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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 이집트 문명

미술사 스터디 9

by 이승희





미술사 스터디 9





세계 최초의 피라미드 군

위의 피라미드군 항공사진은
대략 기원전 3000년~4000년 전
환국 시대의 유적지로 추정된다.
1945년 중국 시안 인근을 비행하던
한 미국인 조종사의 촬영에 의해 발견되었다.

훗날 '몰다스프'라는 러시아 과학자가
이 부근에서 가장 거대한 피라미드를 발견하였고
주변 지역에 100개가 넘는
피라미드 군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현재 피라미드는
중국의 공안에 의해서 철저하게 숨겨져 있다.
학술 조사가 불가능하며
중국에 의한 연구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독일의 고고학자 하우스도르프가
외국인 출입금지 지역을 몰래 잠입한다.
그리고 하우스도르프는
'Die weiße Pyramide'(하얀 피라미드)라는
책을 저술하여
서안의 피라미드의 존재가
서방에 비로소 알려진다.
중국 측에서는 이를 조작이라며 일축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중국에서 36명의 비밀 조사단이 꾸려져
시안 피라미드 중 제일 큰 유적을 조사한다.
이때 발굴에 참여한
중국인 장문구 씨의 증언에 따르면
많은 동이족 문물이 쏟아져 나오자
발굴단장은 당국에 보고하였고
중국 당국은
이 유물들이 조선인의 유물임을 깨닫고
자존심이 상하여 철수시켰으며
외부에 알리지 않을 것을
장문구 씨 등에게 협박한다.
하지만 장문구 씨는
임종 직전에 소신 발언을 하였으며
비로소 중국의 피라미드가
한국의 역사의 일부임이 알려진다.
중국 측은 이곳에 나무를 심으며
무덤을 훼손하고 있다.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시 북서쪽,
관중 평원(關中平原)에 위치해 있다.
시안에서 약 25km에서 35km 떨어진
거리이다.




수메르 > 이집트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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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감도 시점에서 본 우르의 지구라트 완성도




지구라트

수메르 Sumer는
기원전 35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시작된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알려져 있다.

우르 Ur는
수메르 문명권에 속한 주요 도시 중 하나로,
유프라테스강 하구에 위치하여 번성했다.
성경에 따르면 이 도시는
우르라는 남자에 의해 세워졌고
도시의 이름도 우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우르라는 어원은
내재하는 고요한 경지,
즉, 평강의 하느님을 뜻한다.
다른 말로는 스르라고도 쓸 수 있다.

우르는 초창기부터 번영하다가
수메르가 가장 부흥했던
우르 제3왕조
(기원전 21세기, 초기 청동기 시대) 때
수도가 되어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제야
대지구라트를 포함한 많은 유적들이 건축된다.

지구라트는
단이 층층이 쌓은 피라미드 구조이다.
12 환국의 한 나라인 수메르의
피라미드 건축 기술은
나일강을 통해 풍족한 재정 능력이나
여건이 좋은 이집트에서
기원전 27세기에 먼저 시작하고
수메르는
그 후 기원전 21세기에나
본격적인 공사를 하게 된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의 원형이기도 한
지구라트 Ziggurat라는 뜻은 수메르어로
"기단에서 영(靈)이 창조되는 신전"을 의미한다.
기단은 중첩으로 쌓여지며 점점 위로 올라가고
끝에는
이 도시의 수호신인 달의 신, 난나 Nanna를
모신 신전을 위치시켰다.
그래서 사각뿔 형의 피라미드 형태가 된다.

사각뿔을 하늘에서 보면 X자 모양임을 알 수 있다.
이 X의 의미는
창조된 것이 수축 축소되어
초기 창조의 한 점으로 돌아가는 뜻이다.
한 점 넘어 고요의 신의 경지를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도안 심벌이 X였던 것이다.



우르의 지구라트는
1980년대 사담 후세인의 명령으로,
건물 외관과 계단을 부분적으로 재건축됐다.
우르의 지구라트는
사이즈가 길이는
64m, 너비는 45m, 높이는 30m로
두르 운타시(초가잔빌)의 지구라트에 비하면
반에도 못 미치나,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왕릉과 우르-남무 궁전(E-hursag)과 함께
우르 제3왕조의 세 건축물 중 하나이다.

수메르 지구라트들은
현재 토대만 남아 있기 때문에
정확한 높이는 알 수 없다.

지구라트는 슐기 Shulgi 왕이
도시의 충성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신으로 선포하면서 완성되었다.
그의 48년 통치 기간 동안 우르는
메소포타미아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는
국가의 수도로 성장한다.




두르 운타시(초가잔빌)의 지구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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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피라미드로 알려진 이집트 조세르 피라미드




이집트 최초의 조세르 피라미드
(기원전 2630년 ~ 기원전 2611년)


초기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수메르의 지구라트처럼
기단이 중첩되어
쌓여진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들은
수메르의 신전에서 시작되었으니
무덤이 아니라 신전으로 보아야 되고
그 신전에 왕들은 묻히고 싶었던 것이다.
파라오가 내세에 부활할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다.

이집트 최초의 피라미드는
제3왕조의 파라오 조세르를 위해 지어진
조세르의 피라미드이다.
사카라에 위치한 이 계단식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다빈치로 불리는
임호텝 제상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고대 이집트 건축의 중요한 이정표로 여겨진다.
건축 시기는
기원전 2630년에서 2611년 사이로
구조는 6층으로 이루어진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이다.
높이는 60미터가 넘는다.







조세르 피라미드의 경우는
많은 부속 건물을 거느린 작은 성의 규모이다.
그 주변 1.6km에 달하는 중간중간 보루가 있는
거대한 석회암 벽이 둘러쳐져 있다.

우리가 주의해서 봐야되는 것은
성벽의 형태이다.
평평한 성벽에 중간중간 튀어나오게 쌓은 '치'가 있다.
'치'는 벽을 더 튼튼하게 하는 공법이다.
치 공법은 지구라트에도 보여지지만
고구려의 성벽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것이다.
환국의 전통이 내려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남쪽 신전의 입구



치는 남쪽 신전의 입구에도
스트라이프의 선을 확실하게 보이며 서 있다.

북신전은 계단식 피라미드 북면에 위치하며
북극성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파라오가 북극성과 함께 별들로 승화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 지었던 것이다.
후임 파라오들이
조세르에게 제사를 정례적으로 지내던 곳이었다.

환국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 신앙이 내려온다.
지금도 한국에는 칠성당이 곳곳에 많이 남아 있다.
파라오가 북극성을 숭상했다는 것은
환국의 전통과 일치한다는 중요한 단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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