
청동무기를 썼으며 금속문명의 선진 주자였다.
한민족과 인류의 시원 모체종교를
신교神敎라 한다.
신교는 삼신상제님과 그 가르침을 받드는
우리 고유 종교이자 생활문화이다.
이 신교의 3대 경전이 있는데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와
참전계경參佺戒經이다.
천부경은 한민족의 우주론이라 할 수 있고,
삼일신고는 신교의 세계관과 신관, 상제관,
인간관, 수행관의 정수를 담은 글이다.
참전계경은 사람이 하늘과 하나 되어
완전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연마해야 할
생활실천의 계율을 기록한 것이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
천부경 전문全文과 그 유래가 쓰여 있다.
물론 환단고기에는 삼일신고의 유래와
그 전문 그리고 참전계경의 유래도 실려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천부경은
인류사 최초의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천부경에서‘ 천부’는‘
하늘의 섭리를 나타낸 부호’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천부경은
하늘의 이치와 법칙을 인간 세상에 드러내고
하늘의 꿈을 전하는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천부경은 경학經學(경학 연구)의 역사상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인류 시원국가인 환국에서 선언되었기 때문에
인류 최초의 경전이다.
둘째,
하늘의 신권神權을 드러내는 권위의 상징체계로
상제님께서 하늘의 이치와 섭리를
인류에게 선포한 계시록이다.
셋째,
우주 변화의 신비를 수數로써 선언하고
수로써 깨닫게 하는,
무궁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넷째,
인류 역사상 수많은 우주론들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우주론이라 할 수 있다.
천부경은 81글자로 된 짧은 글이다.
하지만 천부경은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로 시작해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로 끝나는
그 81글자에 태고시대, 아니 오늘까지도
절대적인 우주론의 핵심진리를 담고 있다.
태백일사와 삼일신고의 5가지 근본사상도
천부경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궁극적인 정신도 천부경의
중일中一 정신의 이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기록돼 있다.
실로 천부경은 신의 가르침을
받아 적은 글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